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내가 미안하다 한번만 용서해주라” 66세 김흥국 딸에게 외면 당한 진짜 이유 김흥국 최근 공개된 안타까운 근황

김흥국의 인생은 항상 즐거웠습니다. 그는 기러기 아빠로 13년 이상을 지냈지만 언제나 흥겨운 모습으로 지내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미투 사건이 터진 후 그의 인생은 꽤나 많이 변한 것 같습니다. 최근 그는 유튜브 채널도 개설하여 2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어엿한 유튜버 연예인이 되었습니다. 유튜브 개설일은 2019년 5월 29일이었습니다. 김흥국은 서울 종로 낙원상가에서 하루하루 벌어먹는 무일푼 밴드로 음악가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밴드 이름은 무대장성으로 김흥국은 밴드의 드러머였습니다. 라디오 스타에서 한 회고에 따르면 어머니가 말하길 갓 난아기 때부터 젓가락으로 식탁을 리듬감 있게 내리쳤다고 하며 예능이나 라디오에서 이 드러머 시절 이야기로 가끔 개그를 치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건강한 집에 출연하여 김흥국 근황을 전했습니다. 그는 지난해 퇴행성 관절염 진단을 받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축구 경기를 마친 어느 날 걷기가 불편해지기 시작했고, 후로 가만히 있어도 무릎이 시큰하고 아팠다고 합니다. 김흥국은 움직일 때도 무릎이 삐걱대며 축구는 꿈도 못 꾸겠다고 말하며 병원에서 퇴행성 관절염 진단을 받았다고 전했습니다. 다행히 현재는 많이 호전되어 예전처럼 축구도 마음껏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한강 뷰를 품은 넓은 구조에 세 자택도 공개하여 눈길을 모았습니다.

김흥국의 거실은 탁 트이고 정리정돈이 잘 된 모습과 깔끔한 인테리어에 놓인 다양한 화초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는 1986년에 일 집 앨범을 내고 본격적으로 데뷔하였습니다. 1988년 2월 15일 MBC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긴간 시대에 에서는 불치병에 걸린 소녀의 에피소드가 방영되었고 그 소녀의 아버지와 친분이 있는 김흥국은 그녀를 격려하기 위해 자작한 노래 정하라를 부르며 처음으로 티비에 출연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그는 신인 가수로서의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 노래 정아라는 조용한 분위기의 발라드로 김흥국의 대표곡인 호랑나비와는 정반대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무대에서 담담한 표정으로 분위기를 잡고 통기타를 치며 이 노래를 불러왔습니다. 안타깝게도 소년은 1990년경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이런 사연으로 인해 그가 방송에서 주목받게 되었지만 그를 스타덤에 오르게 한 것은 컬트적 느낌의 댄스곡 호랑나비입니다. 호랑나비라는 한 노래로 김흥국은 가요톱 십에서 골든컵을 수상하며 예능에서도 10대 가수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이후 어린이 영화 반달 가면에 심형래와 함께 어린이계의 아이돌 자리에도 당당히 오르기도 했습니다.

라디오 방송을 시작하며 예능인으로도 이름을 알리게 된 그는 다음 앨범에서 59년 왕십리를 발표하는데 호랑나비와는 달리 제법 세련되고 제대로 된 콘셉트의 명곡으로 꽤 호평을 받았습니다. 김흥국의 노래 59년 왕십리에 대해서 처음 접하는 사람들 중에는 김흥국 노래가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정말 김흥국이 부른 게 맞냐는 의구심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사실 원래 이 노래는 가수 김남화가 1987년에 광십리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곡으로 김흥국의 노래와 비교하면 가사 일부가 다른 것도 사실입니다. 김흥국은 꾸준한 활동을 통해 정상적인 노래들로 다시 한번 히트를 치며 베스트 앨범까지 내놓으며 1993년까지 가수 인생의 최저 전기를 달렸습니다.

그러나 1993년에 김건모의 네 개곡 핑계가 큰 인기를 끌자 김흥국도 한번 네 계곡으로 도전해 보자며 성인들을 위한 레게 음악을 모토로 한 앨범 라스트 레게일을 1994년에 발매하기도 했습니다. 김흥국은 어록 제조기로도 유명한데 터보의 노래 사이버 러버를 시 버러버라고 하거나 UCLA 대학을 우크라 대학이라고 발언한 적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대 김흥국은 자신이 모르는 노래나 가수가 나오면 그냥 소리 나는 대로 읽었을 뿐이며 실수가 있어야 재미있다며 오히려 자랑스러워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외에도 다양한 레전드급 방송 실수담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또한 엄청난 축구 매니아로도 알려진 김흥국은 연예인으로 인기를 얻은 뒤 월드컵 때마다 항상 연예인 응원단을 조직해 원정 응원을 해왔다고 합니다. 1990년 피파 월드컵 이탈리아 때부터 자비로 원정응원단을 조직해 월드컵 원정 경기에 꿰과리치며 응원을 주도하기도 했습니다.

김흥국은 축구를 잘하며 왕십리턴이라는 엄청난 기술을 보유한 동네 아저씨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과거 꽃 땐 성폭행 논란에 휩싸였었습니다. 보험설계사 A가 김흥국을 비난하며 술을 억지로 먹인 뒤 강간했다고 주장했는데 김흥국은 이를 우연한 만남이었다며 반박하였고 사건은 논란이 증폭되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밝혀진 사실은 놀라웠습니다. A는 김흥국을 미대 교수라 속여 접근한 뒤 투자 명목으로 거액의 돈을 요구했는데 김흥국이 사기를 파악하고 거절했던 것이었습니다.

결정적인 증거들이 나오면서 A의 주장은 신뢰를 잃어갔고 이후에는 다른 남성 두 명에게 혼인 빙자사기 혐의로 피소되었습니다. 이런 사건은 마치 아침 드라마에 등장할 법한 이야기처럼 놀라웠습니다. 결국 김흥국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잃어버린 명예는 다시 찾기 어려웠습니다. 이후 그는 사람을 만나는 것을 꺼리게 되었습니다.

4일 아이콘텍트에는 팽현숙의 상대로 김흥국이 출연했다고 합니다. 행현숙 씨는 김흥국의 현재 상태를 걱정하여 전화로 부른 것입니다. 그녀는 김흥국이 안 좋은 생각을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부르며 부른 이유를 이야기하고 기도했습니다. 2021년 4월 24일 오전 11시 20분경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촌동 사거리에서 SUV 차량을 운전 중에 신호를 어기고 좌회전하여 신호를 위반한 오토바이와 충돌하고 도주한 혐의를 받았습니다. 충돌로 인해 오토바이 운전자가 전치 3주의 부상을 당했습니다.

블랙박스 영상이 공개되면서 또 다른 논란이 발생했습니다. 오토바이 운전자도 신호 위반을 하고 김흥국의 차를 그대로 치고 지나가는 모습이 포착되었습니다. 더구나 오토바이 운전자가 합의금 3500만 원을 요구하면서 김흥국 씨가 둘 중 누가 잘못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생겼습니다.

경찰은 김흥국의 신호 위반 과실이 큰 것으로 보고 혐의를 인정하여 검찰에 송치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김흥국의 뺑소니 사고로 인해 더욱 논란이 되었는데 이는 음주운전 사고도 두 번 있어서 더욱 문제가 되었습니다. 특히 첫 번째 음주운전 사건은 뺑소니 사고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에서 발생하였습니다.

1997년 5월 16일 서울특별시 청담동 학동 교차로에서 면허 취소에 해당하는 혈중 알코올농도 0.261% 상태에서 김흥국은 신호 대기 중이던 택시 승용차와 이중 추돌 후 그대로 도주하였습니다.

한 술집에서 축구 모임 회원 두 명과 양주 한 병을 마시고 귀가하던 길이었습니다. 사고를 낸 뒤 약 1킬로미터 정도 도주하다가 뒤쫓아온 택시기사에게 붙잡혀 경찰에 인계되었습니다. 결국 구속되어 기소되었으며 징역 1년을 선고받지만 집행유예 2년을 받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음주운전 사건은 김흥국이 한국 나이로 55세였던 2013년 10월 11일 서울특별시 청담동 압구정로에서 발생했습니다. 혈중알코올농도 0.071%로 음주운전을 하다가 음주단속에 적발되었습니다. 소주를 마시고 집으로 가던 중이었던 자리에서 음주운전 사실을 시인했습니다. 그는 음주운전으로 인해 심려를 끼쳐 미안하다며 딸과 술을 마시지 않기로 약속했었는데 이를 어깨 끌고 하며 딸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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