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표 부자 1순위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인물은 이재용입니다. 그렇게 많은 것을 가졌다 생각되는 이건희를 아버지로 둔 삼성 부회장 이재용은 어떤 이유로 힘없이 주저앉으며 자신의 감정을 숨길 수 없었던 걸까요?
그리고 부친 이건희가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두 개의 단어는 무엇이며 자상하던 오빠인 그가 이부진에게 처음으로 화를 심하게 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대한민국에서 이재용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겠죠. 그는 전 국민의 관심을 받는 재벌가의 장남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삼성이라는 한 기업이 수장입니다.
그로 인해 우리는 국정 농단 사건으로 일어난 그의 재판 과정을 유심히 지켜보았죠 때문에 이재용에게는 늘 양분된 동정과 비판이 여론이 따라다니고 있습니다. 이재용은 어릴 적부터 일찌감치 평생을 주목받아야 되는 운명을 타고났기에 언론을 대하는 법은 할아버지 이병철 시절부터 배워왔고 명문가의 장남으로서 지켜야 할 언행에 대해 완벽히 학습해 왔죠.
그렇지만 그도 무려 50이 넘는 동안 자신의 굴곡진 인생에 지쳐가나 봅니다. 한국에서 으뜸가는 재벌가의 아들이기 전에 결국 그도 한 사람이기 때문이죠.
그는 두 차례의 구속에 대한 트라우마로 점점 감정을 통제하기 어렵 어려워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런 이재용이 아끼던 여동생 이부진에게 왜 분노했는지 말해보고자 합니다.
이재용 그는 1968년 서울시에서 삼성과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1991년 그의 나이 24살에 삼성전자에 입사하면서 본격적인 경영을 배워나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29살이 되었던 1997년 이재용의 이름은 국민들에게 확실히 각인됩니다.
불명예스럽지만 삼성 에버랜드 주식헐값 인수사건의 수혜자로 유명해지며 사실상 세금 없는 대물림을 했던 삼성식 절세의 주인공으로 비판이 타깃이 되었었죠. 하지만 솔직히 이재용 입장에서는 세금 편법이 주인공이 된 게 억울할 법도 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시도는 당시 어렸던 거가 아니라 아버지와 임원들이 직접 주도했던 일이니까요? 그를 또 비판하는 것은 이런 세금 문제 외에도 마이너스의 손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던 바로 대실패한 삼성 프로젝트였습니다.
그의 최대 흑역사 중 하나로 손꼽히죠 당시 33살이던 이재용은 이삼성을 창업하며 IT벤처 사업을 추가로 육성하려 했으나, 공정거래위원회의 철퇴와 때마침 닷컴버블이 꺼지면서 몇 100억 원에 적자만 거둔 채 사업을 정리했고 이로 인해 그의 경영 능력은 크게 의심받았습니다.
항상 그와 비교되는 두 살 차인 현대차 정희선 부회장이 적자인 기아 자동차를 맡아 3년 만에 영업이익을 일조가 넘게 대박을 터뜨리는 행보와 수없이 비교되며 온실 속의 화초 무능한 재벌이세 차라리 이부진이 낫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었죠.
하지만 이 삼성 역시 그가 주도한 것이 아니라 이건희 회장이 지시로 추진한 것이기에 그가 조금은 억울할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개인적으로 들곤 합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런 우려와 불신이 줄어들 그의 경영 능력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아버지 이건희 회장이 2013년에 병상이 눕기 시작한 이후로 그룹 총수 역할을 했던 2014년도부터 해마다 드라마틱한 실적을 이뤄내며 추진력으로 대표되던 이건희와 다르게 그는 실용주의를 앞 앞세운 자신이 리더십을 입증했죠.
부친과 달리 의전을 싫어하는 소탈한 성격으로 해외 출장길에서는 혼자 공항을 자주 오갔으며 임원들이 타던 전용기와 일기를 매각하고 출장지에서 불필요한 의전은 모두 없음은 물론 직원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식사도 같이 하는 비권위주의적 행보를 이어나갑니다.
때문에 기존의 권위적이고 카리스마 있던 재벌 총수들의 이미지가 아닌 신화적이고 인간적인 일화가 여러 차례 소개되면서 그는 점점 더 젠틀남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하죠. 예컨대 그를 알던 동창들이 이재용은 라면을 기가 막히게 잘 끓여 콩국수집에서 콩국수 집에서 콩국수의 삼겹살과 함께 소맥을 즐겨한다는 제보와 더불어 저렴한 이발소에서 머리를 자르라 가성비 브랜드인 언더아머를 입고 다니는 사례들이 대표적이죠.
그래서 아버지 이건희가 심장병으로 쓰러진 후 대중들이 우려했던 그의 능력과 카리스마는 매에 거듭되는 최고의 시 실적 및 인간적인 친숙함을 통해 삼성을 매끄럽게 이어받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정농단 사건으로 다시금 비판대에 올라선 그는 두 번의 구속수감을 겪게 되며 심리적 육체적으로 많이 위축된 상태입니다.
첫 번째 구속수사를 이재용은 정부에게 달라진 모습을 보이기 위해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열며 다음과 같은 큰 변화를 약속했습니다. 첫째에 저는 제 아이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이며 둘째, 노조가 없던 삼성문화였지만 앞으로는 노조 개설을 보장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경영권 승계 문제 같은 편법인 논란을 더 이상 만들지 않겠습니다. 이 대국민사관은 큰 화재를 불러일으켰고 그가 문 정부를 참 두려워하고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죠. 그리고 결국 그는 2020년 1월 18일 두 번째 구속 수사를 당하며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됩니다.
특히 이번 구속에서는 그가 정신적 충격을 받고 멍하니 털썩 주저앉았던 게 알려져 많은 안타까움을 사고 있습니다. 첫 번째 구속과 달리 두 번째 구속에서 굳세던 이재용을 무너뜨린 세 가지 이유는 뭘까요? 첫째, 350일 동안 경험했던 구속에 대한 트라우마입니다.
맨 처음 수감 생활은 경험하지 못한 것이니 당황하면서도 의연하게 받아들였지만 350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그는 재벌로서 누리던 풍요로운 환경에서 춥고 열악한 구치소 생활에 고생하며 트라우마가 생겨버린 것이죠.
둘째, 어머니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남겨진 자녀들에 관한 걱정입니다. 부친상을 당한 지 얼마도 장남인 자신이 두 번째로, 구속이 돼버리니 심적으로 많이 힘들어하던 어머니를 당연히 아들로서 걱정하고 미안한 것은 물론 평소 끔찍한 자식 사랑으로 유명한 이재용이기의 두 자녀에 대한 걱정이 상당했겠죠.
대외적으로 자녀도 야구장도 자주 학교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특히 임세령과의 이혼을 통해 현재 그의 자녀들은 어머니 없이 자라는 상태입니다. 그러니 아버지인 자신마저 구속이 돼버리니까 한 가장으로서 엄청난 슬픔을 느꼈을 테죠.
마지막 셋째, 돌아가신 부친에 대한 아들로서의 미안한 감정 때문입니다. 평소 이재용은 자신의 운명에 대해 이렇게 고백하며 속마음을 토로했습니다. 삼성은 단지 하나의 기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30만 명의 생계를 책임지는 수장이죠. 우리 삼성의 성과에 따라 내 나라의 경제가 큰 영향을 받고 있다.
부담감이 막중하다 평소 조부 이병첩 회장은 내게 논어를 손수 읽어주시며 경영 이전에 우선 인간을 이해해야 되고 사람을 위해 기업을 운영하는 것이 먼저라고 가르치셨다 또한 내 아버지 이건희 회장은 삼성이라는 위치는 나라에서 가장 빠르게 변화를 일고 대응해야만 하는 경제 리더로서의 역할을 소홀해서는 안된다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때문에 나는 매사상 삼성의 위기는 나라의 위기라는 압박감을 지니며 살아가고 있다. 훌륭한 조부와 부친이 만들어낸 삼성을 이런 막중한 책임감으로 경영하던 그였기에 가문 역사상 처음으로 구속되며 총수 자리가 몇 년간 비게 될 현재 이런 상황들이 그를 아끼고 손수 가르쳐준 이병철과 이건희 회장에게 정말 죄송스러웠을 겁니다.
나아가 그이 붙인 이건희는 이재용을 위해 다음과 같은 두 단어를 떠나기 전 선수 스며 전해졌다고 합니다. 초초려했듯이 성심을 다하라는 의미입니다. 인재 중심에 경영하면 한국에서 가장 대표되는 삼성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단어들이죠.
이런 철학을 항상 신념처럼 여기며 지켜가려고 했던 그였기에 자신의 여동생들이 기업 철학을 어길 때면 무서운 오빠로 돌변한다고 전해집니다. 한 번은 아끼던 여동생 이부진에게 크게 화를 낸 적이 있었는데, 삼성의 임원 식당에서 식재료로 쓰인 쇠고기의 질이 좋지 않았던 게 화근이었죠.
당시 임원 식당을 관리하던 사람은 호텔 신라를 운영하던 이부진이었고 음식에 있어선 털털한 이재용이 갑자기 여동생을 크게 나무랐던 이유는 인재의 투자를 아끼지 않는 삼성이 질 낮은 쇠고기를 먹인다는 사실에 화가 났던 것입니다.
본인은 상관없지만, 그가 어렵게 스카우트한 고급 인재들이 질 낮은 사내 음식을 먹으면 삼성에 대한 이미지가 어떻겠냐며 애사심은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는 이유로 자상하던 오빠에서 무서운 오빠로 변하며 처음 여동생을 그리 뛰어냈다고 전해졌습니다.
돈이 행복이다가 아니라면 당신이 아마 돈이 부족해서가 아닐까요? 이런 뼈 때리는 질문에 우리는 꽤나 많이 씁쓸하고 금수저들을 부러워하지만 이런 일화들을 보자면 개인적으로 재벌가에 자녀들은 가진 것 대비 덜 행복한 삶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