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는 것은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답고 경이로운 경험이지만 아이를 낳은 산모가 모든 순간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산모는 아이를 낳은 후 한동안 산후 우울증에 시달리며 괴로운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요. 우울함과 불안을 느끼게 되는 산후 우울증은 출산 후 90일 이후부터 시작하여 1년까지 지속되며 산모를 갉아먹습니다.
이 증상이 오래가면 아기를 제대로 양육하기 어려워지고 모자 간의 관계 형성에도 악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가족관계까지 망가질 수 있습니다. 더 심한 경우에는 스스로 세상을 떠나기도 합니다. 이런 산후 우울증은 연예인들에게도 예외 없이 찾아오는데 다산의 여왕으로 불리는 개그우먼 김지선은 네 번째 아이를 낳고 죽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산후 우울증을 겪었다 밝힌 적이 있습니다.
축복 속에 아이를 낳은 산모가 어려운 시간을 보내는 것은 예외가 아니며 이런 상황에서는 가족의 지원과 이해가 필요합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놀랄 만한 고백을 한 개그우먼 김지선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실제로 산후 우울증으로 세상을 떠난 사람도 있습니다. 아나운서 김태희는 15개월과 생후 이 주짜리 아들 둘을 남겨두고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는데 심각한 산후 우울증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지 않았냐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한 산후 우울증을 원인으로 삼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많습니다. 여전히 그녀의 죽음에 대한 의문이 남아 있고 가족들은 슬픔 속에서 정확한 원인을 알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김태희는 1971년에 전라북도 김제군에서 태어나 성심여고를 거쳐 한국외국어대학교 불문과를 졸업한 후 94년 MBC 아나운서로 입사했습니다.
그녀는 프로바둑기사 유창혁과 99년에 결혼한 뒤 잉꼬 부부의 모습을 보여주며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결혼 후 김태희는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대중에게 인기를 얻었고 가족과의 행복한 삶을 유지해 나갔습니다. 두 사람은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두 아이까지 가졌는데요. 그러나 어느 날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어요. 2004년 2월 29일 아나운서 김태희가 자택에서 주검으로 발견되었습니다.
그 당시 부부에게는 15개월 된 아이와 생후 이 주된 아들이 있었습니다. 언론은 그녀가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김태희는 사건 이 주 전에 둘째, 아들을 조산했는데 후 심각한 산후 우울증에 시달리다 결국 안타까운 선택을 한 것이라고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남편 유창혁은 잘못된 언론 보도에 분노했습니다.
왜냐하면, 유서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극단적인 선택이 아니라고 주장했으며 그녀가 산후 우울증을 앓았다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음주 심장마비가 원인이었습니다. 김태희의 남편인 유창혁은 1966년생으로 한국 프로 바둑 기사로 활동했습니다. 그는 초등학교 때 어린이 바둑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중학교에 진학하여 아마추어 바둑 선수권 대회 준우승을 거쳐 프로바둑 기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바둑계에서 큰 성과를 올렸지만 평소에는 아내에 대한 사랑이 극진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건이 발생하기 직전까지도 두 사람은 새벽까지 함께 티비를 보며 단란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침에는 친정 식구들과 함께 시골로 바람 쐬러 가기로 한 약속이 있었는데, 김태희는 내일 아침 당신이 운전을 맡아야 하니 내가 잠시 나가 큰아이를 재우겠으니 피곤하지 않게 잘 쉬라고 말을 했다는데 아무도 이 말이 그녀의 작별인 줄 몰랐는데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옆방 문을 열려고 해보니 아내가 있는 방 문이 잠겨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아내가 가끔 문을 잠그고 단잠에 들기도 했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 않고 넘겼습니다.
그저 오랜만에 단잠에 들었나 보다 생각하며 아래가 스스로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점심 무렵 장모님과 처제가 찾아와 문을 두드릴 때까지도 아내는 기척 없이 자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방 안에서는 아무런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고 그제야 이상을 느낀 그는 급하게 열쇠를 찾아 문을 열었습니다. 문을 열고 나서 그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말을 잊지 못했습니다.
빈 소주병 세계와 구토의 흔적 그리고 쓰러진 아내가 있었습니다. 시간에 아내를 잃었다는 슬픔으로 말도 못 하게 힘겨워했습니다. 유창혁은 도무지 현실감이 없다면서 큰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면 현실로 받아들이겠지만, 지금도 어디선가 불쑥 나타날 것만 같습니다며 아내를 잃은 사실을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정확하지 않은 보도에 고인이 편히 눈을 감지 못할 거라며 분노하고 더 슬퍼했습니다.
우울증 얘기는 제가 경찰에서 집사람이 산후에 불면증이 심해 상담소를 찾았더니, 우울증 조심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진술했던 것이 크게 부풀려진 것 같다고 했는데요. 사실 두 사람은 서로 애정 표현이 넘치는 부부였습니다. 김태희는 매번 남편에 대한 질문에 주창혁이 제 남편이어서 행복해요라고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또한 자신의 종교도 다른 것이 아닌 창혁교라고 할 정도로 남편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 깊었습니다. 또한 고인은 평소 울증과는 거리가 멀게 항상 밝고 살까운 성격을 갖고 있었습니다. 유창혁의 후배 기사들이 그녀를 많이 따랐다는데요. 무뚝뚝하기로 소문난 바둑기사 이창호도 그녀를 누나라고 부르며 따를 정도로 아주 좋은 친분을 유지했습니다. 유창혁은 자신의 탓이 아님에도 자신을 탓했습니다.
아내가 가끔 술을 마신 후 잠을 청하곤 했는데 그날 왜 순순히 따로 자도록 했는지 모르겠다며 자책만 했습니다. 역시 아내를 떠나보낸 후에는 술이 없으면 잠에 들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새벽에 자꾸 눈을 뜨면서 좀처럼 잠들지도 못했습니다. 그도 생전의 아내처럼 불면증에 시달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김태희의 빈자리는 15개월 된 어린아들까지 느꼈습니다.
엄마가 살아 있을 때는 한 번도 아프지 않았던 아이가 엄마를 잃은 후에는 감기와 몸살로 두 번이나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유창혁은 아내가 떠난 후 삼심에 빠져 한동안 치과에 들어갔습니다. 그가 바깥에 나올 유일한 때는 조산으로 병원에 있는 아들을 돌볼 때 뿐이었습니다. 한국기원은 아내를 떠나보낸 유창혁을 배려해 예정되었던 모든 대국을 연기했습니다.
하지만 집에만 있으면 슬프기만 할 텐데 대국을 하는 게 낫지 않느냐며 동료들이 제안했습니다. 유창혁 역시 가족들의 뜻대로 가능하면 대회에 빠지지 않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후로 슬픔이 느껴지지 않게 더욱더 바쁘게 보내도록 노력했습니다. 함께 연구실을 쓰던 최규병은 원래 책임감이 강한 기사지만 부인이 떠나간 뒤 더욱 애정을 쏟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유창혁은 제자들을 가르치는 데 시간을 할애했고 바둑에도 온 힘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전적은 예전 같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바둑 내용이 형편없어 부끄럽습니다. 머리가 멍해서 집중이 안 된다. 미어 또 대국이 자주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얘기하던 그는 바빠야 괴로운 현실을 잊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위로도 많이 받아보니 지치더군요. 라고 말하며 씁쓸해했습니다. 유창혁은 세계대회에서 모두 우승하는 그랜드 슬램을 최초로 차지한 바둑 기사입니다. 그는 어쩔 수 없는 헛스윙을 할 때도 있지만 한 번 터졌다 하면 걷잡을 수 없이 홈런을 쏟아내는 최고의 홈런 타자였는데요.
한때 조훈현 서봉수 이창호와 함께 4000왕으로 불리며 국내 그리고 세계 정상급의 실력을 뽐냈습니다. 하지만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극심한 슬럼프를 보이며 다시는 전성기의 기량을 회복하지 못했는데 그가 다시 힘을 내길 바란다는 바둑 팬들의 응원이 있었습니다.
살아가는 남편과 아들 둘을 두고 떠나야만 했던 김태희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15개월과 생후 이 주밖에 안 된 아기를 두고 떠난 엄마의 심정은 감히 헤아리지 못할 것 같습니다. 김태희가 갑작스럽게 떠난 후 남편 유창혁은 아내의 빈자리를 여전히 느끼고 있는데요.
김태희가 하늘에서도 남편을 자랑스러워할 수 있도록 유창혁의 전성기 기량을 회복하길 바란다는 응원의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참 좋은 33세의 젊은 나이에 예상치 못하게 불현듯 세상을 떠났던 임태희 아나운서 그곳에서는 고통과 아픔 없이 부디 편안히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