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아들이 당한 것 같습니다…” 곱상한 조용필의 사나웠던 인생과 호랑이 임재범의 고백

조용필은 아시다시피 역대 가요대상 최다 수상자이자 대한민국 가요 자체 라고해도 무방할 정도의 엄청난 기록과 커리어를 써낸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키가 작은 조용필이지만 카리스마는 여러 사람들에게 회고되고 있습니다.

조용필 1950년 3월 20일 경기도 화성시에서 태어난 그는 염전업을 하던 집안의 7남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당시 그의 아버지는 4대 독자로서 고향 유지였던 할아버지 재산을 물려받아 화성시 최고의 부자 집안으로 그는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조용필은 그의 어린 시절 추억에 대해 “아버지는 큰형을 데리고 사냥 나가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나는 총에 맞아 피흘리는 동물들의 모습이 불쌍해서 잘 따라나서지 않았다. 아버지의 성격은 너무나 완고하고 권위적이어서 나는 잘 맞지 않았기에 사실 음악을 시작하려는 내게 가장 큰 걸림돌은 아버지였다. ” 라며 말한 적 있습니다.

그렇게 조용필은 학창 시절에 비틀즈에 푹 빠져 살다가 1968년인 고등학교 3학년에 가출을 수차례 감행하게 됩니다. 음악에 대한 아버지의 반대가 워낙 심했기 때문이었는데요. 조용필은 그의 가출 시절에 대해서 밝히길 “처음 가출할 당시만 해도 평생 음악을 하리라고는 절대 생각 못했습니다. 우리는 비틀즈 세대니까 그냥 하고 싶은 건 해야 했을 뿐이다” 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가출을 해버린 고3 조용필은 미 8군 클럽 무대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하게 됩니다. 당시 음악계에서 미 8군은 음악인들이 활동하던 가장 큰 무대라고 말할 수 있는 상징성 있는 무대였기 때문에 어린 고3 조용필의 기타 실력이 일찌감치 당시에도 인정받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유복한 가정환경에서 오는 안락함과 가족과의 관계까지 포기하고 음악에 대한 결정 하나로 이런 결단을 내린 조용필의 음악에 대한 열정을 알 수 있는데요.



그는 ‘돌아와요 부산항’을 발매의 시작으로 1979년 ‘위대한 탄생’이라는 그룹을 결성하고 공식적인 1집 앨범 <창밖의 여자>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는데 이후 내놓는 앨범마다 히트를 하면서 1980년대 최고 인기 가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해 겨울 그는 무대를 마치고 사법경찰에게 끌려간 적이 있었는데 죄명은 대마차 흡연이었으며. 그렇게 남산 마약반으로 도착해 보니 거기서 무조건 마약쟁에 50명을 불어야 했고 주전자 고문과 한 사람이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벽돌 사이로 밀어놓고는 무시무시한 각목으로 사정 없이 찔러댔던 고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거기에는 인간미가 없었다” 라고 말할 정도로 그렇게 많은 음악인들이 좌절했고 한대수 이장희 같은 사람은 아예 이 땅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는 “대마초와 관련해서 너무나 억울했다. 당시 대마초는 흔하게 유통되었고 불법도 아니었다 그나마도 내가 대마초를 피운 건 대마초 관련 법률이 제정되기 훨씬 전이었다. 미 8군에서 활동할 당시에 4차례의 대마초를 피게 되었는데 같은 하숙집에 살던 미군 병사가 담배라고 권해준 것을 피운 것이고. 그마저도 피부병이 발생해서 4차례 흡연 후에 끊은 것은 참작되지 않았다.”고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이런 사건으로 인해 조용필은 ‘대마초가수’라는 공격을 받게 되었고 1977년 고문 후유증에 따른 상처로 스스로 음악을 포기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1979년 다시 <창밖의 여자>앨범으로 일어선 그는 현재까지 음악에 미쳐 있는 음악 중독자로서의 인생을 사게 됩니다.


음악밖에 모르던 그는 31곡의 히트곡의 저작권을 소속 레코드사에 2013년까지 빼앗긴 슬픔이 있고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는 비공식적으로 기부 금액이 100억원이 넘어가며 포브스지에서 선정한 아시아의 기부 영웅 중 한 명이기도 합니다.

이런 그의 영화 같은 일생은 많은 음악 선배들에게 존경을 받았는데 카리스마로 유명하고 선배들에게도 꼿꼿하기로 잘 알려진 호랑이 임재범마저 조용필을 처음 봤던 순간을 ” 나는 평소 락커 선배들에게도 허리를 90도로 굽혀 인사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하루는 조용필 선배를 방송국에서 뵌 적이 있는데, 정말 빛이 났다. 그전까지 아우라라는게 뭔지 몰랐는데 그를 보고 알게 되었다. 나보다 키가 작으심에도 불구하고, 뿜어져 나오는 카리스마에 저절로 허리를 완전히 접으며 인사하고 말았다. 뭔가 졌지만 존경할 수 있는 대상을 찾아서 기뻤던 하루였다” 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연예계 최고 재벌인 방탄소년단의 소속사 빅히트의 8조원 회장 방시혁마저 조용필을 만난 후 손을 다소곳이 모으고 90도 인사를 한 일화도 유명합니다. 이렇게 자존심 센 남자들인 임재범과 방시혁마저 저절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심을 표시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조용필이 걸어오고 싸웠던 길은 후배들에게 많은 귀감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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