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소주 3병, 담배 3갑 결국…” 아침마당 송수식 박사 최근 전해진 충격적인 소식 엄앵란 오열한 안타까운 상황

송수식 밖 박사라고 정신의학 박사 과거의 아침마당에서 엄앵란씨와 부부탐구라는 코너를 통해서 이름을 널리 알린 분이신데요. 정신의학을 대중화시킨 분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과거에는 정신과 하면 미친 사람들이나 가는 그런 과로 알고 있었는데,

이분이 방송을 통해서 대중들과 만나면서 정신의학이라는 것이 꼭 어떤 이상이 있어야만 가는 게 아니라 마음의 감기가 드는 우울증이나 여러 가지 좀 힘든 그런 정신적인 상처를 위로받을 수 있고 힐링 치료받을 수 있는 곳이 정신과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이분이 알려주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특히 부부 사이에 여러 가지 말 못할 그런 고민 뭐 이런 얘기를 솔직하게 과감없이 털어놓으면서 우리나라 국민들의 정신 주치 만인의 힐링 주치의가 되셨던 분이 바로 이 송수식 박사이신데요. 이분이 정말 너무나 갑자기 돌아가신 것 같애요.

그런데 이분의 인생 또한 굉장히 파란만장하다고 볼 수가 있겠죠. 1941년에 경상북도에서 태어나셨는데 부친이 일제강점기 시절에 보건 의료 정책의 일환으로 일정한 지역 안에서만 의원을 개업해서 의사 활동을 할 수 있었던 일명 한지 의사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새벽에도 찾아오는 환자들을 마다하지 않았다면서 사람을 살린 뒤 흠뻑 젖은 옷을 입은 채 집에 들어오는 아버지의 모습이 좋았다라고 회상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고등학교 때 학교에서 존경하는 임무를 써내라고 했을 때는 우리가 흔히 아는 위인이 아닌 부친의 이름을 써넣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의료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까 환자를 치료할 손이 항상 부족해서 지금 같으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당시 송 박사는 고등학생 때부터 자연스럽게 부친의 옆에서 환자의 상처를 꿰매고 치료를 하기도 했다고 해요. 그런데 놀랍게도 송 박사는 원래는 의사보다는 연예인의 길을 가고 싶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부친의 진료 교실에서 보고 배운 의술은 그를 의료인의 길로 이끌었고 결국 결국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하게 되었죠.

그러나 막상 의과대학에 진학했지만, 송 박사가 실제 의사가 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아주 많았어요. 정직하고 대쪽처럼 곧은 성격 때문이었는데요. 의대 학부 3학년 때 등록금 인하 데모를 하다가 퇴학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동안 동대문 시장에서 미역 장사를 하면서 인생을 배웠다고 해요. 이후 다행히 복학할 수 있었지만 데모 주동자라는 꼬리표 때문에 인턴 시험 불합격 사유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무이촌 진료실에서 만났던 정신과 전공 의사 덕분에 정신과 의사가 될 수 있었다고 해요. 송 박사는 의료계에 들어와서는 여러 가지 주요 요직을 맡 같으면서 의료계를 이끄는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또 이런 송 박사의 모습을 본 그의 아들이 또한 3대째 의사의 길에 들어서기도 했죠.

또 며느리까지 같은 정신과 의사로 세 사람은 한 병원에서 정신과 병원을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자 그런데 그의 공적인 생활은 너무나 존경할 만한 것이었지만 그의 사생활은 너무나 안타까웠어요. 그는 초등학교 때 만난 부인과 6년여의 연애 기간을 거쳐서 결혼을 했는데요.

예전에는 먹고살기가 힘들 정도로 다들 어려웠잖아요. 그런 상태에서 부인은 시댁에 시동생들 도시락 몇 개씩 싸주는 그런 헌신적인 삶을 산 아주 훌륭한 부인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생활의 기반이 잡히면서 먹고살만해지니까 그만 덜컥 최장암에 걸렸다고 해요. 부인이 그러다가 얼마 안 가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어요.

그런데 개인의 투병 기간 동안에 너무나 속상해서 송 박사는 몇 병씩 마시고 담배를 세 갑 정도씩 피우면서 그렇게 고통스러워했다고 해요. 그러자 아내가 세상을 떠난 지 불과 백 일도 채 되지 않아서 그만 송 박사도 암에 걸리고 말았어요. 위암 판정을 받았는데요.

그렇게 시작한 암이 무려 6번 네 전신 마취를 하게 했다고 합니다. 정말 기가 막히죠 이게 참 아이러니한 게 정신과 의학 박사잖아요. 그러면 정신과에 대한 정말 해박한 이론과 지식은 모두 다 꿰고 있을 또 우리나라의 정신과 명의로 유명한 그였지만 아내의 죽음 앞에서는 그도 속수무책이었다는 거예요.

밥은 거의 먹지 않고 술과 담배로 하루하루를 지내다가 그만 자기도 암에 걸리고 만 것이죠. 그래서 자신은 이런 일을 겪으면서 사람에 대한 이해가 더 풍부해졌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송 박사가 나중에 하는 말이 있어요. 자기는 여든이 되어서야 사람들을 제대로 진료할 수 있는 그런 정신과 의사가 된 거 같다 라는 말을 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정신과 의사라는 것이 단순히 어떤 약을 주는 기술로 치료를 하는 그런 의사가 아니라 환자와 진심으로 소통하고 환자의 고통을 공감하고 진심으로 환자를 대했을 때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진정한 정신과 의사가 될 수 있다. 이런 말을 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자기가 정신과 를 운영을 할 때는 차트를 없앴다고 해요.

왜냐하면, 환자가 말하는 것을 차트에 적다 보면 그냥 기록하는데 치중하다 보니까 환자의 눈을 바라볼 수도 없고 환자의 마음을 제대로 간파하거나 이해할 수도 없고 그렇기 때문에 차트를 없애고 대신 환자의 눈을 바라보고 환자의 마음 깊숙이 들어가서 서로 마음과 마음끼리 맞닿는 그런 진도를 했다고 해요.

그런 송 박사의 진료 방식은 전국적으로 아주 유명해져서 지방에서도 많은 환자들이 올라와서 진료 환자의 40% 가까이가 지방 환자였을 정도였다고 해요. 그렇게 해서 이 송 박사는 80살이 넘어서도 진로를 아주 활발하게 보고 있는 모습이 방송을 통해 전파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정말 갑자기 돌아가신 거 같애요. 그동안 꽤 건강한 모습을 보였거든요.

잠깐 말이 새는데 부인과 사별을 하고 건강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다가 그만 자기도 암에 걸려서 무려 6번의 수술을 하게 되었다고 해요. 정말 기가 막히죠 위암이 두 차례 그다음에 대장암 전립선암 이렇게 암 수술을 총 네 번 했구요.

그리고 뇌출혈 수술 척추 수술 이렇게 전신마취를 무려 6번이나 했다고 합니다. 이런 어려운 과정을 겪어내면서 일어설 수 있었던 비밀이 하나 있었는데요. 그게 바로 처제 자 부인이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암에 걸렸잖아요. 혼자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가는 것이 그렇게 죽기보다 더 싫었다고 얘기를 하더라구요.

그렇게 처절하게 외로움과 고독에 몸부림치면서 이렇게 암까지 걸렸었는데 그러다가 도저히 자기가 살 수 없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살기 위한 정말 어쩔 수 없는 방법으로 처제에게 제발 자기를 살려달라고 간청했다고 합니다. 큰 집에 혼자 살기가 어려워서 처제랑 같이 살게 되었어요. 근데 이 처제에 남편은 송 박사의 아내가 돌아가시기 1년 반 전에 먼저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이제 암에 걸리고 여러 가지로 힘든 상황에서 처제에게 부탁을 했던 거죠. 자기 랑 한 집에서 살지만 공간이 많이 분리되어 있었다고 해요. 안방과 처제가 기거하는 방이 그래서 이렇게 분리된 공간에서 송 박사의 식사 암에 걸리고 굉장히 몸이 안 좋았잖아요. 그래서 처제가 송 박사 식단을 관리해 주는 그런 이제 역할로 들어가게 된 거죠.

그러나 인제 세간의 눈으로 봤을 때는 상당히 충격적인 일이잖아요. 부인이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처제랑 한 집에서 기거한다는 이런 내용은 굉장히 센세이셔널한 그런 소식이었기 때문에 한때 사람들의 입방하에 오르내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송 박사는 그에 굴하지 않고 방송에서건 그리고 여러 언론 매체 신문 기사나 잡지에서도 자신의 그런 상황을 솔직하게 다 털어놓았어요.

그래서 아마 이 내용은 아침마당을 보시면 하신 분들이나 그리고 총 박사를 아시는 분들이라면 거의 아시는 내용이리라 믿습니다. 이분에게 이런 기구한 사항이 있었다는 거 전신마취를 6번이나 할 정도로 그렇게 건강의 위협을 받고 정신적으로도 굉장히 힘들었기 때문에 처제 보살핍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그런 고백을 했는데요.

어쨌든 그렇게 해서 이런 6번의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83살까지 진료를 아주 활발하게 볼 정도 자기 아들이랑 같이 정신과 병원을 차려서 같이 운영을 했거든요. 그런데 그게 방송에도 나온 적이 있었는데, 정말 문전성실을 이룰 정도로 정신과 병원이 꽉 차요 그런데 병원에 온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정말 가슴 뭉클합니다.

마치 아침마당에 부부 상담을 하러 온 사람들처럼 그런 우리 시골에 할머니 할아버지 아줌마 아저씨 같은 분들이 와가지고 송 박사에게 진료를 받고 따뜻한 위로를 받고 또 마음과 마음이 서로 교류하는 그런 진료였어요. 송 박사의 진료는 그러했기 때문에 시골에서 오시는 분들이 자기가 뭐 이렇게 직접 만들었어요. 뭐 참기름 같은 거 뭐 이런 거를 갖고 와서 선물하는 그런 모습도 많이 보이더라고요.

이런 거는 요즘 세상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잖아요. 그래서 저는 이 송 박사가 정말 훌륭한 정신과 의사였다. 환자를 기술로 약으로 치료할려는 게 아니라 마음과 마음으로 그리고 정신적인 고통이나 괴로움은 본인 스스로 치유해야 된다. 이거를 굉장히 강조하셨다고 해요.

이게 사실 맞는 거죠. 그래서 환자의 얘기를 진심으로 들어주고 또 다정하게 따뜻하게 위로해 주는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큰 치유력이 있는지 아시는 그런 분이셨기에 이 송 박사가 세상을 떠난 것이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더더욱 많이 듭니다. 그리고 엄앵란 씨의 남자친구로도 유명하시죠. 엄앵란 씨보다 5살 연하였는데요.

송수식 박사는 엄앵란씨를 형님이라고 부르면서 그런 격의 없는 친구 사이의 모습을 보여줘서 많은 대중들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던 그런 두 분의 사연인데요. 송소식 박사에 이 별새 소식을 듣고 어민란 씨가 지금 얼마나 큰 충격을 받고 정신적인 타격을 입었을지 짐작이 됩니다.

어멜리야 씨가 남편 신성일 씨 때문에 무척 힘들고 괴로워했을 때 이 송수식 박사가 얘기를 많이 들어 주고 또 좋은 얘기도 많이 해 준 그런 친구 같은 의사였던 거 같애요. 부디 너무 큰 상처를 받지 않기를 바라겠습니다.

박사는 부인과 사별하고 나서도 20년 넘게 부인을 그리워하는 모습을 방송을 통해서 많이 절절히 고백을 했거든요.이제 사랑하는 아내를 하늘나라에서 만날 꿈을 꾸더니, 드디어 이제 아내를 하늘나라에서 만나서 해후를 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도 한편으로는 듭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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