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손태진과 함께 방송에 출연해 노래를 불렀던 어머니가 사실은 가정사에 슬픈 사연이 있다는 소식이 전해져 안타까움을 전하고 있습니다. 손태진의 어머니는 아들과 함께 꽃밭에서를 부르며 고운 미모와 목소리를 자랑했지만, 실은 손태진을 낳기 전 그보다 5년 앞서 손태진의 형을 낳은 뒤 다시 임신을 했었고 열 딸을 힘겹게 고생한 끝에 둘째로, 딸아이를 품에 안게 되었지만 이후 예쁜 딸이 그만 너무나 불행하게도 어린 시절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오는 충격적인 일을 겪게 되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아들 태진이에게는 위로 5살 많은 형이 있는데, 태진이와 형 사이에는 원래 누나가 있었지만 누나는 어린 시절 너무나 안타깝게도 일찍 세상을 떠나 짧은 생을 마감했던 것이었는데요.
손태진의 어머니는 젊은 시절 먹고살기 위해 남편을 따라 머나먼 동남아로 이민을 떠나야 했을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지만 그토록 처절하게 열심히 살아온 고려일 것만 첫째, 아들을 낳고 힘겹게 다시 낳았던 작고 예뻤던 어린 딸아이가 그만 얼마 살지도 못하고 자신의 곁을 떠나버렸던 것이었고 그로 인해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아 한동안 정신도 차리지 못하고 슬픔 속에 매일 눈물로 죽은 딸을 부르며 울부짖었다고 합니다.
세상의 부모보다 자식이 먼저 떠나는 것만큼 괴롭고 가슴 찢어지는 일이 없다는데 그 작고 어린 딸을 뜨거운 화장장으로 밀어 넣어야만 했을 때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부모의 심정은 얼마나 슬프고 한없이 고통스러웠을까요? 더구나 이후 낳게 된 태진이마저도 태어나자마자 생사를 오갈 정도로 상태가 위험해 인큐베이터에서 한 달 반이나 지내며 작은 몸으로 병마와 고통스럽게 싸웠다고 하는데요.
당시 의사는 매일 밤마다 오늘 밤을 넘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내일 아침에도 살아있을 확률이 50대 50이라고 말해 부모의 마음을 너무나 미치도록 애타게 했다고 합니다. 딸아이가 하늘로 간 것도 모자라 다시 낳게 된 조그만 아들이 또 사경을 헤매고 있으니 갓 태어나 겨우 손짓 발짓을 하던 자신의 핏줄을 보며 손태진의 어머니는 너무 큰 슬픔과 미안함이 가슴에 사무쳤다는데요.
손태진의 어머니는 매일 가슴을 졸이며 간절히 아들이 건강해지기를 기도했는데 그럼 그녀의 간절함이 통했던 것일까요? 치료가 거듭되며 태진이는 여러 번 위기를 넘기더니, 어느 순간부터 몸이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했고, 마치 100년 같았던 인큐베이터 생활을 드디어 마치고 나올 수 있게 되더니, 끝내 보통 아이들처럼 건강해져 감격적인 퇴원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딸아이를 잃고 깊은 절망에 빠졌던 손태진의 부모에게 아들의 쾌유는 말로 표현조차 할 수 없었을 정도로 큰 기쁨과 감격을 선사했다는데요.
88년에 서울에서 태어난 손태진은 할머니가 심수봉의 친언니로, 즉 가수 심수봉이 그에게는 이모할머니인데 하지만 고봉의 아버지가 60세에 심수봉을 낳다 보니 할머니치고는 부모님과 연배가 비슷해 어린 시절부터 왕래가 잦았다고 합니다. 그렇다 보니 어린 손태진에게는 가수 심수봉이 연예인이라기보다 그저 노래하는 할머니였고 또한 당시 심수봉 앞에서 기타 치고 노래를 하며 할머니 차라줘 라고 종종 묻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조카 손자가 자란다며 칭찬을 해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어느 날 온 가족이 싱가폴로 건너가면서 초중고등학교를 거기서 보내게 되었고 그렇다 보니 한국 가요를 쉽게 접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당시 아버지가 집에서 통기타를 치며 즐겨 부르던 포크송이 그의 인생에 있어 토대가 되어주게 되는데요.
특히 이모할머니가 부른 100만 송이 장미를 아버지가 종종 부르셨는데 참고로 훗날 손태진 그도 불타는 드론맨 경연 중 이 노래를 불렀으며 그렇게 가수 심수봉의 존재만으로도 그에겐 트로트 DNA가 흘렀지만 그럼에도 그때는 이모 할머니가 그가 한국에서 그렇게나 대단한 가수인지는 전혀 몰랐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해 손태진 그가 고백하길 어릴 때부터 우리 가족과 음악은 늘 함께 있었다. 친가가 노래 쪽으로 특출난 핏줄이고 외가도 어머니의 자매분들이 다 피아노를 치셨다 그렇게 어렸을 때부터 계속 음악을 들은 덕분에 자연스레 음악과 가까워질 수 있었고, 또 한 내가 해외에 오래 있었기 때문에 이모할머니가 얼마나 대단한 분인지 몰랐다 당시에는 이모할머니의 노래가 노래방에 있네라고 생각하는 수준이었다.
나중에서야 가수로서는 엄청난 분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그렇게 범접할 수 없는 분인데 어렸을 때는 너무 편하게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워낙 젊으셔서 할머니라고 부르는 걸 안 좋아하시고 그냥 조모님이라고 하라더라 라고 말했는데요. 한편, 고등학교 시절 교양 필수 과목으로 음악이나 미술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던 그는 편의상 음악을 선택했고 가끔씩 대학교 교수들이 그가 다니던 고등학교에 와서 합창을 지휘했는데 그럴 때마다 손태진은 가능성이 바로 나타나곤 했다고 합니다. 당시 대학 교수가 봉사차 학교에 왔다가 고등학생인 손태진의 노래를 듣고 깜짝 놀라 따로 불러 대학에 가면 반드시 성악을 전공하라고 권유했고 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노래는 취미일 뿐 큰 뜻이 없었던 그는 관심을 갖고 있던 영역이 따로 있었는데, 바로 호텔 경영이었습니다.
그래서 한때는 호텔리어를 꿈꾸며 프랑스 호텔 학교에 지원해 합격까지 했었고 그럼에도 당시 주변에서 너는 반드시 노래를 해야 한다며 계속해서 음악을 권유하자 대학교까지 정해진 와중에 결국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는데요. 그러다 갑작스레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 그는 우연한 기회로 서울대학교 성악과에 지원할 기회가 생겼고 그런데 그때 갑자기 노래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크게 들어 단기간에 집중해서 수시를 준비한 결과 당당히 서울대 성악과에 합격하면서 그렇게 그의 음악이 인생이 시작되게 됩니다. 당시 상황에 대해 훗날 괴 고백에 따르면 운 좋게 서울대에 합격해 성악을 전공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하지만 서울대학교는 단지 운으로 입학할 수 있는 곳이 절대 아니며 또한 더욱 놀라운 건 당시 그는 성악과 진학을 목표로 꾸준히 실기 연습을 해온 게 아니라, 앞서 얘기한 대로 고등학교 시절 음악 수업으로 합창을 선택해 그때 잠시 노래를 배운 게 전부였을 뿐이었습니다.
결국 그렇게 서울대 선악과에 입학한 그는 이후 본격적인 성악 수업을 받기 시작했고, 그런데 이때 성악을 하면서 다소 아쉬웠던 게 해외에서는 대중들이 클래식 곡의 가사를 굉장히 의미 있게 받아들이는데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클래식 가사에 별다른 공감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는데요. 그래서 이를 계기로 대중들에게 제대로 된 클래식을 알리고 싶다는 마음의 전공은 성악이지만 대중들에게 더 잘 다가갈 수 있는 팝페라를 시작하게 되었고 더 나아가 클래식과 현대음악이 섞인 크로스오버라는 장르까지 관심을 갖게 되는데 그런데 이 계기는 의외로 군 복무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군악대에서 성악병으로 복무했던 그는 말이 성악병이지 군대라는 특성상 정말 다양한 노래를 불러야 했고 그래서 예전에는 성악가로서 점잖게 노래를 불렀다면 군대에서는 이문세의 노래부터 심지어 최진사택 셋째, 딸까지 불렀다고 하는데요.
이처럼 군대에서 처음으로 여러 장르들을 접하며 다양한 노래를 부르게 되었지만 그는 당시 거부감보다는 오히려 행복감을 느끼며 결국 이를 계기로 전역 후 클래식과 현대음악이 섞인 크로스 오버 가수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호텔 경영을 꿈꾸던 고등학생이 성인이 된 후 성악을 전공하고 다시 크로스 오버 가수가 됐을쯤 2016년 팬텀싱어라는 오디션 프로에 참가해 비로소 대중들은 손태진의 존재를 알아보기 시작했고, 그리고 이 프로에서 손태진은 벌컥 우승까지 차지하게 되는데요. 이후 본격적으로 크로스오버 가수 활동을 하게 된 그는 포르테디 카트로라는 그룹으로 일 집 앨범 이 집 앨범을 모두 성공하며 큰 사랑을 받게 되었고 또한 꾸준히 콘서트를 열고 다양한 프로그램에 출연해 방송 활동도 활발히 펼치는 등 그야말로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됩니다.
그렇게 손태진은 비록 대중 가수만큼의 인지도는 없었지만 크로스오버라는 생소한 장르를 대중들에게 더욱 가깝게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며 해당 장르에서는 큰 인지도를 자랑하던 중 2022년 겨울 클래식 팬들에게 아주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을 전하게 되는데요. 그건 바로 성악가로서 14년간 클래식을 열창하던 그가 갑자기 불타는 트롯맨이라는 트로트 경연에 참가한다는 소식으로 당시 클래식계는 그야말로 충격 자체였습니다. 더불어 이때 불타는 트롯 맨체 작진들이 전설의 가수 심수봉이 심사위원단으로 전격 합류한다는 소식까지 발표하자 과거 이미 심수봉과의 관계를 밝혔던 그가 이모할머니의 평가를 받는다는 부분도 덩달아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게 되는데요.
그렇게 호기롭게 트로트까지 도전장을 내민 손태진 하지만 이번만큼은 결코 만만치 않았던 게 네 라운드 때마다 탈락 위기까지 몰렸다가 추가 합격자로 겨우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는 등 성악 가수로서는 출중했지만, 트로트 가수로의 변신이 완벽하지 못했는지 거듭 탈락 위기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렇다 보니 사실 경연 중에도 끊이지 않고 그에게 정말 트로트를 할 거냐 트로트를 할 수 있겠느냐와 같은 의심의 꼬리가 늘 따라붙어 다녔지만 본선 3차 팀전에서부터 슬슬 실력을 발휘하더니, 결국 디너슈미션에서 최종 일 등을 차지하며 이제부터 손태지는 조금씩 트로트 가수로서도 감춰진 저력을 서서히 드러내기 시작하는데요. 이후 그는 성악가가 트로트도 잘 부르네 정부의 수준이 아니라 과거 미스터트롯의 김호중이 그랬듯 성악으로 다진 기본기를 트로트로 폭발시키는 수준에 다가서면서 초반만 하더라도 늘 탈락권이었던 자신을 최상위권의 위치로 바꿔놓는 기염을 토해내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당시까지 유력한 우승 후보는 황영웅이었지 손태지는 우승권까지는 아니었고 그렇다 보니 준결승 일 라운드 때 발표된 대국민 응원 투표까지만 해도 그는 딱 중간인 5위에 불과했었는데요. 하지만 손태진은 이후 준결승 이 라운드에서 순위를 4위로 끌어올리더니, 결승 1차전에서는 마침내 황영웅에 이어 이 위까지 올라서게 되었고 그리고 결승 이 차전을 앞두고 유력 우승 후보였던 황영웅이 하차하면서 이 위였던 그가 안정적으로 우승을 차지하며 본선이 시작된 뒤 꾸준히 탈락 후보였던 참가자가 우승을 차지하는 기적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이처럼 손태진은 성악 트로트라는 장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보이며 한편의 성장 드라마를 아름답게 완성했고 그리고 우승의 영예를 거머준 뒤 자신의 SNS를 통해 다음과 같은 우승 소감을 밝히게 되는데요.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게 꿈 같고,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처음 예선 볼 때가 문득 기억이 나는 게 막상 마음을 먹고 지원했지만, 넘어야 할 산은 묻기만 했다.
그리고 불타는 트롯맨의 우승이라는 이 귀한 상의 주인공은 단지 나뿐만 아니라 간절하게 진심 담아누려 하며 달려온 모든 출연자들을 위한 상이라 생각된다.
앞으로 여러분이 가수 손태진을 기대해 주시는 만큼 제가 보여드릴 수 있는 좋은 무대들을 위해 더 고민하고 노력하겠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한 그는 그간 크로스 오버 가수로 활동을 하면서 이전에도 한국 가요 대중가요 심지어 트로트까지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스타일로 해석을 해왔었기에 앞으로 하는 음악도 뭔가 벽들을 세우는 것보다는 자신만의 해석으로 트로트와 한국 가요가 얼마나 아름답고 얼마나 많은 의미가 담겨있는지 전파하는 하나의 목소리로 활동할 생각이라고도 밝혀 폈는데요.
심수봉의 조카 손자라는 꼬리표를 떼고 이제는 당당하게 자신의 이름으로 우뚝 선 손태진 그에게 앞으로 찬란하고 행복한 날들만 펼쳐지기를 바라며 가수 손태진에게 여러분의 뜨거운 응원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