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스터즈 출신 가수 강실이가 오늘 오전 인천 강화의 한 요양병원에서 향년 61세로 별세했다는 소식에 안타까움이 커지고 있습니다. 방실이는 서울탱고 첫차 등의 히트곡으로 유명한 가수로서 17년간 뇌경색으로 투병하며 어려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고인의 빈소가 현재 인천 강화군 선언면에 위치한 참사랑 장례식장에 마련된 가운데 방실이와 가까웠던 동료 가수 현당 씨는 매체와의 전화 통화에서 방실이가 계속 몸이 약화되어서 요양병원과 퇴원을 반복하다가 오늘 오전 열한 시에 심정지가 왔다라고 밝혔습니다. 방실이의 죽음에 대해 가족으로부터 연락을 받아 알게 된 것이었습니다. 현당은 방실이가 거의 17년 동안 뇌경색으로 투병하며 한쪽 눈이 거의 실명이 되고 몸이 움직이지 않는 상태였다고 전했습니다.
방실이와 오랜 기간 함께한 동료 김흥국은 연락을 받았을 때 뉴스에 뜨지 않아 긴가민가했다며 가족이 돌아간 것과 같이 허망하다 정말 가족이 돌아간 것과 같이 허망하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김흥국은 방실이에 대해 매우 강한 여성으로 회상했습니다. 방실이와는 무명 시절에 만났다 상당히 오랜 기간이 지났지만 함께 공연도 많이 다녔고 그녀의 성격은 정말 시원시원했다고 말했습니다.
김흥국은 뒤이어 방실이의 오랜 투병 생활에 대해 언급했는데요. 의지가 강해서 다시 마이크를 잡고 노래할 줄 알았다. 그래도 정실력은 살아있었다. 오히려 내가 눈물을 흘릴 때마다 팬들을 위해 다시 무대에 서서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전했습니다. 김흥국은 방실이의 오랜 투병 생활 동안 자주 찾지 못한 점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다른 동료들이 방실이를 돕는 걸 보고 고맙고 감사했다.
제가 앞장서서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게 늘 미안했다며 오랜 투병 기간 동안 더 잘 돌보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워했습니다. 그는 투병하다가 세상을 떠나니까 더 할 말이 없고 마음이 좋지 않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김흥국은 다들 좋은 곳으로 갈 수 있게 보내줘야 한다. 편안하게 좋은 곳으로 가서 아프지 않게 노래했으면 좋겠다. 웃고 마음을 전했습니다.
방실이는 2007년 과로와 몸살 증세로 인한 뇌경색을 앓게 되어 활발한 활동을 하던 시절부터 투병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44세에 불과했던 방실이는 뇌경색으로 인해 전신마비까지 겪게 되었습니다. 고혈압과 당뇨가 겹친 상태에서 일반 병실과 중환자실을 오가며 여러 차례 대규모 수술을 받았으며 후 오랜 투병 생활로 인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연예계 동료들은 방실이를 돕겠다는 의지를 보여 주었었는데요.
배우 이동준은 2000년도 이 자리에서 라이브 카페를 할 때 방실이가 출연료를 받지 않고 도움을 준 친구라며 회상했습니다. 그는 방실이에게 잊혀지지 않는 고마운 마음이 있다며 2000년도 미사리에서 라이브 카페를 할 때 방실이는 출연료도 안 받고 그냥 도와줬다 의리가 있는 친구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방실이가 힘들게 투병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선물로 집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것 친구를 선물했는데 그때 방실이가 좋다고 해서 기뻤다는 마음도 전했는데요.
가수 편승협은 방실이와의 친분에 대해 언급하며 나도 방실이와 친분이 두터웠다 그녀가 뇌경색으로 힘들게 투병할 때 건강한 게 미안할 정도였다 라고 했습니다. 더불어 편승엽은 그때 방실이가 그에게 다른 사람들의 오해로 인해 나쁜 놈이 돼서 속상했다. 내가 이제 다시 입고 방송하니 너무 좋다.
나는 태어나서부터 너무 행복해서 아픈 걸로 빨리 벌 받았나 봐 라며 눈물을 흘렸다라고 전하며 방실이와의 추억을 회상했는데요. 이러한 상황에서 방실이의 매니저이자 친동생인 방화섭 씨는 병원 근처에서 동태찌개 식당을 운영하며 누나의 간호를 하고 있다고 알려졌습니다.
방화섭 씨는 2007년 6월 누나가 쓰러지면서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잊지 않았다고 말했는데요. 작은 올케도 처음에 형님이 쓰러지고 남편이 엄청 마음고생 많이 했다. 머리 숱이 다 빠지고 자기도 모르게 약을 먹게 되는 병이 생기더라 고혈압에 당뇨가 생기고 6개월 넘게 집 밖을 나가지 않았다고 가슴 아파했습니다. 방화섭 씨는 자신의 상황을 토로하며 나도 맨날 술 담배만 하고 살았다.
거울을 보니 탈모가 생기더라 누나는 남의 도움이 필요하니까 화장실을 가더라도 그게 문제고 조금이라도 몸이 편했으면 집에 모시고 사는데 아무래도 여자인데 화장실 문제도 그렇고 그런 곤란한 상황이 오더라 착잡한 신경이라고 털어놓았습니다. 그리고 직접 건물을 짓고 운영 중인 식당에서 가족들을 위해 어떻게 하면 편하게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된 것을 언급했습니다.
또한 방실이는 전에 방송 출연을 피하고 싶었다는 것으로 솔직한 심경을 밝혔습니다. 방송 촬영 같은 거 하면 또 아무래도 옛날 생각이 나고 그래서 한동안 방송 출연을 안 했다. 여기저기에서 연락 오는 게 싫더라 방송에서 아픈 모습이 나오는 게 너무 싫었다고 전하며 자신의 감정을 나누었습니다. 당시 동생 방화섭 씨는 치료 중인 방실이에게 부모님의 산소를 보여주기 위해 산소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 주었습니다.
방실이는 부모님 산소에 가보지 못했기에 처음 보는 사진에 감격스럽게 사진을 바라보았고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방화섭 씨는 눈 아는 산소 처음으로 이렇게라도 봤다. 아버지는 누나를 의지했는데 누나가 버팀목이셨으니까 어떻게 보면 그래서 결혼도 안 했고 딸 덕분에 아주 행복하게 산다라고 아버지가 했었던 말을 전했습니다.
이어서 방화섭 씨는 부모님이 누나를 의지하던 중 누나의 병으로 가셨다면서 그때부터는 누나를 다 정리하고 떠나는 게 제일 좋을 것이라고 털어놨습니다. 그는 동생에게 부모님의 임종을 못 지켰다 돌아가시는 것도 못 봤으니까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 나서는 거짓말인 줄 알았다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부모님 입장에서는 자신이 불효녀가 됐다고 생각하며 자신 때문에 부모님이 더 오래 사실 것도 먼저 가셨다면서 아픈 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방실이는 계속해서 요양병원에서 생활하면서 휠체어에 머무르지 않은 채 의료진의 도움으로 이동할 수 있었는데, 갑자기 좋아지는 순간도 있고 나쁜 순간도 있다. 되면서 근육이 빨리 회복되지 않는 것 같다 오고 언급했습니다. 방실이는 물리치료 선생님과 함께 운동하고 있는데, 과거에는 누워있었지만 현재는 거의 80% 정도는 앉아있는 상태라고 전했었죠.
그녀는 전신마비를 겪었던 어려운 시기를 꾸짖는 듯 간절한 소망과 꾸준한 재활 치료 덕분에 신체 기능이 크게 회복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과거의 모습을 회상하며 복귀에 대한 열망을 드러내기도 했었는데요. 방실이는 당시 활발하게 활동했던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병실 한 켠에 걸어놓아 병마를 이기기 위한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상태가 급속히 악화되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결국 세상을 떠났는데요.
그녀의 긍정적인 에너지와 끈질긴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것이 안타깝습니다. 방실이가 하늘에서는 편안히 쉴 수 있기를 기원하며 그녀의 명복을 빔니다. 한편, 방실이는 1959년 10월 29일에 경기도 강화군에서 태어나 강화초 1972강화여중 1975강화여고 1978을 졸업한 직후인 1982년에 미 팔 군 부대에서 처음으로 활동을 시작하였는데요.
방실이는 비정규직으로 활동하였기 때문에 좀 더 장기적으로 직업을 이어가기 위해 방실이와 두 여자 글래머걸스 등 여러 그룹을 결성하여 화려한 율동과 특유의 시원스런 가창력을 무기로 무명시절을 극복해 나간 가수입니다.
본격적으로 방실이가 가수로 활동한 시기는 1985년에 당시 박진숙 양정희하고 국내 유일 여성 트로이카 서울 시스터즈를 결성하면서부터인데 서울시스터즈의 방실이는 일 집 앨범 첫 차를 발표하고 공식적인 무대에 출연하게 되었고 타이틀곡 첫차로 데뷔 초부터 남성 팬들을 사로잡으면서 일약 스타덤에 올라 정상급 가수로 등극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