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을 단 한번도 쉴 수 없었다…” 잘나가던 이영자 마침내 입을 땐 충격적인 가족사, 그녀가 쉴 수 없는 안타까운 이유

서민이었던 이영자의 가정에서 그녀가 연예인이 되어 돈을 많이 벌게 되자 그녀는 자연스럽게 가족들의 기둥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언니의 형부가 조카들이 3살하고 3개월 때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자 언니가 너무 애처로워 조카들을 내 자식처럼 생각하고 그녀가 연예인으로 돈을 벌어 제일 먼저 한 게 언니의 집을 마련해 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그녀가 온 가족들의 기둥이었으며 어느 날 고개를 돌렸더니, 모두가 자신만 바라보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영자에게 ‘이제 결혼해야지’라고 이야기하지만 만약에 자신이 결혼했다가 자신만 바라보고 있는 가족들을 지켜낼 수 없을까봐 할 수가 없었으며 세월이 흘러 이제는 자신의 인생을 챙기기로 돌아보니 어느덧 세월이 많이 지나 나이를 꽤 먹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집안에 강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 있으면 상대적으로 가족들이 나약해진다면서 이제는 가족들이 뭘 해도 ‘영자가 있으니까’ 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방송을 쉴 수도 없고 열심히 살 수밖에 없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녀의 어린 시절 부모님은 생선 가게를 하셨고 그로 인해 자신의 몸에서 생선 냄새가 난다는 게 어릴 때부터 콤플렉스였다고 했습니다. 그녀가 학창시절 씻고 교복을 입고 학교 갈 준비를 하면 갑자기 떨어지는 부모님의 생선 배달 지시로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에 그때가 가장 창피 했던 순간이었다고 했습니다.

이영자 그녀는 서울예술대학교 연극과를 졸업했고 연예계에 데뷔했는데요. 이전 1980년대 말부터 이미 밤무대의 특A급 MC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현재 그녀는 밤 무대는 그만두었지만 여전히 무대 행사의 여왕으로 군림하고 있으며 전국 곳곳을 가리지 않고 무대 MC로 활약하며 매년 엄청난 수의 행사를 소화해내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경험과 고유의 식탐이 만나 전국에 모르는 맛집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곤 했었습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개그계에 새 인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전유성이 밤무대와 거리의 소극장을 뒤져서 찾아낸 것이 바로 이영자였다고 합니다. 당시 이영자에게 지상파로 나올 것을 제의했었는데 3일만 시간을 달라고 했고 정확히 3일 뒤에 나타나서 요청을 수락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고 이영자 그녀는 1991년 MBC 특채 개그우먼으로 연예계 정식 데뷔 하게 되었는데요. 당시 MBC는 1989년 이후 개그맨 콘테스트를 선발하지 않아 쓸만한 신인 발굴에 어려움을 겪어온 데다 ‘정재환’ ‘박미선’ 등 핵심 개그맨들의 SBS로 이적까지 겹쳐 분위기가 어수선해진 상태였다고 하는데요.

그 상황에서 전유성의 추천으로 이영자는 1992년 1월 MBC 청춘 행진곡 ‘신부 교실’에서 서울로 상경한 영자역을 맡으면서 현재의 예명인 이영자로 활동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비방용 토크에 강하며 뚱녀 캐릭터의 드센 아줌마 개그에 특화된 코미디언으로 살아가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1994년 1월 MBC를 떠나 프리랜서를 선언하게 되고 같은해 SBS <기쁜 우리 토요일> MC를 맡으며 이영자의 전성시대’를 히트시켰는데요. 심지어 이경규, 김국진, 신동엽, 유재석, 강호동도 해내지 못한 주말 예능 지상파 3사 제패를 이뤄내게 되었습니다.

이영자는 그뒤로 지금까지 꾸준히 방송활동을 이어오고 있는데요. 중간에 여러가지 논란들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현재는 맛집을 소개하며 시청자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데요. 그녀는 ‘자기자신을 두고 머리가 좋고 입담이 좋지 않아 몸으로 웃기는 사람이다’ 이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음식을 얘기할 때는 청산유수가 되는 이영자의 계속된 맛집이야기들을 기대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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