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싸움으로 목숨 까지 잃을 뻔” 김지애 최근 얼굴 180도 바껴 모두가 깜짝 놀란 이유 한때 잘나가던 김지애 최근 전해진 충격적인 근황

여자 팔자가 너무 세다 남자로 태어났으면 더 좋았을 팔자다 팔자에 남자 복이 없다. 등 표현은 다양하지만 대부분 좋은 남편을 만나 자식을 잘 낳고 현모양처로 사는 인생은 아닌 유명인들이 있습니다. 개인의 인생에서는 성공을 맛봤지만 유독 배우자와 맞지 않아 유독 고생하는 인생을 사는 여자 연예인이 있는데요. 연예인들은 일반인들에 비해 관리를 잘해 나이보다 어려 보이는 게 보통인 반면, 이 가수는 최근 얼굴을 비춘 이 가수의 얼굴에 그간의 역경이 보여 안타까운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김지애입니다. 오늘은 왜 그녀의 얼굴이 그렇게나 변하게 되었는지 무엇이 그녀를 그리도 힘들게 한 것인지 그리고 그녀에게 얄미운 사랑 곡을 써 준 전영록 가족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가수 김지혜의 본명은 동길영입니다. 1962년생으로 올해 환갑을 맞이했습니다.

서울 출신으로 학력은 덕성여고 졸업입니다. 초등학교 이 학년 때 출연했던 KBS 어린이 노래 자랑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어머니의 은혜를 불러 대상을 거머쥐어 이때부터 남다른 노래 실력을 뽐냈습니다. 이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미국으로 건너가 동포 위문 공연을 하면서 미팔 군 무대에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1983년에 다시 고국으로 귀국한 후 이미자의 소개로 대한민국의 탑 가수인 이미자 남진 몬주란 나훈아 하춘하 등의 많은 히트곡을 만드는 대가였던 작곡가 박춘석과의 만남으로 박춘석 사단에 들어서게 됩니다. 이후 가수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고 100일이 1950년대에 발표된 노래를 리메이크한 목포의 브루스라는 노래를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그다지 흥행하지는 못했습니다.

1986년 박춘석이 작사 작곡한 몰래야라는 곡이 데이트를 치면서 인기 가수 반열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몰래야 사나이 라면의 히트로 계속해서 인기를 끌던 김지애는 연이어 발표한 노래로 전성기를 누리게 되는데요. 바로 이 곡이 유명한 얄미운 사람입니다. 1989년 발표된 이 노래는 군인 사회를 풍자한 군대 구전가요를 차용해 전영록이 작사 작곡한 곡으로 유명한데요.

김지애가 데뷔 때부터 불러온 정통 트로트가 아닌 복스트롯 계열에 도전한 이 곡은 발표와 동시에 최고의 가요를 선정하는 KBS 음악 프로그램인 가요? 톱탭에서 연속으로 5주간 1위를 차지하면서 골든컵을 수상하기까지 합니다. 정상권에 진입한 이 노래는 김지일 MBC 10대 가수상의 영해를 안기며 일약스타던 올리는데요.

연이어 1990년 후반기 김동원 시인의 시에 이용이 작곡한 몰래한 사랑 역시 흥행에 성공하며 가요톱 텐에서 사주간 1위는 물론 각종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게 됩니다. 1992년에는 이농의 따른 농촌 현실의 세태를 풍자한 가사로 이루어진 남남북녀를 발표했는데 이 곡은 KBS 노래말 대상에 후보까지 올랐습니다. 꾸준히 상승세를 이어가던 김지애는 새로운 소식을 전해옵니다.

1994년 방송인 권옥이와 결혼을 발표하는데요. 권호균은 피디 출신으로 한동안 뉴욕 한인 방송에서 활동하다 귀국해 라디오 프로 MC로 활동했습니다. 이후 SBS 독점 연예 정보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결혼 이후에도 열심히 앨범을 발표하며 활동을 이어가던 김지애는 뜻밖의 소식을 전해오며 많은 팬들을 충격에 빠지게 합니다.

바로 1997년 사고를 당해 큰 부상을 당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미국 하와이의 한 호텔에서 부부싸움을 하다가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당시의 사고는 목숨까지 잃을 수 있었던 큰 사고였다고 하는데요. 다리와 골반 턱에 큰 부상을 당했다고 전해졌습니다. 사고의 충격 때문이었을까요? 세상에 알려지는 것이 두려울 법했을 것입니다.

이런 그녀의 침묵은 투신설로 와전되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말은 연예 기자들의 추측 보도에 김지애의 둘째, 오빠인 동일권 씨는 근황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는 말이 많았잖아요. 마음적으로 힘들어했던 거죠. 사고 당시 다리에 상처가 생겨서 전처럼 힘을 못 쓸 뿐이지 건강은 좋아요. 이후 김지애는 이혼했습니다.

하지만 2000년 돌연 복귀하며 안심하게 했지만, 반응이 적어 잠깐 활동하다 그만두었고 7년 뒤인 2008년 여유만만에 출연하며 그간의 심정을 밝혔습니다. 그날 이 층의 창쪽 복도에서 남편과 심하게 다투다 그를 피해 뒤로 물러나면서 허리 높이의 난간 밖으로 거꾸로 떨어진 것입니다. 당시 밑은 콘크리트 바닥이었는데.

거기에 머리와 오른쪽 다리가 위로 꺾인 채 떨어졌습니다. 다리가 부러지고 앞니가 두 개 빠졌고 턱과 골반이 많이 상했었습니다. 성격상 그럴 일도 없고 날 아는 다른 사람들은 절대 믿지 않습니다. 극단적인 선택이다. 또는 남편이 저를 밀었다는 추측이 난무했지만, 절대 사실이 아닙니다. 단순한 실족 사고였습니다. 김지애는 천면에 나서 한숨의 루머를 일축시켰습니다.

하지만 루머와 별개로 결혼 생활에 관해서는 고통스러웠던 부분과 함께 현실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힘든 연예계 생활과 가정생활을 함께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특히 남편은 제가 집안에만 있기를 바랐어요. 서로 맞지 않아 너무나 힘들었고 결혼은 성격과 집안 형편이 맞는 사람과 잘해야 합니다. 결혼 뒤에 인생 가치관이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이를 낳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그러면서 딸에 대한 끌는 마음에 대해 표현합니다. 아마도 힘든 시간을 견딜 이유와 힘을 준 것은 자식밖에 없었던 듯합니다. 딸은 힘들 때마다 아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 준 사람입니다. 특히 추락사고로 인한 정신적 육체적 피해를 극복하고 다시 무대에 서기까지 가장 큰 힘이 되어 준 사람입니다. 다행히 따른 아빠를 닮아 노래를 못해요.

가수란 화려함 뒤에 숨겨진 외로움을 잘 알기 때문에 딸만은 평범한 소녀로 자라주었으면 합니다. 김지애의 굴곡 있는 인생이 딸에게만은 대물림되지 않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모습이었습니다. 아무리 화려함으로 무장한 성공을 누렸던 김지애였어도 연예인의 삶은 녹록치 않았을 것입니다. 그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자신의 딸은 같은 길로 가지 않길 간절히 바란 듯 보입니다.

이혼 이후 김지애는 행사를 다니며 혼자 딸을 키웠다고 합니다. 결혼 전 왕성한 활동을 할 당시에는 큰 수입이 되는 활동은 못 했다고 전해져 생각보다 엄청난 돈을 거머쥐지는 못했다고 하고 결혼 이후에는 남편과의 불화로 제대로 된 활동을 못 했습니다. 이혼 이후에는 부상으로 인해 가수 활동을 하기가 쉽지 않아 생활고를 겪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엄마는 강하다라는 말처럼 시간들을 홀로 견뎌낸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이런 그녀의 소식을 아름알음 들어 알게 된 많은 사람들은 그녀를 안타까워했습니다. 특히 2018년 전국 노래자랑의 출연의 무대에 올랐을 때엔 송해가 오랜만에 만난 김지애를 따뜻하게 안아줘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연예계의 대부격인 송애가 김지애를 봤을 때 얼마나 딱했을까요?

사랑하는 딸과 함께 고난의 시간을 견뎌냈던 김지애와 달리 이혼과 함께 딸들과 떨어져 힘들게 보낸 연예인도 있습니다. 바로 얄미운 사람이란 곡을 준 전영록의 전부인 이미영입니다. 이미영은 최고의 인기스타로 발돋움하던 1985년 당시 전영록과 전격 결혼을 발표했습니다. 이후 1997 7년 전영록과의 결혼 생활 12년 만에 이혼했습니다.

두 사람의 이혼 이후 이미영은 두 딸을 남편에게 준 것에 대해 언급하며 통탄의 눈물을 보이기도 했는데요. 너무 힘들었습니다. 너무 힘든데 처음에는 우리 엄마가 나한테 그랬어요. 엄마는 여자 혼자 자식을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지 너무 잘 아셨어요. 그래서 엄마가 자식을 절대 내 손에 쥐지 말라고 했어요. 애들을 주라고 할 때는 우리 엄마가 얼마나 가슴이 아팠겠어요.

우리 엄마가 우리 집에 살면서 애들 둘을 다 키워주셨어요. 사위 밥 해주면서 키웠어요. 사위 식성을 엄마가 다 하세요. 그런 엄마가 애들 주라고 했을 때는 가슴이 미어지지요 그렇지만 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졌어요. 1년 동안 매일 술 먹고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살았어요. 세상에 태어난 그런 공허감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웃 딸들이 고등학교 이 학년이 되어서야 함께 살 수 있었다고 하는데요. 그래서인지 딸들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자신도 어머니의 자식에게 말씀을 따랐지만 자기 자식을 떼어놓고 살아가야 하는 심정이 얼마나 아팠을지 상상이 가질 않는데요. 이후 두 딸은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아이돌 그룹 멤버로 활동했습니다. 특히 첫 딸은 인기 아이돌 그룹 티아라의 멤버였는데요.

한 방송에서 티아라가 인기가 대단했는데 딸에게서 용돈을 받은 적이 있냐는 질문에 이미영은 깜짝 놀랄 소식을 전합니다. 보람이가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1억을 주더라고요. 깜짝 놀랐어요. 그런데 조건이 붙었어요. 1억을 주는 대신 약속을 한 가지 해야 한다면서요 이 돈을 엄마만을 위해서 써 다른 건 아무것도 하지 말고 엄마 본인만을 위해서 쓰세요.

그럼 제가 드릴게요. 그렇게 안 하시면 이거 못 드려요라면서요 너무 놀라면 눈물도 안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알았어. 보람아 나를 위해서 쓸게 약속해라 하면서 덥성 용돈을 받았어요. 당시 이미영은 딸이 고생해서 번 돈을 자신에게 준 것에 감동받으면서도 많이 미안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딸 생각에 다시 한번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었는데요.

보통 엄마와 딸은 유독 애틋한 것이 있는데요. 게다가 요즘은 열 아들 안 부럽다는 딸이기에 더욱 그러한 것도 같습니다. 아무래도 힘지애나 이미영 두 사람 모두 귀한 딸들로 인해 힘든 인생의 고비들을 잘 넘기며 살아온 것으로 보입니다. 인생의 고비의 순간은 누구나 맞이하지만 가족 특히 자식들을 보며 많이 감내하고 인내하며 살아가곤 합니다.

모성애 때문에 참고 사는 것이 아닌 모성애 덕분에 살게 되는 것이 여자의 인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다시 해보며 앞으로 김지애 씨와 이미영 씨의 앞날에도 딸들과 함께하는 행복한 나날들이 계속되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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