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빈은 군 제대 후 어느 날 남자 장윤정은 왜 없냐는 부모님의 말씀을 듣고 바로 트로트 가수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트로트 가수가 되기로 결심한 박현빈은 서울 대전 대구 부산 ‘빠이빠이야’를 만든 정의성 작곡가를 무작정 찾아가서 트로트 가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으며 그 자리에서 오디션까지 봤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장윤정이 있던 회사 역시 무작정 찾아가서 남자 장윤정이 되겠다며 인사를 드렸지만 하지만 그때 당시 장윤정 회사는 남자 가수는 원치 않아서 거절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다행히 그래도 오디션 과정은 한번 거치게 하자는 의견이 있었고, 이때 박현빈이 10년 이상 쌓은 성악 실력 덕분에 소속사 관계자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결국 계약까지 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박현빈 형제는 모두 음악을 했는데요. 부모님은 주변 사람들의 비난을 들으면서도 형제에게 음악 공부시키는 것을 포기하지 않으셨다고 했습니다. 그 덕에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많이 받았으며 음악은 돈이 많이 드니까 사람들이 집이 부자인 줄 알았지만 그의 집은 사실 어려운 형편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나중에 돈이 있어도 음악을 못 배운다고 생각한 어머니는 이렇게 힘든 형편 속에서도 형제에게 음악 공부를 시켰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박현빈은 집안의 빚이 있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부모님의 자녀 교육 방침 덕분에 음악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원래 그는 성악을 하고 있었지만 당장 돈을 벌기 위해 뭔가를 했어야 했는데 어느 날 남자 장윤정은 왜 없냐는 부모님의 말씀을 듣고 바로 트로트 가수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장윤정 회사에 계약을 하게 된 박현빈은 가수로서 활동할 이름을 지어야 했습니다.
한 번 불리기 시작하면 이미지가 굳기 때문에 고르기 쉬우면서도 빠르게 기억될 이름이 절실했다고 했습니다. 당시 방송가의 가장 큰 이슈는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이었고 그때 회사 대표가 장윤정에게 요즘 가장 잘 나가는 남자 배우가 누구냐고 묻자 장윤정이 현빈이라고 대답했고 이 한마디에 예명이 박현빈이 되었으며 트로트계의 현빈이 되라는 뜻이었다고 했습니다.
참고로 성악을 오래해온 박현빈이 트로트 창법으로 바꾸는 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마이크로 소리 내는 점도 어색했고 클래식에서 사용하지 않던 트로트 기교 역시 필요에 많은 노력을 했다고 했습니다. 이런 준비 과정을 모두 거친 박현빈은 마침내 2006년 ‘빠라빠빠’로 데뷔하게 되는데 데뷔하자마자 월드컵 붐과 지방선거에 편승하여 사람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좋은 기세를 몰아 첫 정규 앨범까지 내게 되는데 그의 인생곡 ‘곤드레만드레’를 발표하게 됩니다. 이 노래는 그야말로 엄청난 히트를 치면서 전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졌고 이때 박현빈은 데뷔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모니터링 전문사이트 차트 코리아의 조사한 결과 9월 넷째 주 TV와 라디오 방송 횟수로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해냅니다.
2007년에 두 번째 싱글의 앨범 ‘오빠만 믿어’는 대한민국 제 17대통령 선거 당시 로고송으로 시장을 독식하며 로고송의 절대강장 부상하여 고공행진을 이어가게 됩니다. 2008년에는 2집 앨범의 타이틀 곡 샤방샤방을 발표했으며 이 노래 또한 총선기간 인기 로고송으로 사용되며 시선몰이에 성공하게 됩니다.
2011년에는 일본에 진출하여 자신의 곡 샤방사방을 일본어로 변환시켜 앨범을 제작해서 발매했고 새로운 트로트 한류스타로서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하게 됩니다. 박현빈은 신세대 트로트가 가수 중에서도 크게 성공한 가수로 손꼽히며 장윤정 이후 가장 크게 성공한 트로트 가수로 꼽히게 됩니다.
그는 한때 장윤정 등이 소속된 국내 최대 트로트 기획사에 몸담았지만 소속사가 내부 분열로 공중분해되면서 모두가 이해타산을 따져 뿔뿔이 흩어졌다고 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유일하게 박현빈만 어려웠던 신인 시절 도움을 준 홍익선 대표를 선택하면서 의리있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사실 이런 선택은 몸값을 앞세워 새로운 소속사로 쉽게 이동하는 가요계의 순리상 매우 드문 케이스였습니다. 가수 입장에선 고액 계약금을 받거나 유리한 수익 분배율로 계약해 이익을 얻을 기회를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박현빈은 혼자만의 독주가 아니라 함께 가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초심을 잃었던 적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그는 다시 한번 초심을 잃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되새기며 언제 어디서든 유쾌한 무대로 관객들을 들었다 놨다 하는 열정을 다했다고 했습니다. 사실 진짜 박현민의 성격은 우리가 알고 있던 이미지와 달리 본래 성격은 매우 존중하고 조심스러운 편이라고 밝혔습니다.
트로트가 지금처럼 대중들의 사랑을 받기 전 2000년대부터 누구보다 트로트를 사랑하고 트로트 발전에 큰 기여를 한 박현빈 그의 앞날에 늘 큰 축복이 가득하길 역시 끝까지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