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어디라고 찾아와 당장 돌아가” 남궁원 빈소를 찾은 김지미가 유족들에게 쫓겨난 진짜 이유 남궁원 최근 공개된 안타까운 사망원인

배우 남궁원 씨가 올해 89세로 별세했다는 비보가 알려지자 연예계는 큰 슬픔에 빠졌습니다. 폐암으로 투병하다 세상을 떠난 남궁원 씨의 빈소는 서울 아산 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는데 고인과 인연이 있는 동료들의 발길이 이어졌는데요.

1960에서 70년대 한국 영화계에서 활약하며 남다른 인연을 맺고 있는 배우 신영규는 주변 사람들은 혹쾌하고 섬 굵은 이미지 때문에 나와 남궁원을 최대 라이벌로 꼽곤 하지만 사실 우리 사이에는 그런 경쟁 의식은 거의 없었다고 말했죠. 외에도 최불암 이병헌 이마룡 등이 조문했고 소식을 듣고 김지미가 장례식장을 찾아왔는데 유족들은 왜 왔어 얼른 가라고 돌려보내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고 하는데요.

수려한 외모로 은막을 수놓았던 고 남궁원 씨는 당대 최고 여배우 김지미 씨와 눈물의 박달재 함께 출연하기도 했는데 왜 빈소까지 찾아온 김지미 씨를 그냥 가라며 돌려보냈는지 안타까운 사연을 자세히 알아 1934년에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난 남궁원은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미남이라고 소문이 나면서 영화계 사람들로부터 배우를 하라고 끊임없이 러브콜을 받았는데요.

하지만 그의 어머니 어머니는 아들이 의사가 되기를 바랐는데 의사가 적성에 맞지 않았던 그는 한양 공대에 입학해서 유학 준비를 했고 콜로라도 주립대학에서 전액 장학금을 준다고 통지가 오게 됩니다. 남궁원은 그렇게 미국으로 유학 가서 대학 교수가 되려고 했지만, 갑자기 그만 어머니가 자궁암 삼 기 진단을 받고 투병을 하시게 되는데요. 당시 의사는 수술에도 가망이 없다고 했지만, 남궁원은 어머니를 치료하기 위해 동창의 아버지였던 아세아 영화 4대표 이재명에게 찾아가 배우로 데뷔하겠다고 선언하고 큰돈을 받게 됩니다.

그 돈을 치료비에 모두 쏟아부었지만 어머니는 3개월 후 안타깝게도 그만 세상을 떠나시게 되었고 남궁원은 어머니를 차마 보내드릴 수가 없어 병풍 뒤로 들어가서 드러누운 채 어머니를 끌어안고 내내 끼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어머니의 다리를 만지면 여전히 뜨끈뜨끈하고 하루가 지나도 뜨겁고 그래서 3일 먹지 않고 계속 붙들고 있었는데요.

친척들은 그런 남궁원을 보고 저 새끼 죽는다 쟤 엄마가 데려가려고 그런다라면서 떼어놓으려고 했지만, 남궁원이 절대 떨어지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5일장을 지내게 됩니다. 그는 후에 밝히길 당시 9월 초 아직 더운 날씨였는데도 어머니의 시신에서는 냄새 한 번 안 났다고 하는데요. 그렇게 너무 밤을 새워서 제정신이 아닌 아닌 상태로 어머니 장례를 치르자마자 영화사에서는 촬영 날짜를 잡았으니 남궁원에게 오라고 연락이 오게 됩니다.

이미 돈을 받았고 약속을 했으니 안 지킬 수도 없었던 남궁원은 결국 아버지와 상의를 하게 되었는데 아버지는 딴따라는 애비 에미가 죽어도 무대에서 그걸 못 멈춘다고 말씀하셨고 결국 애초에 배우가 될 생각이 없었던 남궁원은 마음은 심란했지만, 이것도 운명이려니 하고 영화계에 들어서게 됩니다.

결국 그는 몇 년 뒤 신상옥 감독이 세운 신필름의 전속 배우가 되고 스타로 발돋움하게 되는데 후에 신상옥 감독이 별세했을 때 조문했을 정도로 일생 동안 다수의 작품에서 신감독과 함께하게 됩니다. 그는 데뷔 초만 해도 멋진 외모에 비해 연기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꾸준히 노력한 끝에 나중에는 연기력에서도 인정받는 배우가 되었고 당시 인기 여배우였던 도군봉과도 교제하며 동거까지 하게 되는데요.

장래가 유망한 미남 배우와 아이가 돌 달린 인기 여배우가 동거까지 한다고 알려지자 당시 사회에서 그들은 많은 이들의 입방하에 오르게 되었지만 도군봉과는 얼마 가지 않아 결별하게 되는데 이유는 도근봉이 두 아이의 장래 문제를 걱정했기 때문이죠. 당시 남궁원이 활동하던 시절에는 대한민국 영화계가 정 정말 돈이 없던 시절이라 남궁원처럼 품위 있는 외모와 건장한 체격을 가진 미남 배우에게 어울리는 영화가 별로 없었기에 남궁원은 캐스팅 운이 참 없었는데요.

1928년생이고 남궁원보다는 땀 냄새 나는 한국적 남자의 외모를 가져 현대극과 시대극을 오가며 영화계를 풍미했던 신영균과 1937년생으로 젊어서는 반항적 청렴 나이 들어서는 고뇌하는 인텔리 역을 맡으며 주윤을 도맡아 하던 신성애 사이에 남궁원이 낀 세대 였기 때문에 그는 대형 배우의 외모를 가지고도 두 사람만큼은 각광받지 못했죠.

후에 남궁원은 신성일한테 질투 같은 건 전혀 하지 않았고 성일이가 영화배우가 되기 전엔 처음 서울 와서 고생도 많이 했고 또한 자신의 집에서 자기도 하고 정말 형제같이 지냈다고 말했는데요. 60년대와 70년대는 협객 영화 건달 영화가 유행하긴 했으나, 남궁원 같은 귀족적인 외모의 배우에겐 어울리지 않는 영화였고 양복이 잘 어울리는 서구적 외모와 큰 키를 가진 그는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에서는 더욱 자기 자리를 찾기 힘들었습니다.

그는 이에 대해 평생 머슴 역을 한 번도 못 해 본 것이 안타깝다고도 말했을 정도였죠 당시에는 007시리즈를 흉내낸 스파이 영화가 잠깐 제작되기도 해서 그가 제임스 본드를 연상시키는 스파이 역할을 하기도 했으나, 충무로의 주류 영화는 아니었는데 마침 인천 상륙 작전을 소재로 한 영화 오 인천을 촬영하러 온 007시리즈의 감독 테랜스 영이 그에게 미국행을 제안합니다.

남궁원도 미국에 가서 배우를 하고 싶었지만 당장 돌보고 있는 가족들 때문에 주춤할 수밖에 없었고 외국으로 떠나지 못하게 되죠. 신상옥 감독과 배우 최은희는 그런 글을 보고 안타까워서 너는 지금 나온 게 참 아깝다 한 10년 15년 뒤에만 나왔어도라고 말했을 정도였는데요. 그렇게 월등하게 뛰어난 외모를 가지고도 캐스팅에서 불운했던 남궁원은 당시 다른 배우들과 달리 밤무대에는 출입을 안 하는 것으로 유명했지만, 아들 홍정옥이 미국 유학을 떠난 후학비를 대줘야 하는 상황이 생기자 결국 밤무대 출연까지도 강행하게 됩니다.

당시 영화배우들은 영화를 찍어도 큰돈이 없었는데 게다가 두 달도 미국과 독일로 각각 유학을 간 데다 부인이 유방암까지 걸리는 바람에 가장이었던 남궁원은 어쩔 수 없이 가족들을 책임지기 위해 밤무대도 가리지 않고 출연을 했던 것이었죠. 당시 그는 전국을 한 번 돌고 오면 몇 천만 원이 생겼다며 돈이 하나같이 미국으로 갔다고 하는데요.

그러다 아들 홍정욱이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 후 한국에 왔다가 밤무대에 출연한 아버지의 포스터를 발견하게 되는데 아들은 영화만 하던 아버지가 밤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에 깜짝 놀라며 아버지 죄송스러운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또한 아내가 유방암 판정을 받기 전에는 남궁원에게 아내와 동반 CF 제안도 들어와서 썼는데요.

CF 출연 계약을 한 후 아내가 암 진단을 받는 바람에 투병을 하며 수술 전날까지 동반 CF를 찍었는데 당시 아내의 나이는 남궁원의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셨을 때의 나이와 같았기 때문에 남궁원은 아내가 혹시나 잘못될까 걱정이 돼 10시간이 넘는 수술 시간을 기다리며 눈물까지 흘리게 됩니다. 그는 가족 그들을 위해 반무대뿐만 뿐만 아니라 영화도 가리지 않고 출연했고 외계에서 온 우레메 시리즈나 로봇 태권 브이 같은 어린이 영화에까지도 모두 출연했는데요.

또한 남궁원은 70년대 명동의 빅보이라는 햄버거 가게를 개업해서 한국 최초의 햄버거 가게를 열기도 했는데 그때까지 햄버거는 미군 부대에서나 먹을 수 있었던 낯선 서양 요리였죠 하지만 당시 한국인들에게 햄버거가 너무나 낯설고 입맛에 맞지 않았던 까닭게 채 이 년도 안 되어 햄버거 사업을 폐업하게 됩니다. 게다가 남구 공원의 실연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는데 어느 날 한보도 매체는 남궁원이 명예회장으로 있던 다단계 업체가 의료기 임대 사업에 투자하면 투자금의 30에서 250%까지 배당금을 주겠다고 속여 일 일 년간 5900명에게 3100 을 피해를 입힌 다단계 사기사건이 일어났다고 보도하는데요. 당시 남궁원은 중국으로 출국한 후 귀국하지 않아 국외도피로 간주한 경찰의 체포영장까지 발부받게 됩니다.

이에 대해 남궁원은 자신 역시 피해자라며 자신이 원적외선 치료를 받는데 한 회사에서 집에 의료기를 놔드리겠다며 대신 홍보를 해달라고 했는데 그렇게 자신이 직접 관련된 것처럼 많은 오해를 받았지만 자신과 아무런 관련이 없고 법적으로도 다 마무리된 사안이라고 해명하죠.

하지만 충격 때문에 남궁월의 건강 상태가 최근 상당히 안 좋아져서 이 년 전부터 투병을 하기 시작한 그는 여러 가지 합병증으로 서울 아산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았지만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위독한 상태라는 사실이 전해지며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었죠. 배우 신영규는 아우 남궁원이 전화를 안 받아 불안하다면서 영화인 원로에 이해룡 회장을 만나 남궁원의 근황을 확인한 결과 위중하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우울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기도 했는데요.

그렇게 남궁원은 병원에서 장기간 입원 치료를 해오다 최근에는 자택에서 투병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휠체어를 타고 다닐 정도로 거동도 많이 불편해진 상태였죠 신영규는 병원에서 문병이 허용되지 않아 이해룡 회장을 통해 아들인 홍정욱에게 쾌유를 바라는 심경과 위로의 말을 전해 보내 달라고도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쾌유를 빌었건만 남궁원은 결국 안타깝게도 삶을 마감하고 말았는데요. 세상을 떠난 배우 남궁원의 빈소에는 영화계 인사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영화 및 연예계 인사들 외에도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김부겸 전 국무총리 윤석민 태영그룹 회장 등이 빈소를 다녀갔습니다. 그리고 87세 김지민은 고령임에도 먼 길 온 것이 걱정돼 유족들이 그냥 돌려보냈다고 하는데요.

젊은 시절 어머니를 암으로 여의고 충격이 가시지도 않은 채 시작한 배우 생활이 평생의 업이 되었는데 배우로 인기를 얻었지만 가장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밤무대까지도 마다 하지 않았고 그러다 억울하게 사기 사건에도 연루가 되더니, 마지막에 자신의 건강까지 악화되며 안타깝게 하늘로 떠난 남궁원 그가 이제는 하늘에서 편안히 쉴 수 있기를 빌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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