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퉁 본명은 유순으로 1957년 부산에서 이남 이 녀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그가 7살 때 돌아가셔서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했다고 합니다.
장남인 그는 어린 시절부터 국밥집을 하신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일을 도왔다고 합니다.
학창시절 소위 일진으로 말썽을 많이 부렸다고 하며 이후 부산에서 연극 배우로 활동 1984년부터는 야구팀 롯데 자이언츠의 사설 응원단장을 맡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1987년 영화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로 데뷔하여 드라마 적색지대 여명의 눈동자 한지붕 세 가족 전원일기 등등 다양한 작품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예능 방송에서도 활약하는 등 티비에서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는데요.
하지만 어느 순간 방송에서 안 보인다고 생각이 들었을 즈음 국밥집 사장님으로 또 한번 유명성 떨치게 됩니다.
연예인이 요식업 사업에 뛰어드는 것은 제법 흔한 일이지만 연예인이라고 모두가 성공할 수 없을 만큼 요식업 사업은 만만치 않은 일인데요
연예인의 사업 실패담 제법 흔하게 들을 수 있죠.
하지만 그의 국밥집 사업 어린 시절 외할머니와 어머니를 도와 국밥집을 하였던 경험 때문일까요? 단순히 연예인의 이름만 내세운 사업은 아니었던지 유통님의 국밥집은 크게 성공하였습니다.
전성기 시절 월 매출이 1억 5000만 원에 이른다고 방송에서 밝히기도 하였었는데요.
방송에서 말하는 성공의 비결은 망한 가게에 자리를 잡는 것이라고 하며 월세가 싼 장점을 이용해서 서비스를 충실히 한 결과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걸 보면 맛도 맛있지만 과감한 사업 수완도 뛰어났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국밥집의 큰 성공으로 연예계 활동보다 국밥집이 더 우선이 되었던 것 같은데요.
의외의 사실은 개인전을 열 만큼 조각이나 그림 등 예술가적 소양이 남달랐던 것 같습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확실히 그런 것 같죠 이렇게 한창 활동할 당시에는 영화나 드라마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서 보다가 국밥집으로 사람들에게 유명세를 떨치게 되었으며 그리고 또 한 가지가 있죠.
바로 결혼에 관한 이야기 유퉁이라 하면 많은 사람들이 결혼에 관한 이야기부터 떠올리실 것 같습니다.
8번의 결혼식과 5명의 아내 8번의 결혼식이라 아내도 8분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진 않구요.
그의 첫 번째 결혼은 1975년 19살에 첫 결혼을 하였다고 합니다.
두 살 연상이었던 아내와 이혼과 재결합을 반복하여 총 세 번의 결혼을 하였다고 하네요.
첫 번째 아내와 결혼을 해서 낳은 두 아들이 벌써 40대 중반을 넘어섰다고 하니 지금 기준이라면 상당히 빠르죠 그리고 네 번째 결혼이자 두 번째 아내 이것이 당시의 큰 화제였었죠.
1995년 15살 연하의 비구니 스님과의 결혼 아내가 스님이 되기 이전에 인연을 맺었다가 이후 여승이 된 사실을 알고 산사에 머물며 설득 끝에 결국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렵게 결혼한 두 사람 안타깝게도 3년 만에 이혼 소식을 전하게 됩니다.
이후 5번째 결혼은 스무 세살 연하의 대구 출신의 여성입니다. 두 사람은 한창 유퉁 국밥집을 하던 중 만났고 결혼 후에도 국밥사업을 승승장구 성공시킨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게다가 부부가 함께 성인용품 광고에도 출연하는 등 당시의 재산을 많이 불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3년 만에 이혼을 하게 되고 이후 뉴질랜드에 가서 크게 사기를 당하기도 하는 등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6번째 결혼이자 네 번째 아내는 몽골인 아내 바상자르가 시화하였습니다.
당시 KBS의 인기 방송이었던 도전지구 탐험대에서 인연을 맺었다고 하는데요.
2005년 바상자르갈씨가 20살일 때 임신 후 딸을 낳았다고 합니다.
다만 장모와의 갈등이 문제가 되었는지 아내가 몽골로 가면서 잠적을 해버렸고 결국 정상적인 결혼 생활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딸의 생활을 위해 재산을 분할하고 이혼을 하는 선택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네 그리고 또 그다음 참 많죠 7번째 결혼이자 5번째 아내인 몽골인 잉크아물땅 뭉크 자르갈 유통님은 1957년생이고 아내분은 1989년생이니 무려 32살 차이가 나게 되죠.
게다가 장모가 오히려 12살 연하라고 하니 참 충격적입니다.
하지만 당시 방송 촬영 중에 지참금 문제로 결혼식이 직전에 무산되어 흑역사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한 번의 결혼식이 무산된 후 별거에 들어갔습니다. 결국 재결합하여 2017년에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이래서 8번째 결혼식 5명의 아내라는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는데요.
하지만 마지막에 뭉크 자르가 씨와의 결혼 유통 님은 한국에 거주하는데 몽골에 거주하는 아내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새로운 남편이 생기면서 이혼을 원했다고 합니다.
이에 따라 유퉁 씨는 몽골 전원주택 아파트 등을 위자료로 넘겨주고 딸의 학비를 부담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둘 사이에는 미미라는 딸이 있다고 합니다. 다만 전 아내였던 뭉크 자르가씨와는 아직도 연락을 하고 지낸다고 하는데요.
막내딸을 생각하는 마음과 개인적으로 이혼은 했지만, 아내의 결혼 사실을 모르고 살아온 내 탓이라며 여전히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에 더 이상 결혼은 없다고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결혼에 대한 가치관을 밝히기도 했는데요. 나는 성격상 책임감 약속과 같은 것을 중요시 여긴다 헤어지고 나면 혼자 있는 시간이 나에게는 고민과 고통 고행의 시간이다.
결혼을 장난처럼 생각하는 건 결단코 아니고 사람에 대한 책임감으로 결혼하는 것 이라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네 이렇게 유퉁님의 결혼에 관한 이야기 누군가는 만남은 결국 당사자 간의 문제이고 이혼 후의 문제도 위자료나 재산분할 등 책임을지는 모습으로 보여서 결혼과는 개인의 문제일 뿐 신경 쓰고 싶지 않다 이런 목소리도 조금 있는 반면, 그것도 어느 정도지 나이 차가 20살 30살 차이가 나는 외국의 여성들과 결혼을 하는 것 매매혼이나 다름없다.
도저히 좋게 보아줄 수 없다. 등등 이런 의견들도 역시 상당히 많았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마 대부분은 후자가 만날 것 같습니다만 아무튼 그런 그의 최근 근황 일단 그렇게 잘 나갔었던 유퉁 국밥 요식 사업도 코로나를 피해갈 수는 없었습니다.
최근까지 경남 창원에서 막창집을 운영하기도 하였지만 모두 폐업하고 현재 제주도에서 국밥집을 다시 하고 있으며 작품 활동도 꾸준히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또 딸이 있는 나라인 몽골을 위해 마스크 5만 장을 기부하였다고도 하는데요. 하루빨리 막내딸 미미야 같이 사는 게 꿈이라고 밝히기도 하였습니다.
이게 바로 올해 봄에 있었던 이야기인데요. 바로 얼마 전 6월이네요. 기사가 나왔습니다.
심혈관계 이상으로 병원에 입원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본인의 건강 이상의 충격을 받았던 것일까요? 그런 것은 아니고 안타깝게도 바로 이번에 몽골에 있는 딸의 코로나 확진 소식을 듣게 되었다고 합니다.
얼마 전까지 마스크를 모아 5만 장이나 보냈다 그런데 남 생각할 시간에 내 딸이 병든 것은 생각도 못 했으니 이게 아비인가란 생각이 들었다라고 하며 코로나에는 장사가 없다.
창원의 막창집도 내가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버티지 못했다. 이렇게 우왕좌왕 해보기도 처음인 듯하다 다행히 제주도에 사는 큰누나 덕분에 그나마 국밥집을 차리면서 제기를 모색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가족이 저리됐는데 아비란 놈은 남 돕겠다고 몽골 돕기 마스크 모으기를 하며 착한 척만 했다.
내 딸이 아플 거라곤 생각을 못 했다. 철없는 아비다 안타까운 사연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유퉁님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았습니다.
국밥집부터 시작해서 독특한 결혼관 그리고 코로나로 모든 걸 정리하고 아픔을 겪고 있는 최근의 근황까지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