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훈아의 모창 가수로 알려진 고인이 되신 너훈아 씨는 현재 폐암 투병 중인 김철민 님의 형이자 짝퉁 나훈아로 널리 알려진 가수입니다.
너훈아의 본명은 김갑순입니다. 그는 어릴 적부터 박수갈채를 받는 가수를 꿈꿨는데요.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그의 어머니는 전 재산과 다름없는 소 한 마리를 팔아 그의 꿈을 지원해줬습니다.
그렇게 1988년 자신의 이름인 가수 ‘김갑순’으로 대표곡 ‘명사십리’가 포함된 그의 첫 앨범을 드디어 세상에 내놓습니다. 그러나 앨범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고 그는 오랜 무명 생활에 들어가게 되었는데요.
한마디로 쫄딱 망한 그는 어머니가 있는 고향으로 다시 돌아갔고 어느 날 우연히 나훈아 모창대회에 나가 금상을 수상하며 그의 제 2의 가수 인생 너훈아로 시작하는 계기를 맞게 되며 더 정확히는 1990년대 초반 개그맨 고 김형곤 씨의 권유로 무명가수 김갑순이 ‘너훈아’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나훈아를 따라하는 익살스러운 그의 표정과 제스처 뒤에는 하루 50곡 이상 나훈아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디테일한 나훈아의 습관까지 놓치지 않았던 피나는 그의 연습이 존재했습니다.
비록 김갑순의 이름으로는 불러주는 무대가 없어 오르진 못했지만, 너훈아의 이름으로라도 그가 사랑하는 무대를 오르기 위해 그는 자신이 가진 최대한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30대 중반부터 너훈아가 된 김갑순은 25년간 너훈아로 바쁜 나날들을 보내게 됩니다. 그는 생전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나훈아는 아니지만 무대에 서면 나훈아를 찾는 팬들이 나를 통해서 대리만족을 느낀다.”
그렇게 그는 나름의 자부심을 갖고 나훈아를 만나기 어려운 이들에게 찾아가 그의 노래와 무대를 통해 관객들에게 자그마한 즐거움을 선사했습니다. 하지만 25년 너훈아의 삶이 마냥 즐겁고 행복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때로는 밤무대 공연을 할 때면 만취한 손님들이 그를 향해 술병을 던지며 “니가 나훈아냐 넌 짝퉁 나훈아야 무대에서 당장 내려와” 이렇게 야유와 폭력을 행사할 때도 많았다고 합니다.
본인 이름인 김갑순으로는 불러주는 무대가 없기에 그가 사랑하는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 너훈아의 삶을 차선책으로 택했던 그에겐 ‘짝퉁 나훈아’라는 조롱은 항상 큰 상처가 남았는데요.
한 번은 밤무대 사회를 보던 친한 지인이 그를 소개할 때 짝퉁 나훈아로 소개하여 10년간 등을 진 적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는 짝퉁 가수가 아닌 모방 가수라는 가요계의 한 존재로 늘 인정받으려 노력했습니다.
하루 3~4개 스케줄을 소화할 정도로 바쁜 삶을 보냈던 그에게 2012년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찾아왔습니다. 바로 간암 3기 판정으로 4년간의 시한부 선고를 받은 것입니다. 그는 이 시한부 선고를 받고 덤덤하게 다음과 같이 지인들에게 얘기했습니다.
“죽을 땐 죽더라도 무대 위에서 노래하다 죽겠다.” 그리고 그의 말처럼 그는 한 공연 중 쓰러져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적장애인 보호시설에서 너훈아의 얼굴만이라도 보고싶다는 요청에 그는 힘든 몸을 이끌고 무대에 오를 정도로 소외계층을 위했고 의지가 있던 남자였습니다.
어려운 이들을 돕기 위해 지적 장애인 보호시설에서 불렀던 그 무대가 결국은 그의 마지막 무대가 되었는데요. 이외에도 2005년에는 산불 피해 지역 주민들을 위해 다른 후배 모창 가수들을 모아서 위문 공연도 나섰습니다.
그 정도로 봉사적이었던 그는 항상 주위 사람들에게 양로원을 짓고 독거노인을 봉양하며 살고 싶다는 바람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동생 김철민이 말하길 “형은 떠나기 전 이렇게 제게 말했습니다. 나는 평생을 가짜로 살았지만 너는 너의 이름으로 된 가수가 되어라”
이후 김철민은 멋진 가수가 되기 위해 노력중이라고 합니다. 본인의 입으로 가짜로 살았다고 말한 그였지만 너훈아의 팬들은 절대 그를 가짜라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던 그를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