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도 없이 뻔뻔하게 여기가 어디라고 와?” 겁 없이 향년 46세 김주승 빈소를 찾아온 장영자, 하희라가 장영자를 막아선 진짜 이유

최근 한 방송에서 희대의 사기꾼이라 불리는 장영자가 직접 모습을 드러낸 화제입니다. 장영자는 7천억이 넘는 돈을 그것도 지금으로부터 43년 전에 주물렀던 회장님으로 이 프로에서 장영자를 섭외하는 과정이 굉장히 힘들었다고 했으며 가족을 설득하고 측근을 설득하고 몇 번의 설득 끝에 마침내 카메라 앞에 모시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건국 이래 최대의 스캔들 메이커이자 7000억 신화의 주인공 장영자가 고백하길 “내 입으로 처음 밝히는 내용인데 내가 입을 열면 그야말로 폭탄이다. 왜? 내가 말하면 팩트가 뒤집히니까 지금까지 수십년간 고정돼 왔던 고정돼서 날 매도해왔던 게 정확한 진실로 뒤집히니까” 라고 했는데요. 무슨 이야기길래 폭탄이고 팩트가 뒤집힌다는 걸까요?

더불어 80년대 최고의 톱 스타 김주승이 큰손 장영자의 딸과 결혼해 화제를 모았지만 잇단 불행을 겪으며 사생활을 철저히 비밀에 부칠 수밖에 없었고 심지어 유족들이 조문도 받지 않고 빈소도 공개하지 않은 안타까운 이유에 대해 말해 보고자 합니다.

장영자가 당시 했던 사업은 돈의 유통 사채였고 1981년 사채 시장 규모는 어마어마했던게 당시 대한민국 전체에 돌아다니는 돈을 싹 다 긁어 모으면 4조원 정도 됐는데 사채 시장의 통화량은 무려 1 조 원 대였습니다. 장영자는 엄청난 카리스마와 포스로 사채 시장을 휘어잡아 한 10년 만에 초갑부가 되게 됩니다.

이후 그녀와 남편은 기업을 상대로 현금깡을 하고 정치권에는 검은 돈과 비자금을 대며 승승장구했으나 얼마 못과 어음을 써준 기업들이 줄줄이 부도가 나면서 건국 이래 최대의 사기 사건이라는 폭탄이 터져 그녀는 15년형의 감옥에 들어가게되었습니다.

15년을 받은 장영자는 구 10개월에 가석방으로 풀려났는데요. 하지만 그뒤로 계속되는 사기 사건에 감옥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을 반복하게 되었고 그렇게 장영자는 감옥에서 환갑을 지내고 2015년 칠순 노인이 돼서야 출소를 했습니다.

한편, 그녀의 사위 탤런트 김주승 그는 장영자 사위가 되기 전만 하더라도 여러 드라마에서 지적이고 도시적인 이미지로 많은 인기를 누렸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삶에 변화가 생긴 것은 90년 금융비리로 유명한 큰 손 장영자의 딸과 결혼하면서부터 이때부터 그는 연기를 때려치우고 다양한 사업에 손을 대기 시작했으며 94년에는 장영자 부도 사건 여파로 미국으로 도피하는 등 많은 시련을 겪어야 했는데요.

엎친 듯 덮친 격으로 그는 87년 신장암과 췌장암이 연이어 발병하는 불운을 겪어야 했고 하지만 두 차례 수술로 건강을 되찾은 후 2003년에는 한국방송연기자협회 회장으로 선임되고 드라마 제작사를 설립하는 등 재기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게 됩니다.

하지만 사업이 그리 성공적이지 못한 가운데 또다시 몸에 이상을 느끼고 병원을 찾았을 때는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신장한 말기라고 했는데요. 이후 서울 여의도의 한 병원에서 항암 치료를 받기 시작했지만 항암 치료를 시작하자 그는 눈에 띄게 쇠약해져갔습니다.

그리고 항암 치료를 받는 동안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여러 차례 병원과 거처를 옮겨 치료를 받는 동안 그는 뚜렷한 거처도 없이 서울 외곽의 친구 집, 경기도 부천의 요양원 등을 오가며 쓸쓸한 투병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그는 친하게 지내던 지인들에게조차 투병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병원도 여러 차례 옮기다가 결국 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유족 측은 이와 관련해 그가 왜 이렇게 조용하게 생을 마감한 이유가 무엇인지 투병 생활이 어떠했는지 누가 간병을 했는지 등 김주승의 별세를 둘러싼 모든 의문에 대해 철저히 함구했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김주승의 빈소에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배우의 마지막 가는 길이라 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적막했는데 입구에는 고인의 이름조차 적혀 있지 않았으며 김주승의 어머니와 친구 그리고 후배 몇 명이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조용하게 배웅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한편, 이때 뒤늦게 소식을 듣고 찾아온 배우 하희라, 김동현 ,김정현, 오대규, 정보석 등 평소 고인과 가까이 지내던 동료들이 찾아왔으나 이때도 유족들이 조문을 받지 않겠다고 하여 어쩔 수 없이 다시 발길을 돌려야 했고 심지어 미국의 거주 중인 김주승의 아버지와 형제들, 또 이혼한 전처와 딸의 모습도 볼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조용해도 너무 조용한 장례를 치르는 이유에 대해 김주승의 지인은 다음과 같이 고백하게 되는데 “이는 조용히 세상을 마감하기를 원한 고인의 뜻이었다. 형이 유언으로 조문을 받지 말 것을 부탁했다” 라고 했으며 또한 4남 2녀 중 끔찍하게 사랑했던 막내 아들의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해 친지들에게조차 별세 사실을 알리지 않았던 그의 어머니도 “아들의 마지막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싫다”며 조문받기를 거부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생전 마지막 인터뷰 당시 지금까지 자신의 삶에 대해 스스로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에 그가 한참 동안 생각한 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내 의지대로 산 삶이다.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는데요. 이처럼 불꽃같은 삶을 살다간 故김주승 배우님의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