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덕화가 ‘더우인’이라는 업체에서 170억원을 받고 생애 첫 SNS를 개설해서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더 주목을 받았던 건 단 10분 동안 진행한 생방송에서 1000만명의 실시간 시청자 수를 기록하며 무려 86억원의 수익을 추가로 벌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성공만 한다면, 엄청난 돈다발을 안겨주는 중국 시장을 향해 유덕화는 오히려 한국의 사례를 들며 주요 팬층인 중국인들을 꾸짖어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한국 영화가 지금처럼 성장하기 전이라서 우리나라 영화잡지 마저 홍콩 영화와 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기사의 비중이 대다수였습니다.
당시에 홍콩 영화가 얼마큼 인기가 있었는지 홍콩에 내노라하는 스타들인 성룡, 주윤발, 유덕화, 장국영, 왕조현 등이 국내 CF시장을 점령해버린 것이고.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중국 노래가 흘러나왔을 정도 입니다.
그중에 유덕화는 한국인이 사랑한 홍콩배우 중 한명으로 그는 1961년 홍콩의 대포라는 한 농촌에서 태어났습니다. 대부분 무만 먹으며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어렵게 자랐던 주윤발과 달리 유덕화의 어린 시절은 엄청 부유했다는 정보 외에는 그동안 알려진 게 별로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유덕화 본인이 자신의 성장과정에 대한 인터뷰를 늘 거절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나이 60세에 다다르면서 젊은이들을 위해 자신의 스토리를 털어놓게 되는데요.
그는 자신의 인생 시작은 부유했던 집안에서 출발했다고 직접 밝혔지만 도시에서 시골로 이사를 가면서 할아버지 유산을 아버지가 받지 못하면서 가난이 시작했고 유덕화가 11살 때 집이 화재로 인해 전재산을 날리면서 안해본 일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 그는 잘생겼으니 연기자에 도전해 보라는 친구의 권유로 홍콩의 TVB 방송국 연예인 훈련반 10기에 합격하며 연기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중국 팬들이 가장 최고의 작품으로 꼽는 것 중 하나인 녹정기에서 강희재 배역을 필두로 그는 홍콩의 배우 중에서도 엄청난 다작을 하는 배우로 유명해졌습니다.
유덕화가 중화권을 넘어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에 인기를 얻게 된 계기는 바로 국내에 카지노 무비 붐을 일으킨 1989년작 ‘지존무상’에 이어서 ‘천장지구’에서 청재킷에 입고 오토바이 타는 씬이 화제가 되면서 한동안 대한민국 청년들은 유덕화 흉내를 내는 것이 유행이 돼버렸습니다.
그렇게 한국과 중국에서 인기의 절정을 찍은 유덕화는 돈과 인기보다는 자신의 신념과 주위 사람들을 위해 살아왔는데 그런 그가 본인에게 돈다발을 안겨주는 중국 사람들에게 제발 한국을 좀 배우라고 당당히 꾸짖었다고 합니다.
그가 말하길 내 일생 중 가장 여러 번 감상했던 영화는 바로 올드보이다. 젊은 적만 해도 나는 한국에 문화를 전파하며 인기를 누렸던 위치였지만 이렇게 한국영화가 지금의 홍콩영화를 누르고 돋보적 인기를 누릴거라고 상상을 못했었다.”라며 이야기 하며 이유에 대해 말을 이어나갔는데요.
“홍콩이 왜 이젠 한국의 상대가 안 되는지는 바로 중국정부가 홍콩 반환 이후 문화콘텐츠에 깊숙이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작품의 주제와 내용이 사전 검열당하고 정부 입맛에만 맞는 영화를 생산했기 때문이다. 전 세계 어느 국가도 중화사상 가득한 우리의 유치한 영화를 반기질 않는다. 오직 중국인 당신들만 중국 정부가 원하는 대로 박수를 쳐주는 것이다.” 라며 중국사상이 가득한 홍콩영화를 비판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그는 “이제 우리 중국인들은 제발이지 위기감을 갖고 한국에 뒤처지지 않도록 정신을 차릴 때가 왔다” 며 중국인들을 꾸짖어 일명 사이다 발언을 했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인성과 당당한 소신이 있는 그는 환갑을 앞두고 있는데요.
그의 외모가 여전히 젊었을 적 못지않게 수려한 것은 이런 좋은 인품과 좋은 생각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멋진 행보 계속 기대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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