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자신이 가진 것보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을 더 크게 느낀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까요?유독 남이 가진 것을 탐 내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대상이 사람일 경우 파장은 커집니다. 특히나 자녀까지 있는 사람이라면 사회적 지탄을 받기 충분하겠죠.
오늘은 애까지 있는 재벌가 아들 꼬셔서 뺏은 여배우 TOP3를 알아보겠습니다.
kbs 슈퍼탤런트 선발대회 1기 대상에 선정되며 1995년 화려하게 데뷔한 배우 박상아는 드라마 <젊은이의 양지> <태조왕건> 등에 출연하며 단아한 외모와 분위기로 큰 사랑을 받은 바 있죠.
이후 연기 활동 중단을 선언하며 팬들의 아쉬움을 자아내기도 했지만 2003년 조금씩 tv 광고에 모습을 드러내며 활동을 재개하는 듯 보였고, 안방극장을 통해서도 박상아의 연기를 볼 수 있을거란 기대가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2001년 드라마 <결혼의 법칙>을 끝으로 배우 박상아의 모습은 다시 볼 수 없었는데요.
2004년 2월, 당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전두환의 차남 전재용의 비자금 사태에 연루되며 미국으로 떠났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의 의문스러운 관계가 수면위로 떠 오른건 검찰에서 현대 그룹의 자금 흐름을 추적하면서부터 였습니다.
출처를 알수없는 167억원의 거액이 전재용의 것으로 드러났고 이에 관해 결혼 당시 들어온 축의금18억 원이 할아버지가 관리해 준 덕에 167 억원이 됐다며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주장을 하자, 아버지 전두환의 비자금이 아니냐는 의심이 빗발 치기 시작했는데요.
검찰은 본격적으로 전재용의 재산을 조사하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전재용의 수표가 수차례 박상아의 계좌로 흘러들어간 단서를 포착했고 추가 조사를 통해 2002년부터 2003년까지 두 사람이 같은 기간, 같은 나라에서 머문경험도 드러났습니다.
전재용과 박상아가 정상적인 관계로 만남을 이어왔다면 크게 이상할 게 없었지만 문제는 전재용은 1992년 이미 결혼해 아내와 자녀 까지 있는 상황이었기에 두 사람은 이내 ‘불륜’ 의혹에 휩싸였고 관련 소식이 보도 된 초기 박상아는 어찌된 영문인지 조사가 제대로 시작되기 직전 미국으로 출국해 언론과 대중으로부터 쏟아지던 관심을 피해 갔습니다.
그러나 미국 교민들 사이에서 두 사람을 목격했다는 각종 증언들이 빗발치기 시작했고 곧 언론을 통해 박상아와 전재용이 고급 주택가에서 함께 거주 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는데요.
결국 2010년 전재용이 이혼을 마무리 짓자 박상아는 그제서야 한국으로 돌아와 정식 결혼에 성공합니다.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미스코리아 선 선발 이후1994년 공채 아나운서로 kbs에 입사한 장은영은 단숨에 kbs 간판 아나운서를 꿰찼지만 입사 4년 차에 사표를 내고 미국 유학길에 올라 화제를 모았는데요.
남부러울 것 없는 능력으로 용기있는 선택을 한 장은영을 향한 부러운 시선들이 모아지던 한편 한 언론사에서 장은영의 퇴사와 유학의 배경에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이 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보도해 파장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도망치듯 자신의 커리어를 버리고 미국행을 택한 것이 최원석과의 불륜 때문이라는 실로 놀라운 내용이었는데요. 장은영은 기사 내용이 전혀 사실이 아니라며 눈물까지 흘리며 호소했고 이에 해당 언론사는 죄없는 유명방송인을 루머의 희생양으로 만든 파렴치한 으로 비난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로부터 불과 2년여가 지난 1999년, 장은영은 최원석과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최원석이 이전 결혼 생활을 정리한 후 재혼한 것이었기에 불륜으로 판단하기엔 무리가 있었지만, 타임 라인을 살펴 보면 누가봐도 불륜이 이미 확실해 보였는데요.
장은영이 돌연 미국행을 택했던 1997년, 최원석은 두 번째 부인이던 펄 시스터즈 출신 가수 배인숙과 결혼 생활 중이었습니다. 결혼 후 20여년 동안 외부 활동을 전혀 하지 않던 배인숙은 이후에도 그 사유에 대해 일절 입을 열지 않아 배인숙과 최원석의 이혼 배경에 장은영이 있다는 이야기는 사람들 사이에 루머로만 남았죠.
그러던 2003년 배인숙은 20여년에 걸친 자신의 결혼생활에 대해 낱낱이 공개한 에세이 <30년 만에 부르는 커피한잔>을 출간하며 소문으로만 떠돌던 장은영, 최원석의 불륜은 기정사실화 됐는데요.
최원석이 장은영에게 단단히 빠져 이혼을 맹렬하게 요구해 왔고, 이 같은 상황을 견딜 수 없어서 이혼했다는 것이었죠.
애까지 있는 재벌을 꼬셔 결혼에 골인한 장은영. 하지만 28살의 나이 차이는 극복하기 어려웠던 걸까요?
결혼 후 12년 만인 2010년, 합의 이혼 후 마치 기다렸다는 듯 같은 해 대학시절 소개팅으로 처음 만나 우연히 제외한 한 사업가와 빛의 속도로 재혼하여 또 한번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5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대한민국 미모의 여배우가 거론될 때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정윤희. 당시 엄청난 인기를 구가한 그녀는 일본, 중국 등 해외에서의 인기도 엄청 났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배우로서 한창 활발하게 활동해야 할 서른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연예계 은퇴를 선언하며 그 모습을 다시 볼 수 없게 되는데요.
70년대 당시만 해도 결혼 후 연예계 활동을 중단하는 여배우들이 많았는데 정윤희 역시 중앙건설 조규영 회장과의 결혼과 동시에 은퇴 수순을 밟은 것이었죠.
하지만 그 과정이 여느 여배우들의 결혼 후 은퇴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역시나 문제는 불륜이었는데요.
당시 유부남이던 조규영 회장과의 불륜 현장을 조회장의 아내 박모씨가 습격한 사건은 파장이 컸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를 의심하고 있던 박모씨가 가족, 경찰과 함께 함께 잠을 자고 있던 조규영과 정윤희를 그대로 경찰에 연행 시켜버린 것이죠.
조규영과 정윤희는 간통죄 혐의로 유치장에 수감되기에 이르렀는데요. 전국민에게 사랑받던 미모의 여배우가 두 살 된 딸과 4개월 된 어린 아들이 있는 남성과 은밀한 불륜을 저질렀다는 사실은 대대적인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 입장에선 조금 억울한 면이 없지 않다고 전해집니다. 당시 조규영은 부인과 사이가 많이 틀어져 이미 별거 중에 있었고 이혼절차까지 밟고 있는 상태 였다고 하는데요.
다시 말해 정윤희와 바람이 나서 이혼 한게 아니라 아내와 이미 사이가 소원해진 상황에서 정윤희를 만났다는 주장이었죠.
하지만 아내 박모 씨는 조규영과 정윤희는 이미 자신과 남편의 별거 전부터 관계를 맺어왔다고 주장하며 정윤희로 인해 결혼생활이 파탄 났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는데요.
누구의 말이 맞는지 정확히 밝힐 수는 없었지만 어찌됐던 간에 정식적으로 이혼 도장을 찍기 전 조규영이 정윤희와 만남을 가진 것은 사실이었고 ‘유부남을 뺏은 불륜녀’라는 꼬리표가 붙은 정윤희 는 사실상 연예계에서는 물론 사회에서도 매장되었죠.
다행히 조규영이 전 아내 박모 씨에게 거액의 합의금을 제시하면서 마무리 지어졌고, 두 사람은 1984년 공식적으로 결혼하여 현재까지 결혼생활을 이어오고 있는데요.
간통으로 구속까지 당한 불명예를 입게된 정윤희는 이후 그 어떤 공식석상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지내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람이 100명 있다면 100개의 사연이 있다고 하죠. 이들의 만남에도 두 사람만 아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야 있겠지만, 상대에게 아내와 자녀가 있는 상황에서 몰래 만나는건 그 속사정이 어떻든간에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저버린 불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