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그야말로 트로트의 전성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죠 단연 요즘 최고의 트로트 가수는 국내에서 1위를 달리는 임영웅입니다. 요즘은 임영웅을 대신할 수 있는 인물이 없다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죠.
임영웅이 떴다 하면 전성 매진은 물론 임영웅이 시축으로 참여했던 축구 경기마저 전성 매진을 일으키며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작년 한 해 임영웅이 벌어들인 돈이 580억에 육박한다는 말이 나오며 큰 놀라움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임영웅 못지않게 미스터트롯에 출연했던 출연자들도 놀라울 정도로 큰돈을 벌고 있다고 하죠. 물론 임영웅에 비하면야 큰 금액은 아니었지만 대한민국 가요계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건 맞는 것 같습니다.
이찬원도 200억 가량을 벌어들었다는 말씀을 전해드렸는데 오늘은 미스터 트롯으로 진선미에도 들지 못한 김호중이 한 해 동안 벌어들인 돈이 밝혀져 화제가 되고 있는데요.
해당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한 연의 유튜버는 트로트 가수들의 행사비를 알리며 화제가 되었었는데요. 무려 임영웅의 행사비는 측정 불가 하지만 만약 행사를 한다면, 최소 1억 정도라고 하죠. 임영웅 다음으로 많이 받는 사람은 진선미도 아닌 사위에 김호중이다 알린 바 있는데요.
무료 행사 한 번에 김호중이 받는 행사비는 4000만 원 정도라고 알렸죠 네 곡의 곡을 부르고 무려 직장인의 연봉을 받는 수준인 것입니다. 김호중은 미스터트롯에서 사위를 차지하며 얼굴을 알렸는데요.
같은 해 군 입대로 활동을 멈췄죠 보통 군입대는 가수에게 있어서는 팬덤 이탈이 될 수 있는 큰 사건인데도 불구하고, 기모 중에 팬덤은 오히려 커졌고 저녁과 동시에 기모 중에 몸값은 크게 4000만 원 이상으로서 상승하게 됩니다. 이렇게 높은 행사료를 받는 기모 중에 2022년 벌어들인 수익이 화제가 되고 있는데요. 김호중이 벌어들인 수익은 300억 가량으로 밝혀졌습니다.
수익에는 행사료 광고 모델료 출연료 콘서트 음원수익 등이 더해진 금액인데요. 먼저 김호중의 광고 모델료는 1년 기준 약 2억 원으로 책정됐다고 하죠. 미스터트롯 이후 10편의 광고를 찍은 김호중은 모델료만 20억을 벌어들였습니다.
광고 모델 중에서도 2억 가량이면 업계 탑 수준인데요. 몇 시간의 촬영으로 2억을 손에 넣게 되는 것이죠. 이렇게 김호중이 높은 광고비를 받는 배경으로는 김호중의 팬덤이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김호중의 팬덤은 무려 13만 명으로 김호중이 광고 모델을 맡은 모든 제품을 완판시키는 것으로 업계에서 유명하죠.
특히 김호중이 광고했던 선글라스는 완판을 이어 품절대란까지 만들며 팬덤의 위력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그렇기에 업계에서는 김호중을 쓰는 효과가 2억 이상이라 보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김호중은 작년 9월부터 12월까지 전국 콘서트를 진행했는데요.
10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등 절정의 인기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죠. 김호중이 3개월간 콘서트로 기록한 매출은 무려 120억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어 놀라움을 주었습니다. 무려 콘서트와 광고 모델료만으로 150억을 벌어들인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죠.
김호중의 팬덤 아리스는 김호중의 곡이 발매가 되면 1명 줄 세우기를 하며 큰 화력을 보여주고 있는데, 음원 수익 또한 수십억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 음반 관계자에 따르면 임영웅은 탑백 중 20 몇 곡을 줄세운다며 한 달에 30에서 40억 원의 음원 수익을 낸다 알리며 바 있는데, 김호중 또한 발매와 동시에 차트인하며 줄 세우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못해도 50억 가량의 수익을 벌어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방송 출연료와 행사비를 제외한 금액만 봐도 약 200억의 매출을 올리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김호중 행사비까지 더한다면, 어마어마한 매출을 올린 것을 알 수 있죠.
그가 처음부터 이렇게 성공해 길을 걸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김호중의 어린 시절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했는데요. 부모님의 이혼으로 할머니와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김호중 중학생 시절 우연히 듣게 된 성악에 매료되어 성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김호중은 경북 내고에 합격하며 본격적으로 성악에 발을 들여놓았는데요. 그렇게 시작된 성악의 길 하지만 성악은 돈이 없으면 레슨조차 받기 힘들기 때문에 김호중은 절망적인 시간을 보냈습니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할머니와 둘이서 살았던 김호중에게는 당연히 레슨도 버거웠고 부모님의 지원으로 매일 레슨을 받고 성장해 가는 친구들과 달리 김호중은 친구들과의 간극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죠. 지독한 현실을 느꼈던 김호중은 불성실한 학교생활을 하게 됩니다.
어린 시절 이종격투기 선수로 전국 대회에서 우승까지 했던 김호중은 고일 때 조폭들의 권위로 조폭의 길을 걷게 되었죠.
그렇게 김호중은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마음에 돈을 벌게 해 주겠다는 형들의 유혹에 넘어가 어른들이 시키는 심부름을 하게 되어 태양 위기까지 처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김호중에 무시무시한 과거는 기모중이 아니라 돈이 전부인 세상이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사실 김호중은 눈물도 많고 약한 친구를 먼저 챙기는 친구였다고 하죠. 한네티즌이 올린 글에 따르면 김호중이 8살 때 같은 반이었던 뇌성마비 친구가 있었 담임 선생님이 같이 짝꿍을 할 사람은 손을 들라고 했고 그때 김호중이 손을 번쩍 들며 두른 짝꿍이 되었습니다.
김호중은 친구를 짝으로써 많이 보살펴 주었고 친구가 물감통을 쏟았을 때에도 먼저 나서 처리하곤 했죠. 이 미담은 친구의 동생이 SNS에 올리면서 알려지게 됩니다.
이런 심성을 가진 김호중은 현실 앞에 무너져 내렸던 것이었고 김호중이 성악을 놓아버리고 조직 생활을 하고 있던 때 김호중에게 전부였던 할머니가 대장암으로 돌아가시게 됩니다. 할머니는 김호중에게 하늘에서 지켜볼 테니 똑바로 살아라 라는 유언을 남겨 김호중이 다시 한번 열심히 살게 하는 계기가 되죠.
그 무렵 김호중의 가능성을 알아봤던 김천외고의 서수영 선생님의 헌신 아래에서 김호중은 조직 생활에서는 완전히 손을 떼고 성악에만 매진했습니다. 돌아가신 2008년 김호중은 다시 태어났고 2008년 세종 음악 콩쿠르에서 1위를 하고 전국 수리음악 콩쿠르 1위를 차지하였습니다.
그리고 2009년 김호중의 인생을 바꾸는 고등학생 파바로티로 스타킹에 출연을 했죠. 그의 스타킹 출연 영상을 본 독일 측의 연락을 통해 독일 유학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김호중은 독일 유학 후 성악가로 활동하게 됩니다.
김호중의 이러한 영화 같은 인생 스토리는 파파로티라는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는데요. 김호중 역할은 배우 이재훈이 그에게 성악을 가르친 스승 서수용 역에는 배우 한석규가 연연을 하기도 했었죠. 이렇게 성악에 매진하던 김호중은 대중성 있는 음악을 하고 싶다는 고민을 하게 되었고 우연히 내일은 미스트롯을 보게 됩니다.
김호중의 생각처럼 국악성악 가요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 트로트를 부르는 걸 보게 되죠. 남자 편을 하면 무조건 나가야겠다고 마음을 먹고서 미스터트롯 오디션 공고가 뜨자마자 신청을 하게 되죠. 그렇게 김호중의 제 이의 전성기가 시작됩니다.
성악인으로서 트로트에 도전했던 김호중이기의 모든 곡을 완벽하게 소화해내진 못했지만, 김호중은 나의 인생공 미션에서 고맙소를 열창했고 마스터들에게 기립 박수를 받기도 했죠. 김호중이 미스터트롯에서 자신의 무대 중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꼽은 무대 또한 고맙소였습니다.
결승 무대를 하기 4일 전 모교인 김천예술고등학교를 방문해서 스승이신 서수용 은사님을 뵈어 이야기를 나누는 내용이 방송되었는데 김호중은 조왕조의 고맙소의 가사가 자신이 서수영 은사님께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담은 것 같아서 선곡했다는 얘기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고맙소를 부르는 모습에서 느껴진 진정성의 많은 시청과 환자들은 감동했고 김호중은 최종 4위로 미스터트롯을 마무리했습니다. KBS의 한 피디에 의하면 김호중 씨와 한겨울에 전국 투어를 했다. 무대를 세팅할 때 공연장은 거대한 냉장고가 된다.
또 관객이 들어오면 확 더워진다 호중시 입장에서는 그렇게 온도차가 극단적인 공간에서 일하는 스태프들이 안쓰러웠던가 보다 사비로 전 스태프들에게 딱 맞는 옷을 맞춰줬다고 전에 미담을 전하기도 했죠. 김호중과 팬들은 기부 활동까지 이어가고 있다고 하는데요.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튀르키에지진고호 보육원 산불피에 이재민 등 가리지 않고 어마무시한 팬덤의 힘을 자랑하고 있다고 하죠.
김호중과 팬덤 아리스가 보여주는 선한 영향력 레슨비가 없어 성악을 포기해야만 했던 생활비가 없어 조폭이 되어야만 했던 기모 중에 힘겨웠던 어린 시절처럼 그들은 도움으로 세상에 따뜻한 빛이 전해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