“울분이 이 상태를 만들었다…” 의사마저 복받치게 만든 박상민의 충격적인 상태, 끝내 주저앉은 김수미

90년대 초반을 기억하는 영화 팬들은 아마도 생생히 기억하실 겁니다. 당시 홍콩 영화가 누와르란 장르로 일종의 신드롬을 일으켰다면 한국 영화 중에서 장군의 아들이 엄청난 관객 몰이에 성공했던 걸 말이죠. 지금까지도 장군의 아들처럼 이렇게 특정 작품이 3편까지 시리즈로 이어질 만큼 인기를 얻었던만큼 단 하나의 극장에서만 무려 60만 이상의 관객을 유치한 한국 최초의 블록버스터 영화였습니다.

더욱이 이 영화를 통해 무명배우들이 빛을 보았기에 박상민, 신현준, 김승우 같은 배우들로 세대교체가 이루어졌을 정도입니다. 이역사적인 영화에 누가 뭐래도 박상민의 공이 지대한데요. 젊은 시절에 김두환이 마치 살아있기라도 하듯이 박상민은 앳된 협객의 캐릭터를 정말 잘 소환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만인의 부러움을 받으며 살던 박상민이 어째서 울분에 사로잡혀 잘못된 선택을 했었는지 그리고 그를 진료한 담당 의사는 왜 이리 감정에 복받쳐 호소했는지 나아가 죽기 직전까지 맞아야만 했던 박상민이었는데요 대체 어떤알아 았었던 것일까요?

흔히 우리가 대학로 출신 배우들의 인생 얘기를 듣자면 기억없는 긴 무명 시절에 겪었던 서러움을 많이 듣곤 합니다.


그러나 박상민은 배우라면 누구나 꿈꿀법한 바로 스무 살 때 데뷔작부터 스타가 된 특별한 인생이었는데요. 하지만 박상민의 인생은 우선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울분에 사로잡힌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부유한에서 아버지 밑에서 유복하게 자랐으나 아버지의 기대에 못 미치는 미운오리 새끼 신세였다고합니다. 박상민이 말하기에 “아버지는 굉장히 교양이 넘치는 분이셨다 의사이면서 동시에 글도 잘 쓰는 수필가셨고 나아가 성악 테너로도 활동했다.

종합 예술인이셨다 네 위로는 두 명의 형들이 있는데, 항상 수석과 차석을 번갈아 하던 지역구를 대표하는 엘리트이자 부친의 자랑이었지만 난는 형들과 달리 공부머리가 없어서 항상 부모님과 선생님들이 형들과 비교하며 나를 구박했다.”며 이런 환경에서 그의 반항심은 점점 커져만 같다며 박상민은 자신의 학창 시절을 열등감으로만 묘사했지만, 사실 그의 인생은 남들이 보기엔 굉장히 부러운 인생 중 하나였습니다.

800억대 재산을 자랑하는 부자 집안에서 대학도 못 갈 성적임에도 불구하고 그저 재밌어 보여 지원했던 서울예대에 운 좋게 입학했으며 놀기에 바빠 정신을 못 차리고 학사 경고를 받은 대학교 1학년에 우연히도 교수가 학교를 부르더니 장군의 아들 오디션을 볼 정도였기 때문입니다.

우연한 오디션 기회를 얻은 건 박상민의 천운이라고 할 수 있지만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아낸 건 그의 실력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하지만 아이러니한 건 이러한 스무 살에 이른 행운은 반대로 그를 불행하게 만든 불운의 시작이기도 했습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의사가 된 두 형제들에게 열등감이 있던 그는 장군의 아들로 일약 대스타가 되며 그동안 쌓인 울분을 보상받기라도 하듯 아직 신인 배우였음에도 자만심이 하늘을 찔렀기에 그의 이름에 치를 떠는 영화 관계자들이 정말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1995년작인 ‘남자는 괴로워’에 캐스팅 되었을 때 박상민은 제대로 된 호랑이 선생을 만나게 됩니다. 안성기 같은 대 선배가 있던 촬영 현장임에도 불구하고, 신인 박상민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며 현장의 분위기를 망쳤는데 결국 이를 참다 못한 이명세 감독에게 끌려가서 그야말로 죽도록 맞았다는 이야기는 충무로의 전설이라고도 합니다.

나아가 장군이 아들 캐릭터가 너무 세게 박혀버린 까닭에 그가 다른 캐릭터에도 전처럼 대중들의 반응은 석연치 않았습니다. 더구나 2번의 음주운전과 더불어 이혼 과정 중에서 드러났던 전처에게 저지른 폭행 사태는 그의 이미지를 바닥으로 끌고 갔습니다.

사실 박상민는 이 폭행 사건과 관련해 굉장히 억울한 마음을 내비치는데 이유인즉슨 자신의 모친이 심각한 중풍에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병수발은 커녕 시어머니가 병원을 옮긴 것도 까먹고 있었다고 합니다.

때문에 이를 지적하고 나무라자 아내는 ‘깜빡할 수도 있지’라며 오히려 뻔뻔하게 역정을 내서 분노 끝에 폭력이 불거진 거라고 항변했습니다.

이 폭력 사건은 5년 동안의 이혼소송이 마무리되기 전까지 박상민을 정신적으로 크게 괴롭히기도 했고 생계수단마저 끊기게 만든 엄청난 사건이었기에 버티다 못한 그는 평소 알던 정신과 의사를 찾아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진료를 마친 의사는 감정에 복받쳐 그에게 토로하길 “이 상태면 스스로가 떠나거나 누군가를 해쳐야만 끝난다”는 말에 충격을 받은 그는 이때부터 자신의 마음을 고쳐잡았고 현재는 다른 여자와 재혼하며 다시금 재기를 꿈꾸고 있습니다.

평소 박상민과 절친한 사이로 알려진 김수미는 그가 괴로워하던 시간을 몰랐다며 굉장히 가슴 아파했었습니다. 부유한 집에 능력 있는 형제들 그리고 스무 살에 맞이한 빠른 성공 하지만 이런 환경에서 시작된 뿌리 깊은 열등감과 자만심을 비추어 볼 때 그의 삶은 행운의 인생과 불운한 인생이 공존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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