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진아 너 오늘 좀 혼나자…” 이재용이 법정에서 털썩 주저앉을 수 밖에 없었던 3가지 이유, 동생 이부진이 크게 혼난 진짜 이유

한국의 대표 다이아 수저 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이재용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농담으로 이재용으로 태어나면 어떤 느낌일까? 이렇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삼성가의 장남이 되었다는 가정을 재미삼아 해보는데요 모든 걸 다 가진 것처럼 보이는 이건희가 아버지였던 삼성 부회장 이재용은 멍한 눈빛으로 털썩 주저앉으며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못한 모습을 보인 적이 있는데요

다이아 수저인 그는 평생을 주목받아야 되는 운명이기에 어릴 적부터 일찌감치 언론을 상대하는법을 비롯해 마땅히 명문가의 아들로서 지켜야 될 이미지와 언행에 관해서도 철저히 훈련이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52세가 넘은 그도 반복되는 인생의 굴곡에 많이 지쳤나 봅니다. 그는 두 번의 구속을 겪으며 점점 통제하기 어려운 감정이 동요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재용은 1968년 서울시에서 삼성가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1991년 그의 나이 24살에 삼성전자에 입사하면서 본격적인 경영을 배워나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29살이 되었던 1997년 이재용의 이름은 국민들에게 확실히 각인됩니다. 불명예스럽지만 삼성 에버랜드 주식 헐값 인수사건의 수혜자로 유명해지며 사실상 세금 없는 대물림을 했던 삼성식 절세의 주인공으로 비판이 타깃이 됐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이재용 입장에서는 세금 편법이 주인공이 된 게 억울할 법도 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시도는 당시 어렸던 그가 아니라 아버지와 임원들이 직접 주도했던 일이었는데요. 그를 또 비판하는 것은 이런 세금 문제 외에도 마이너스의 손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던 바로 대실패한 E-삼성 프로젝트였습니다.

하지만 이 삼성프로젝트 역시 그가 주도한 것이 아니라 이건희 회장의 지시로 추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런 우려와 불신이 줄어들고 그의 경영 능력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아버지 이건희 회장이 2013년에 병상에 눕기 시작한 이후로 그룹 총수 역할을 했던 2014년도부터 해마다 드라마틱한 실적을 이뤄내며 추진력으로 대표가 되었던 이건희와 다르게 그는 실용주의를 앞세운 자신의 리더십을 입증했습니다.

의전을 싫어하는 소탈한 성격으로 해외 출장길에서는 혼자 공항을 자주 갔으며 임원들이 타던 전용기와 헬기를 매각하고 출장지에서 불필요한 의전은 모두 없애고 물론 직원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식사도 같이 하는 비권위주의적 행보를 이어나갑니다.

때문에 기존의 권위적이고 카리스마 있던 재벌 총수들의 이미지가 아닌 친화적이고 인간적인 일화가 여러 차례 소개되면서 그는 점점 더 젠틀맨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하죠. 그래서 아버지 이건희가 심장병으로 쓰러진 후 대중들이 우려했던 그의 능력과 카리스마는 매해 거듭되는 최고의 실적 및 인간적인 친숙함을 통해 삼성을 매끄럽게 이어받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정농단 사건으로 다시금 비판대에 올라선 그는 2번의 구속 수감을 겪게 되며 심리적 육체적으로 많이 위축된 상태입니다. 첫 번째 구속 수사를 당한 이후 이재용은 정부에게 달라진 모습을 보이기 위해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열며 다음과 같은 큰 변화를 약속했습니다.

“첫째, 저는 제 아이들에게 경영권은 물려주지 않은 생각이며 둘째, 노조가 없던 삼성문화였지만 앞으로는 노조 개설을 보장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경영권 승계 문제 같은 편법의 논란을 더 이상 만들지 않게하겠습니다.” 이 대국민 사과는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그가 현 정부를 참 두려워하고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는 올해 1월 18일 두 번째 고속 수사를 당하며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됩니다. 특히 이번 구속에서는 그가 정신적 충격을 받고 멍하니 털썩 주저앉았던게 알려져 많은 안타까움을 사고 있습니다. 첫 번째 구속과 달리 두번째 구속에서 굳세던 이재용을 무너뜨린 세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하는데요.

첫째, 350일동안 경험했던 구속에 대한 트라우마입니다. 맨 처음 수감생활은 경험하지 못한 것이니 당황하면서도 의연하게 받아들였지만 350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그는 재벌로서 누리던 풍요로운 환경에서 춥고 열악한 구치소생활에 고생하며 트라우마가 생겨버린 것입니다.

둘째, 어머니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남겨진 자녀들에 관한 걱정입니다. 부친상을 당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장남인 자신이 두번째로, 구속이 돼버려 심적으로 많이 힘들어하던 어머니를 당연히 아들로서 걱정하고 미안한 것은 물론 평소 끔찍한 자식사랑으로 유명한 이재용이기에 두 자녀에 대한 걱정이 상당했을 것 입니다.

마지막 셋째, 돌아가신 부친에 대한 아들로서의 미안한 감정 때문입니다. 평소 이재용은 “30만명의 생계를 책임지는 수장이자 우리 삼성의 성과에 따라 나라의 경제가 큰 영향을 받고 있기에 부담감이 막중하다” 라는 이런 막중한 책임감으로 경영하던 그였기에 가문 역사상 처음으로 구속되며 총수 자리가 몇년간 비게될 현재 이런 상황들이 이건희 회장에게 정말 죄송스러웠을 것 같습니다.

나아가 그에 부친 이건희는 이재용을 위해 다음과 같은 두단어를 떠나기 전 손수 쓰며 전해졌다고 합니다. 바로 ‘경청’과 ‘삼고초려’라는 두 단어입니다. 높은 위치에 있을수록 남의 말을 많이 듣고 인재를 구하기 위해서는 유비가 제갈량을 삼고초려 했듯이 성심을 다하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철학을 항상 신념처럼 여기며 지켜가려고 했던 그였기에 자신의 여동생들이 기업 철학을 어길때면 무서운 오빠로 돌변한다고 전해집니다. 한 번은 아끼던 여동생인 이부진에게 크게 화를 낸 적이 있었는데, 삼성의 임원식당에서 식재료로 쓰인 쇠고기의 질이 좋지 않았다가 화근이 되었다고합니다.



당시 임원 식당을 관리하던 사람은 신라호텔을 운영하던 이부진으로 이재용은 본인은 상관없지만, 그가 어렵게 스카우트한 고급 인재들이 질 낮은 사내 음식을 먹으면 삼성에 대한 이미지가 어떻겠냐며 애사심은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는 이유였다고 합니다.

우리는 꽤나 많이 씁쓸해하고 금수저들을 부러워하지만 이런 일화들을 보자면 개인적으로 재벌가의 자녀들은 가진 것 대비 덜 행복한 삶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선친들이 이뤄놓은 기업을 더 발전시켜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책임져야 될 직원들 그리고 자신의 경영능력에 쏟아지는 전 국민적 관심과 평가가 항상 따라다니기 때문인데요

장남이자 한 가정의 아버지 그리고 사회적 공헌에 분명히 이바지한 한 평범한 인간인 삼성 부회장 이재용을 조금은 응원해 줬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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