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강수연 님이 결국 세상을 떠났습니다.
얼마 전 어린이날 자택에서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이송되었던 고강수연 님 뇌출혈 진단을 받고 혼수상태에서 병원 치료를 받았지만 당시 수술조차 어려울 정도로 상태가 위중했기에 또한 수술을 해도 경과가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 판단이 돼요.
수술조차 받지 못했기에 결국 고인은 향년 55세의 나이로 별세하였습니다.
고인의 사망 원인은 뇌졸중의 한 종류인 뇌출혈로 안타까운 것은 강수연 씨가 이미 한 달 전에도 건강에 이상을 느끼고 병원에 자주 다닌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다 사고 당일 극심한 두통을 느끼더니, 결국 쓰러지게 된 것인데요.
전문가들이 유력하게 생각하는 원인은 뇌동맥류라는 질환으로 뇌동맥류가 주머니처럼 붉어져 나오면서 얇은 막이 생기는데 이게 터지는 경우로 보통 중년 이후부터 나온다고 합니다.
고인이 쓰러지기 전 느낀 심한 두통이 전조 증상이라는 것이죠.
가족들이 병원에 빨리 가보자고 했는데, 그렇지 않고 조금 지체했다는 것으로 조금만 더 빨리 병원에 수술로 출혈 부위를 막아서 어쩌면 생명을 건질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하니 그것이 너무도 안타까운 일입니다.
고 강수연 님 1966년 출생으로 불과 네 살의 어린 나이에 길거리 캐스팅으로 영화배우로 데뷔한 그녀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어린이 드라마인 번개돌이 똘똘이의 모험 그리고 고교생 일기 등으로 일찍이 스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5년 영화 고래사냥 투에 출연하며 성인 연기자로서도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1987년부터 배우 강수연의 본격적인 전성기가 시작되었는데요.
그녀가 출연한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는 그의 한국 영화 흥행 순위 1위를 기록하며 대종상의 여자의 인기상과 첫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그리고 기세를 몰아 파격적인 소재를 다룬 영화 시바지에 출연하여 해외에서 주목을 받아 베니스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게 되며 이때부터 강수연에게 한국영화사상 최초의 월드스타라는 칭호가 붙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뿐만이 아니라 1989년의 영화 아재아제 바라아제에 출연한 그녀는 머리를 삭발하는 투혼을 선보였는데요.
이 영화 역시도 국내외에 이례적인 성공을 거두며 이후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이처럼 시바지 그리고 아재아제 바라아제 월드스타로서 새 역사를 쓴 그녀는 이어 개봉된 영화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경마장 가는 길 그대 안의 블루 등을 연이어 히트시키며 그야말로 영화계의 흥행 보증수표로 불리게 됩니다.
강수연 씨의 대단한 점은 비단 영화뿐만이 아니었는데요. 2001년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화제의 드라마 여인 천하에서 주인공 정난적 역할을 맡으며 또 한 번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처럼 영화와 드라마를 가리지 않고 오랜 세월 꾸준히 활동하며 연기가 인생의 전부였던 배우 고강수연 님 바로 올해인 2022년에도 정의라는 영화를 통해 배우로서 팬들과 만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갑작스러운 비보라니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운 애도를 표하고 있습니다.
그러며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고 강수연 님에 대한 미담들이 하나둘씩 나오고 있는데요.
고강수연님과 절친한 사이였던 아나운서 윤영미 씨는 자신의 SNS에 예전 강수 씨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며 평소 애주가였던 강수연 씨가 자주 방문했던 단골집 사장님의 이야기를 전하길 생전에 강수연 씨가 종종 방문해 곧잘 술을 마시던 식당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름 장마로 보일러에 물이 차서 고장이 난 것이었습니다.
어쩔 줄을 몰라서 넉이 나간 사장님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소박한 가게였던 것이죠.
그런 사장님의 모습을 보고 강수연 씨가 사정을 듣더니, 그 자리에서 바로 수리비 600만 원을 헌사했다고 합니다.
강수현 씨의 따뜻한 정과 그리고 시원시원한 성격을 알 수 있는 그런 일화가 아닌가 싶은데요.
아나운서 윤영미 씨는 고인에 대해 듣기론 그녀도 당시 넉넉지 않은 사정에 온 가족을 부양하는 자리에 있었다는데 참 통 크고 훌륭한 배우라며 고인을 추억하였습니다.
그리고 강수연 씨의 숨겨진 미담은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예전 SBS 드라마 여인 천하를 촬영할 당시 가마꾼을 연기한 엑스트라였다는 A는 촬영 당시의 일화를 말하길 강수연 씨가 가마꾼 역을 맡은 사람들 네 명에게 각각 수고하신다며 10만 원을 넣은 흰 봉투를 건네주었다고 합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촬영장의 엑스트라 배우들은 고생한 것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푼돈을 받아가며 열악한 환경에서 고생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촬영장에서 누가 알아주는 이도 없이 있는 듯 없는 듯 무시받기 일쑤라고 하는데요.
A는 강수연 씨 덕분에 일이 끝나고 너무 행복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하다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촬영장을 누비며 수많은 작품을 찍었던 강수연 씨 촬영장의 주연 조연 배우들뿐만이 아니라 엑스트라 배우들이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던 그녀이기에 그리고 호탕하면서도 정이 있는 사람이었기에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었나 생각이 됩니다.
여지껏 알려지지 않고 있다가 강수연 씨가 세상을 떠나자 비로소 세상에 나온 그녀에 관한 이야기들 단순히 여인천하 때의 이야기 말고도 그녀가 단역 배우나 스태프들을 잘 챙겨주는 건 이미 현장에서는 유명한 이야기라고 합니다.
전성기 시절의 그녀는 촬영하던 영화가 끝날 때면 항상 본인의 돈으로 뒤풀이를 하면서 저임금으로 고생하는 스태프들과 단역 엑스트라 배우들에게 한턱을 내곤 했는데요.
그때 그녀가 자주 하던 말이 우리 영화인이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라는 말을 자주 해 주었다고 합니다.
조금은 거친 듯한 말이지만 그녀만에 호탕한 격려의 말로 탕시 스태프들과 단역 배우들에게는 큰 힘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같은 강수현 씨의 말에 크게 감동받은 류승환 감독은 강수연 씨의 이 말을 훗날 자신의 영화 베테랑에서 주인공의 대사로 인용하게 됩니다.
이처럼 시원시원하고 거침이 없었던 강수연 씨 그래서 그런지 애주가였던 그녀는 남에게 술을 사주기를 좋아했고 그만큼 자신도 엄청난 주량의 주당이었다고 하는데요.
단순히 좀 잘 마시는 정도가 아니라 영화계에 즐비한 애주가들조차 강수연에게 술로 이겨본 적이 없었을 정도라니 대단한 주당입니다.
특히 재미있는 점은 술을 아무리 마셔도 전혀 술에 취한 티가 나지 않았다는 것인데요.
올라오면 탁자 밑에서 신발을 벗는 습관이 있었던 강수현 씨 오로지 그것만이 그녀가 취했는지 아니면 멀쩡한지를 구분하는 방법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일화들이 평소 그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시원시원하고 털털한 듯 호탕한 성격으로 같이 고생하는 무명의 단역배우들이나 스태프들 그리고 단골 가게의 사장님까지 주변에 남몰래 고생하는 이들에게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정이 많은 사람이지 않았나 생각이 됩니다.
강수연 씨의 이 같은 성품 때문인지 배우 이성민 씨도 평소 강수연 씨를 우상처럼 여겨왔다고 하며 마찬가지로 배우 경수진 씨도 배우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된 사람이 바로 강수연 씨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고 최진실 씨도 학창시절 선배인 강수연을 동경하며 배우의 꿈을 키웠었다고 합니다.
고 강수연 님 부디 평안하시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