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에 서울에서 태어난 국민배우 김영란, 그녀의 아버지는 고향이 평양으로 10남매 중 장남이었는데요.
1.4후퇴 때 할아버지와 잠시 남한으로 내려왔다가 북한에 있는 가족과 영원히 이별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김영란의 가족에게는 추석이 항상 우울한 명절이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장남이 어머니를 거두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명절만 되면 술만 드셨고 추석 4일 뒤가 김영란의 생일이었지만 그녀는 항상 암울한 생일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피란 이야기에 커서도 북한에 납치되는 악몽을 꿨다고도 합니다. 그렇게 어린 시절을 보낸 김영란은 성인이 되어 ‘미스 쥬리아’ 선발대회에 참가하게 되는데 ‘선’으로 뽑히면서 쥬리아화장품 모델로 연예계에 화려하게 데뷔를 합니다.
이어 그녀는 1976년 tbc 탤런트 공채에 합격해서 정식으로 연기자 활동을 시작하게 되는데 무명이었던 77년에 백일섭, 노주현과 함께 <처녀의 성>에서 주연으로 출연하였습니다.
이로인해 대종상영화제와 한국영화비평가그룹에서 선정한 ’77년도 영화인’ 선정에서 신인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게 되는데요.
이후 78년에는 mbc 일일연속극 <옥녀>에 주연으로 출연해 눈에 띄는 미모와 실감나는 연기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으면서 당시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80년에는 영화 <미워도 다시한번 80>에 출연해 감동적인 연기를 선보였는데 이 영화가 그 해 흥행순위 1위에 돌풍을 일으키면서 김영란은 한국 연예계의 톱스타로 급부상하게 됩니다.
그렇게 김영란은 유지인, 정윤희, 장미희 트로이카 3인방을 위협할 정도의 인기 여배우로까지 우뚝 서게 되는데 이후 그녀는 현대극뿐만 아니라 ‘조선왕조 500년’ ‘한명회’ ‘용의 눈물’ 등의 사극에까지 출연하며 활약하게 됩니다.
사극에서 그녀는 ‘왕비’나 ‘대비’ ‘공주’ 같은 최고위급의 배역을 맡으며 ‘왕비 전문배우’라는 별칭도 붙게 되는데 자신만의 커다란 눈망울과 우아한 외모 그리고 인상적인 목소리 톤으로 항상 주목받았던 그녀는 안타깝게도 인생사는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연기자로서는 남부럽지 않은 성공 가도를 달리던 그녀는 김수미의 소개로 사우디아라비아와 무역을 중개하는 무역회사 대표였던 곽씨를 알게 되었고 몇개월의 연애를 거쳐 83년 10월에 화려한 결혼식을 올리게됩니다.
그런데 남편 곽씨는 유서 깊은 집안의 장남이였고 종갓집 장손이었는데요. 자유분방하게 커왔던 김영란은 시집살이에 잘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결혼 후 처음 접해보는 종갓집의 완고하고 엄격한 시댁 분위기가 낯설고 적응하지 못하면서 남편과의 결혼 생활도 순조롭지 못하고 갈등을 많이 겪게 되는데요.
결국 김영란은 결혼 4년만인 1987년에 끝내 이혼을 하게 되며 딸의 양육권도 시댁에서 가져가는 바람에 이혼 후 눈물로 밤을 지새우게 됩니다.
이후 그녀는 사업가 이씨와 두 번째 결혼을 하게 됩니다. 한번 결혼에 실패했던 그녀는 당시 재혼에 대해 부정적으로 색안경을 끼고 보았던 사회 특성상 눈에 띄지 않기 위해 데이트 할때 여러명의 사람들과 함께 만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는데요.
두 번째 결혼식 때도 결혼 사실을 매스컴에 노출시키기 싫었던 김영란은 재혼을 소문나지 않게 은밀하게 진행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그녀의 결혼식장에는 많은 기자들이 먼저 와 있었습니다.
카메라가 터지는 순간 김영란은 손으로 얼굴을 가렸지만 그 사진이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리는 바람에 더 화제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결국 재혼을 하며 드디어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다시 아들까지 낳게 된 김영란, 하지만 남편과 오래도록 함께 노후까지도 꿈꿨던 그녀는 두번째 남편과도 이혼을 했다는 사실이 최근 알려지게 됩니다.
돌싱들이 나오는 프로그램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에 김영란이 출연하자 시청자들은 ‘김영란이 이혼했냐?’며 의심을 하게 되었고 자신의 결혼 생활에 대해서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은 김영란은 결혼 후 무려 10년이나 기러기 엄마로 살아왔다고 밝혔습니다.
남편은 무역 사업을 하기 위해 수년간 외국에 나가 있었고 두 아이들은 모두 미국으로 유학을 보냈는데 그러다 보니 자신은 항상 혼자 있는 처지가 되어 10년 동안 매일같이 ‘혼자서 밥을 먹고 혼자서 잠을 잤다’고 하는데요.
그러다 하루는 너무도 외로워서 집에 있는 반찬을 들고 찜질방과 동네 사랑방에 가서 남들과 함께 밥을 먹기도 했는데요.
그녀가 유명 탤런트인데도 불구하고 얼마나 외로웠으면 반찬을 들고 찜질방에 가서 모르는 남들과 함께 밥을 먹기까지 했을까요.
겉으로는 항상 귀부인처럼 화려하게만 보였던 그녀였지만 무려 10년이나 혼자서 고독한 생활을 했다고 하니 그녀가 남몰래 겪었을 외로움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후에 김영란이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에 출연한 것도 ‘혼자서 밥 먹는게 싫어서 방송에 출연했던 것’이라고 속내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사실 그녀는 2006년에 재혼 전문 결혼정보회사를 차리기도 했었는데 자신이 이혼과 재혼을 겪으면서 재혼 생활의 중요함과 소중함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인데요.
또한 재혼하려는 고객들에게 교훈으로 자주 하는 말이 있는데 ‘내가 일단 선택한 사람은 귀한 사람이라고 여겨야 한다. 귀한 사람이므로 귀하게 대접해야 하고 한마디의 말이라도 조심해야 한다.’라고 자신의 재혼관을 사람들에게 인식시켜 준다고도 밝혔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재혼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실제 재혼을 통해서 겪었던 소중한 경험을 토대로 많은 사람들의 재혼을 성사시키면서 큰 보람을 느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랬던 그녀는 결국 두 번째 남편과도 이혼을 하게 되었고 게다가 이번에도 아들의 양육권을 시댁에서 가져가게 되는데요.
김영란은 아이를 데려오려고 했지만 자신은 양육권이고 친권이고 한번도 갖지 못했다고 합니다. 양육권을 가져오기 위해 소송까지 했지만 변호사는 김영란에게 양육권을 가져올 수 없으니 ‘남편에게 가서 울라’고 했다고 하는데요.
그렇게 두 번의 이혼을 경험하게 된 그녀는 이혼을 하게 된 것이 자신에겐 너무 충격이었는데 자신이 원해서 했지만 ‘내가 왜 이혼을 하지?’하면서 참으로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고 토로했습니다.
그러면서 현재는 ‘재혼 생각이 전혀 없다’고도 고백했는데 나이를 먹으며 인생에 극심한 회의감을 느끼게 된 김영란은 마음속의 허무함을 달랠 길이 없어 아는 지인을 따라서 절까지 찾아가게 됩니다.
절을 다니며 인생에서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게 된 김영란은 모든 고통과 번민은 집착 때문에 생기는 욕심이기 때문에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젊은 시절 큰 인기로 화려하게 활동했지만 두 번의 결혼과 두 번의 이혼으로 아픔을 겪은 그녀가 힘겨웠던 인생길을 지나 어느덧 칠순을 바라보며 노년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최근 ‘같이 삽시다’에서 하차했는데 다시 좋은 모습으로 방송에서 볼 수 있기를 바라며 그녀의 앞날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