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을 세번이나 할 수 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이유…” 박원숙 이혼을 세 번 씩이나 할 수 밖에 없었떤 안타까운 이유, 20년간 잃어버렸던 유일한 혈육의 충격적인 정체

진짜 한 사람의 인생이 이렇게까지 기구하고 고달플 수 있을까요? 남자를 잘못 만나 세 번씩이나 이혼을 한 데다가 심지어 잘 키우는 아들까지 한순간에 목숨을 잃다니 그뿐이 아니라 전 남편들이 빚을 뒤집어 씌워서 한동안 빚쟁이들이 직장까지 쫓아와서 난동을 부린 적도 있다는데요.

이쯤 되면 눈치를 챌 분도 계시겠지만, 방금 한 말은 전부 탤런트 박원숙 씨 이야기예요.

이분이 요즘 드라마에서는 못된 시어머니 역할 재벌 악영 역할만 맡아서 잘 모르는 분들도 계시겠지만요 사실 박원숙 씨 인생사를 듣고 나면 눈물을 안 쏟아내는 게 더 이상할 정도로 참 비극적인 일을 많이 겪은 분입니다.

그런데 사람 인생이라는 게 또 마냥 슬프고 가라앉기만 하라는 법은 없는 모양이에요. 왜냐고요. 방원숙 씨가 최근 정말 소중한 인연과 재회했다는 소식을 전해왔거든요.

심지어 아들이 세상을 떠난 이후 다시는 보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사람이라는데 과연 박원숙 씨가 다시 만나게 된 이 사람의 정체는 누구일까요?

그리고 대세 박원숙 씨의 삶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던 걸까요? 지금부터 그녀의 인생에 얽힌 가슴 아픈 이야기를 전해드리도록 할게요.

방원숙 씨는 1949년생으로 올해 74살이 된 대한민국 원조 배우죠 어릴 적부터 만화가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배우의 꿈을 꿨다는데 이 때문인지 대학교 역시도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재학했을 정도로 열정이 뜨거웠다고 해요.

그렇게 한창 대학 생활을 이어가며 언젠가 배우로 데뷔할 날만을 기다리고 있던 박원숙 씨 그런데 무렵 그녀 인생에 첫 번째 위기가 닥칩니다. 당시 남자친구였던 서모 씨와 혼전 임신을 하게 된 거죠.

저런 당시 사회적 분위기가 어땠습니까? 결혼도 하지 하지 않은 여자가 외간 남자와 손만 붙잡고 걸어가도 당장에 손가락질을 당하던 시절이잖아요.

근데 이런 시기에 혼전 임신을 했다니 실제로 당시 박원숙 씨 본인조차 이제 어떻게 고개를 들고 다니나 차라리 목숨을 끊어버릴까 라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로 너무나 비참한 기분을 느꼈다고 해요.

그치만요 결과적으로 박원숙 씨는 이 아이를 한번 잘 키워보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1969년 아이 아빠인 서 모 씨와 만난 지 7개월 만에 결혼식을 올렸죠.

그렇게 아들 서봉구 씨를 낳은 뒤 1970년 MBC 공채 이기 텔런트로 데뷔까지 하게 된 박원숙 씨 이때 방원숙 씨 인기가 진짜 대단했잖아요. 한때는 한국의 소피아 로렌 소리도 들을 정도로 외모도 출중했고 연기력도 대단했으니 힘든 시절을 겪고 이제야 빛을 좀 보나 싶었던 시기였죠 그런데요.

이 무렵 당시 남편이었던 서 모 씨가 사고를 치기 시작합니다. 갑자기 사업병이라도 걸린 건지 박원숙 씨가 벌어져 논을 끌어다가 이것저것 일을 벌이기 시작한 거죠.

종류도 엄청 다양한 게 악세사리부터 시작해서 츄리닝 제조 인테리어 소품까지 별 분야에 다 손을 댔는데 그럴 때마다 족족폭망을 한 거예요.

나중에는 뭐 사후병 걸린 사람들이 다 그렇듯 빚까지 어마어마하게 적고요. 이걸 버티다 못한 박원숙 씨 끝내 이 남자와 갈라서기로 결심을 합니다.

이때 아들 봉구 씨는 남편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도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요.

아니 이미 남편이 사업한다고 난리를 쳐낸 통에 쌓인 빚이 어마어마한데 여자 혼자 빚을 갚으면서 아들까지 어떻게 돌보겠습니까?

그래서 애 아빠한테 아이 양육권을 주고 눈물을 훔치며 홀몸으로 나오게 된 거죠. 근데 이혼한 뒤로 박은숙 씨에게는 또 다른 문제가 하나 생겨요.

이게 옛날 사회상이 진짜 문제야 박원숙 씨처럼 미모가 출중한 여자가 한순간에 이혼녀 신분이 되니까. 주변에서 가만두지를 않았던 겁니다.

당시 동료 배우였던 엘씨가 하도 추파를 던져대는 통에 방원숙 씨는 마음고생을 엄청 하기도 했죠. 이 남자가 오죽 찝적거렸으면 방원숙 씨가 끝내 전남편 서모 씨에게 연락을 해서 자기를 좀 도와달라고 부탁까지 했을 정도였어요.

그렇게 서 모 씨와 다시 연락을 주고받게 된 박원숙 씨는 고마움에 마음이 움직였던 것인지 그와 재결합을 하게 돼요.

근데 이 서 모 씨가 진짜 나쁜 사람인 게 알고 보니 박원숙 씨와 재결합을 했을 당시 이미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었다고 합니다.

뭐 이런 딴 여자가 있었으면 정리를 하던가 아님 박원숙 씨한테 마음을 주지 말았어야지 안 그래요. 이 사실을 알게 된 박원숙 씨는 끝내 서모 씨와 두 번째 이혼을 했는데 이때만큼은 큰 결단을 내렸어요.

내 아들을 계모의 손에서 자라게 할 수는 없다라는 생각에 이번에 아들을 데리고 나온 거죠. 이후 방원숙 씨는 교회 지인 소개로 두 번째 남편을 만났는데 이 사람도 어딘가 심상치가 않아요.

왜냐 아르헨티나에서 사업은 교포 이혼남이었거든요. 결국 이 사람도 결혼 후 어찌나 사업에 손을 댔는지 회사가 부도나는 건 예삿일 정도였대요.

끝내 박원숙 씨는 1995년 두 번째 남편과 6년간의 결혼 생활 끝에 이혼을 결정하게 됩니다. 심지어 여자 문제까지 복잡했다고 하니까 이후로 방원숙 씨가 남자라면 학을 떼고 남녀 간의 사랑에는 관심이 없다라고 말하고 다니는 것도 이해가 돼요.

특히 세 번째 이혼 전까지 남편이 박원숙 씨 이름으로 하도 빚을지고 다녀서 박원숙 씨는 그간 연예계 활동으로 모은 돈 전부를 날린 건 물론이고 엄청난 빚까지 지게 됐어요.

이때 양재동에 있던 300 평짜리 땅도 날렸고 방송국까지 빚쟁이들이 쫓아와서 난동을 부리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그러죠 안 그래도 이렇게 힘들게 지내던 박원숙 씨 그런데 2003년 박원숙 씨는 빛과 남자 문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라며 눈물을 흘리게 되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수백억대 빚조차 아무렇지 않게 느껴졌던 걸까요?

2003년 11월 3일 오후 당시 드라마 촬영장으로 향하던 박원숙 씨는 지인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게 되어 아들 서봉구 씨가 교통사고를 당해 조금 다쳤으니 병원으로 와달라는 내용이었죠.

당직까지만 하더라도 방원숙 씨는 그리 큰 사고가 아닐 거라 생각했대요 그래서 일을 마치고 가겠다라고 대답했더니, 수화기 너머 상대방이 아뇨 지금 바로 오셔야 한다라고 단호하게 대답을 해오는 거죠.

그렇게 찾아간 병원 입구에서부터 아들의 친구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오열을 하고 있었고, 침대에 누워있던 서봉구 씨는 이미 의식을 잃은 상황이었습니다.

사건의 전말은 이래요. 그날 서봉구 씨는 회사 점심시간을 맞아 동료들과 식당으로 향하던 참이었는데요. 이때 내리막길에 사이드 브레이크도 걸지 않은 채 주차되어 있던 화물차가 일 순간 그의 몸을 덮쳤던 겁니다.

그렇게 서봉구 씨는 향년 34세의 너무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어요. 일평생 어머니를 자랑스럽 하고 또 바쁜 어머니가 자길 잘 챙겨주지 못해도 원망조차 않던 착한 아들이었다는데 하늘이 무심하다라는 말은 꼭 이럴 때 쓰는 게 아닐까 싶어요.

여기에 사고 몇 년 후에는 며느리가 재혼을 하게 되면서 그때까지 남아있던 유일한 혈육 손녀딸과도 연락이 두절되는 아픔을 겪기까지 한 박원숙 씨 결국 박원숙 씨는 우울증에 걸려 체중이 15킬로그램 이상 증가하는가하면 대인기피증으로 어떤 사람도 만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경남 남해까지 내려가 홀로 생활하게 됩니다.

사람 인생에 또 마냥 고통스러운 일만 있으란 법은 없나 봐요. 최근 박원숙 씨가 너무나 반가운 사람과 재회를 한 걸 보면 말이죠. 사람의 정체가 누구냐고요.

당장 20년 만에 박원숙 씨에게 연락을 해온 사람의 정체 바로 며느리의 재혼으로 연락이 끊겼던 손녀딸이었어요.

사실 박원숙 씨는 혹시나 손녀에게 문자 한 통이라도 오는 날이 있을까? 그간 전화번호도 바꾸지 않고 살아왔다고 해요.

그런데 지난 2021년 정말 그녀의 소원이 이뤄진 것인지 손녀로부터 연락이 왔다고 합니다.

심지어 최근 대학원을 졸업하고 직장까지 얻게 되었다며 할머니를 위해 내복 선물을 해주기도 했다 그러죠 와 감히 짐작하건대 내복을 받는 순간 박원숙 씨에게 쌓여있던 한이 사르르 풀려버렸을 것 같은데요.

실제로 이 소식이 전해지자 수많은 네티즌들도 눈물을 흘리며 방언숙 씨를 축하해 줬습니다.

힘든 시간 잘 견뎌줘서 고맙다 손녀와 자주 만날 수 있길 바란다라며 방원숙 씨를 향한 응원도 아끼지 않았죠.

그간 방원숙 씨를 보며 아픔을 많이 겪고 또 이겨내서 그런지 누구보다 현명하고 지혜로운 어른이라는 생각을 자주 했었는데요.

실제로 본인도 큰 아픔을 겪었음에도 혜은이 김영란 씨 등 힘들어하는 주변 동생과 후배들의 아픔을 보듬어주고 친언니처럼 챙기는 모습에 큰 감동도 느꼈습니다.

늦게나마 아들을 쏙 빼 닮은 손녀와 20년 만에 재회하게 된 만큼 이제 자주 연락도 하고, 함께 여행도 다니며 행복한 시간을 많이 보내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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