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밤이에요” “떡 사세요 떡” 등의 유행어를 남긴 배우 장미희는 1970년대를 대표하는 배우 중 한 명입니다.
장미희는 우아한 말투와 늘씬한 몸매, 이지적이고 섹시한 얼굴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각종 루머와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습니다. 그녀를 둘러싼 어떤 소문들이 있는지 파헤쳐 보겠습니다.
장미희는 1958년생으로 올해 65세입니다. 큰 키와 예쁜 얼굴로 어릴 때부터 유명했다고 합니다.
언니의 추천으로 1972년 예술대회에 출전하여 금상을 받았습니다. 그 후 1975년 TBC 특채 탤런트로 뽑혔습니다.
이듬해인 1976년 276:1의 경쟁률을 뚫고 영화 <성춘향전>에서 춘향 역에 발탁됩니다. 이후 영화 <겨울여자>로 흥행배우로 거듭났습니다.
이후로도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며 2세대 신 트로이카 시대를 열었습니다.
특히 역대 영화 흥행 기록을 두 차례나 갱신한 유일한 배우로 동시대 배우들과 비교했을 때 그녀의 흥행력은 압도적이었습니다.
장미희는 스턴트나 대역이 필요한 위험한 연기를 직접 소화해내는 열정을 보였는데요. 외모와 연기열정이 합쳐져 당시 여배우들 중 최고 수입을 자랑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장미희는 1982년 신군부 집권 시기에 출연 금지 연예인 목록에 오르며 2년간 제대로 된 작품 활동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는 공백기 동안 두 번이나 미국 유학길에 올랐는데요. 이런 공백기 때문에 정부의 외압이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 돌기도 했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정권 시절, 전두환이 장미희를 아끼자 이에 질투한 이순자가 드라마를 촬영하고 있던 장미희를 납치해 수술을 받게 하고는 5일간 감방에 넣었다는 내용의 루머가 크게 터졌습니다.
이 루머가 얼마나 파장이 컸던지 이를 영화화한 <서울 무지개>가 상영되어 큰 흥행을 끌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장미희는 귀국 후 <깊고 푸른 밤>, <사의찬미> 등의 히트작을 쏟아내며 활발히 활동하자 루머는 잠잠해졌습니다.
장미희 본인도 이 루머에 대해 인정한 적이 없으나, 미혼이다보니 계속해서 언급되기도 합니다.
또 다른 스캔들이 있는데요.
그녀는 귀국 후 배창호 감독과의 만남으로 영화 인생에 큰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장미희는 배창호 감독의 <깊고 푸른 밤>, <적도의 꽃>에서 흥행에 성공하여, 미국 유학 후 연기 인생에 있어 다시 한 번 전성기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배창호 감독의 그녀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단독 인터뷰를 진행해, 장미희와 결혼을 희망한다고 언급하며 공개 구혼을 했습니다.
훗날 장미희는 해명을 하고 싶지도 않을 만큼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딱 잘라 언급한 바 있습니다.
사실 장미희가 당시에 마음에 품고 있던 사람은 따로 있었는데요.
1983년 26살의 장미희는 19살 연상인 경남기업 사장과 약혼 소식을 전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급격하게 경남기업의 경영 사정이 나빠지자 이 둘은 파혼을 선택하게 됩니다.
크게 낙심한 장미희는 다시는 결혼하지 않겠다는 다짐까지 했다고 합니다.
한편 장미희는 학력 위조 논란도 있었는데요.
장충여자고등학교, 동국대 불교학과, 미국 호손대학교를 졸업했다고 했으나 실제로 동국대학교는 청강생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또한 미국 호손대는 미인가 대학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런 논란에도 장미희는 할 말이 없다며 대답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여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잃지 않는 아름다움과 뛰어난 연기력으로 워난 인기가 많았던 탓인지 수많은 루머를 떠안았는데요.
하지만 결혼이라는 굴레를 벗어나 그녀만의 매력으로 연기 활동을 꾸준히 이어나가며 도전하는 삶이 참 멋있게 보입니다.
항상 멋지게 살아가는 그녀의 모습을 오래도록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