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연기 외길을 걸어온 배우 오현경이 오늘 오전 김포 요양원에서 별세했습니다. 향년 88세로 떠난 오현경은 작년 8월 뇌출혈로 쓰러진 뒤 6개월 넘게 투병 생활을 해왔는데요. 빈소는 연세대학교 신촌 장례식장 12호실에 마련되었으며, 장례는 5일장으로 치러지며 장지는 아내가 잠들어 있는 천안공원묘원이라고 합니다.
수년 전 패혈증으로 먼저 떠난 배우 윤소정의 남편으로도 잘 알려진 오현경은 과거 87년부터 6년여간 방송된 드라마 ‘TV 손자병법’에서 늘 부장 진급에 실패하는 종합상사의 만년 과장 이장수 역을 맡아 평범한 직장인의 애환을 맛깔나게 그려낸 탤런트로 이름을 알렸는데요.
당시 “까불고 있어”라는 유행어와 함께 직장인들의 애환을 표현해 시청자들로부터 많은 공감을 얻었던 오현경은 원래 연극배우 출신으로, TV에 출연하며 인기가 높아져 당시 돈으로 집 2채 가격에 해당하는 거액의 광고를 제안받기도 했지만, “예수라는 사람이 어떻게 상업광고를 찍느냐”며 거절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오현경은 32살 때 당시 24살이었던 윤소정과 처음 만났는데, 당시 우리나라에 탤런트라는 직업이 처음 생겼을 때 TBC 1기 탤런트들에게 연기를 교육하기 위해 선생님으로 초빙되었고, 당시 윤소정은 자신보다 여덟 살이나 많았던 오현경을 처음에는 항상 ‘선생님’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윤소정이 마음에 들었던 오현경은 당시 윤소정을 좋아한다고 동네방네 이야기를 하고 다녔고, 그 때문에 사람들은 윤소정을 보기만 해도 오현경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그런 일들이 반복되다 보니 윤소정 역시 어느 날인가부터 방송국에 갔을 때 오현경이 있으면 마음이 놓이면서 편안했고, 만약 없으면 ‘왜 없지?’ 하며 자신도 모르게 오현경을 찾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현경은 결국 윤소정에게 “우리 연애합시다”라며 고백을 하게 되는데, 그 당시만 해도 연애는 곧 결혼이었지 지금처럼 연애 따로 결혼 따로 하던 시절이 아니었기 때문에 부담이 되었던 윤소정은 오현경에게 “그건 좀 그렇다”며 거절을 했다고 합니다.
윤소정에게 실연을 당해 딱지를 맞고 집으로 돌아간 오현경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함께 살던 친할아버지마저도 돌아가시는 바람에 그 슬픔과 딱지 맞은 슬픔이 겹치며 오열을 하게 되는데요. 당시 윤소정의 어머니는 딸에게 “방송국에서 전화가 왔다. 오현경 씨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단다.
네가 직접 한번 가보는 게 좋겠다”라고 말씀을 해주시게 되었고, 그렇게 윤소정은 물어물어 장례식장에 도착하게 되는데, 윤소정은 그전까지만 해도 오현경이 “장마철만 되면 집에 수해가 닥쳐서 물이 차고 똥이 물 위에서 떠다닌다”라고 했던 이야기에 오현경의 집이 가난한 줄 알고 있었지만, 막상 가보니 상당한 부잣집이었고 오현경의 할아버지는 유명 은행에 재직하시는 재력이 있으신 분이셨다고 합니다.
장례식 현장에 도착하자 윤소정은 끝도 없이 늘어선 화환들을 보게 되었고, 화환들을 따라 쭉 걸어가자 오현경의 집이 나오게 되었는데 윤소정이 온 걸 본 오현경은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를 만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고, 이후 조문을 와 줘서 고마운 마음에 차 한 잔을 함께 마시게 되면서 이들의 연애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이들은 마치 오현경의 할아버지가 자신들을 맺어주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하는데요.
이후 결혼식을 올린 날 시댁 어른들께 인사를 드리러 가게 된 윤소정은 시댁에 도착하니 어른들이 쭉 앉아 계셨고, 큰절을 서른 몇 번을 올리는데 절을 할 때마다 어르신들은 “내가 누구시다”라고 말씀을 하셨지만, 너무 많아서 다 기억도 할 수가 없었고 그녀의 눈에는 다 똑같이 생겨 보였으며 그저 절을 하라니까 계속 절을 하는데 서른 번을 넘게 하고 나니 힘이 빠져서 영혼은 이미 상실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인사를 마치고 윤소정은 뒷방에서 가만히 앉아있다가 잠시 후 이번에는 어르신들이 가신다고 또 똑같이 인사를 다 드리는데 또다시 시작된 큰절에 다리가 너무나 후들거렸고, 그 바람에 그날 밤은 체력 방전으로 첫날밤이고 뭐고 치르지도 못했다고 합니다. 당시 윤소정은 “이 집 참 대단한 집이구나”라고 느꼈고, “하지만 이미 시집을 온 이상 따라야지 어쩌겠냐”고 생각했다고 하는데요.
윤소정은 결혼 후 1년의 제사만 13번이었다고 하는데, 조상님들이 규칙적으로 한 달 터울로 돌아가시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제사가 많았던 달은 한 달에 세 번이나 지내기도 했고, 제사를 한 번 하면 그릇 설거지까지 다 마치고 나면 허리가 그렇게 아플 수가 없어서 바로 쓰러질 수밖에 없었는데, 하지만 남편이 “오늘 수고했어”라고 한마디 해 주면 그 따뜻한 한마디에 피로가 눈 녹듯 풀리곤 했다고 합니다.
어린 선녀 같은 색시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된 오현경은 윤소정이 8살이나 어리다 보니 나이를 먹어서까지도 애 취급을 하는 습관이 있었고, 그래서 한동안은 아내 혼자는 동네 구청에도 보내지 않고 본인이 다 갔으며, 늙어서까지도 아내가 어디 외출을 하려고 차를 어디 세워놨나 찾으려고 하면 본인이 먼저 나가서 집 앞으로 차를 대령해 갖다 놨다고 합니다.
또한 하루는 윤소정이 가지를 사서 빨리 말리려고 베란다 창밖에 널어놨다가 이후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지만 가지를 널어놓은 걸 깜빡 잊은 채 밖에 나갔다가 집 앞에서 자기 집 쪽을 올려다보니 오현경이 윤소정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고, 가지는 이미 다 치워져 있었습니다. 윤소정이 어디 나갈 때마다 오현경은 그렇게 항상 창밖으로 부인을 내다봤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오현경은 아내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던 사랑꾼이었던 것인데요.
요란하게 생일이나 기념일을 챙겨주기보다는 항상 일상 속에서 부인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밤에 자려고 하면 윤소정의 방에 와서 온도 체크를 하며 “문을 얼마나 열어놔야 감기에 걸리지 않을까?” 하며 문을 살짝만 열어놨다가 다시 조금 닫았다가를 반복하며 문을 열어놓는 폭까지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고 합니다. 그러다 어디가 조금이라도 아프기라도 하면 밤을 새우며 병간호를 했다고 하니 그의 부인에 대한 사랑은 그야말로 지극정성이었던 것인데요.
이렇게 다정했던 이들 부부도 부부싸움을 하기는 했다는데, 둘 다 배우였다 보니 발성이 뛰어나서 마치 누가 발성이 더 큰지 대결하듯 뱃속에서 우러나오는 소리를 지르며 싸우기도 했고, 그러다 보니 옆집까지 싸우는 소리가 다 들릴 정도였는데, 싸움이 끝나고 밤에 누가 초인종을 누르길래 문을 열어 보니 경찰 두 명이 서 있었고, “여자가 막고 있다”는 신고로 출동했다고 하는데, 일단 확인을 해야 한다고 해서 경찰들이 들어가야겠다고 하자 윤소정은 “못 들어갑니다”라고 절도 있게 한마디를 던지며 “여기 딱 두 사람밖에 없고 여자는 나 한 명뿐인데, 그럼 내가 맞았다는 얘기인데 내가 맞은 사람이겠냐”고 반문하며 한참을 설명을 하니까 경찰들은 결국 “갑시다” 하며 그 자리를 떠났다고 합니다. 그렇게 이들은 부부싸움 때문에 경찰까지 출동을 한 해프닝을 겪기도 했던 것인데요.
그러던 중 오현경은 94년에는 식도암, 2007년에는 위암으로 투병했는데, 성격이 깐깐했다 보니 투병 당시 윤소정이 병시중으로 남편의 짜증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던 중 조순형 의원의 부인이 배우 김금지를 만난 자리에서 “언니, 나 너무 힘들어”라고 하소연하자 김금지는 “자기 남편 국회의원에서 떨어져서 짜증을 내는 바람에 내가 ‘저 사람하고 왜 결혼했지? 당장 이혼해야지.
근데 지금 이혼하면 사람들이 욕할 거야. 다시 저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면 그때 이혼해야지. 그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혼할 거다’라며 결심을 했지만, 다시 당선이 되자 남편은 자상하고 친절하게 변했고 그러자 이혼할 생각이 다시 사라졌다”면서 “자신의 상황이 나쁘면 상대를 괴롭힐 수밖에 없다. 너 오현경 씨 건강할 때까지 1년만 기다려 봐”라고 이야기를 해주었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듣고 윤소정은 너무 기가 막힌 대답이라는 생각에 이후 병시중이 힘들기는 했지만, 남편이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이해하며 낙천적인 성격으로 극복해낼 수 있었고, “이거 가지고 이혼하면 세계 어느 나라 어느 사람도 이혼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거다”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남편의 완쾌를 위해 노력했다고 하는데요.
그 덕분이었을까요? 오현경은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고, 암 수술을 앞두고 쓰러졌을 때 전기 충격기 응급치료를 받고 깨어나기도 했는데, 윤소정이 남편이 죽은 줄 알고 울고 있었지만 그때 막 눈을 뜬 오현경은 “이 사람아 왜 그래, 창피하게”라며 건강하게 말을 했다고 합니다.
암 투병을 했던 오현경에 비해 윤소정은 평소 지병도 없었고 칠순이 넘어서도 드라마와 영화, 연극까지 왕성하게 연기 활동을 했으며, 드라마 촬영으로 새벽부터 바쁘게 나가는 윤소정을 위해 오현경은 커피부터 과일까지 손수 자상하게 챙겨주기도 했다는데요.
그러던 어느 날 윤소정은 감기 기운이 있어서 약을 먹었지만 급속히 악화되면서 병원에 입원까지 하게 되는데, 패혈증이 급성으로 진행되는 바람에 끝내 혼수상태에 빠지게 되었고 결국 일어나지 못하면서 73세라는 이른 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당시 그녀가 출연한 드라마 ‘엽기적인 그녀’가 방영 중이었을 정도로 너무나 건강하게 활동을 하던 사람이 갑자기 떠나자 오현경은 큰 슬픔에 빠지게 되는데요.
그래서 그런 것일까요? 아내의 부재는 오현경의 노년 인생을 참으로 고독하고 외롭게 만들었는데, 쓰러지기 직전까지도 연극 무대에 오르며 연기 열정을 불태웠지만, 작년 8월 끝내 뇌출혈로 쓰러진 뒤 7개월가량 투병을 하다가 그 역시도 그만 아내를 따라 먼 곳으로 떠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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