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 당하는게 일상이었다.” 박구윤이 참다 못해 폭로한 사실, 만행을 저지른 선배가수의 충젹적인 정체

박구윤은 한때 트로트를 하겠다고 하자 집안 망신이라며 그야말로 쫄딱 망하고 말았고 또한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다고 최고의 트로트 작곡가 아버지가 있음에도 선배들이 인사를 받지 않고 심지어 격 떨어진다며 욕까지 하자 지금도 자신의 이름을 모른다고 고백하기도 했는데요.

1982년 서울에서 태어난 박구윤은 태어나보니 아버지가 현철의 ‘봉선화 연정’ 송대관의 ‘네박자’ 등을 만든 트로트계의 전설적인 작곡가 박현진으로 그래서 엄마 뱃속에서부터 태교로 쿵짝쿵짝 트로트를 들어 모태 트로트로 태어났다고 했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동요보다 트로트가 친숙한 모태 트르트로 자랐지만 성인이 된 후 오히려 그게 싫었던 그는 자신만의 음악이 있고 아버지와는 다른 길을 가겠다며 뜬금없이 알앤비 가수의 꿈을 꾸게 됩니다. 이처럼 트로트는 전혀 생각을 안 하고 알앤비를 준비하던 그는 박효신 김범수 이적 등 당시 내노라하는 알앤비 가수 의 코러스를 하며 본인도 가수를 준비했고 하지만 기회가 여의치 않아 쉽사리 데뷔를 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런 와중 어느 날 문득 예전의 아버지 했던 말이 떠올랐다고 합니다.


당시 아버지가 지나가는말로 “야 그러지 말고 그냥 트로트해라 트로트를 해야 가수의 생명력도 길고 포괄적으로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게 트로트다”라고 말한게 떠올랐고 그당시 트로트 가수들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알앤비와 트로트 중에서 고민을 하다가 결국 트로트로 결정을 내렸다고 하는데요.

마침내 트로트 가수를 준비하게 되었고 그런데 처음에는 아버지의 후광이 싫어 아버지의 곡을 받지 않고 이름도 성을 버리고 구윤이란 이름으로 가요계에 데뷔하게 됩니다. 그리고 데뷔곡이 말랑말랑이라는 노래였는데 사실 이 노래는 아버지의 후광이 싫어 선택했다고 하나 아버지와 똑같은 길을 걷고 있는 친형이 만든 노래로 그런데 당시 아버지의 강압에 의해 만든 곡이라 그런지 박구윤의 첫 트로트 앨범은 그야말로 쫄딱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2집까지 망하자 히트곡 제조기인 아버지가 아들 박구윤을 위해 곡을 쓰게 되는데 그런데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다고 보통 다른 사람의 곡은 일주일에서 보름 정도면 만드는데 예민해서 그런지 무려 세 달이 넘도록 곡이 완성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훗날 박구윤의 최대 히트곡이 되는 ‘뿐이고’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박구윤은 맘에 들지 않았고 당시 선배 가수들에게 검증을 받았다고 합니다. 박상철과 한혜진 두선배의 확언을 듣고서야 녹음을 진행하게 되었는데 하지만 처음에는 신인 박구윤을 써줄 무대가 없어 힘들었지만 어렵게 첫방송을 하게되는데요.

하지만 소속사 대표님의 요청으로 빨간가위를 들고 노래를 부르려고 했고, 하지만 당시 피디가 박구윤의 모습을 보더니 “야 너 우리 방송을 뭘로 보고 지금 그딴거 들고 왔냐 이런 거 하지마”라고 했지만 이때 박고윤이 피디에게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만약 관객들의 호응이 없으면 바로 때려치겠습니다”며 애원 끝에 겨우 무대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빨간 반짝이에 빨간 가위를 들고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열화와 같은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왔고 그러자 이를 지켜본 피디도 “야 이것 봐라 재밌는데 앞으로 계속 한번 해봐 내가 너 보장하는데 다른 피디들도 널 인정할 수밖에 없겠다”며 그를 인정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엿장수 가위를 들고 노래하는그를 못마땅해 하는 선배 가수들이 굉장히 많았는데요 훗날 그의 고백에 따르면 당시 수많은 선배님들이 자신의 모습에 회초리를 들었는데 ‘그게 뭐냐’며 인사를 안 받는 건 기본이고 심지어 어떤 선배들은 “격 떨어진다”며 욕까지 한 선배들도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트로트계의 전성기를 맛본 그지만 살짝 아쉬운 것이 있다고 하는데요. 그의 노래’뿐이고’가 너무너무 유명해서 그런지 정작 본인의 이름 석자는 노래만큼은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그래서인지 뿐이고는 알아도 가장 중요한 이 노래의 가수인 박구윤을 모르는 경우가 많아 실제로 훗날 복면가왕에 나와 그가 했던 말이 “자신의 이름을 더욱 알리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유명 작곡가인 아버지 밑에서 트로트의 가수로서도 성공하면서 아버지가 얼마나 뿌듯하셨을까요. 또한 아버지의 후광을 버리기 위해 계속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지 짐작이 갑니다. 박구윤씨의 끝나지 않은 트로트인생을 응원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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