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이 경쟁하는 토요일 저녁, 요란하지 않고 차분하면서 잔잔한 흐름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던 프로그램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가 큰 변화를 맞이했습니다.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진행자였던 김영철 배우가 178회 보령시 편을 끝으로 하차를 결정했기 때문인데요. 김영철은 그렇게 2018년 11월 시작으로 178회 만에 해당 프로그램에서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동네 한 바퀴’는 씨름 선수 출신 방송인 이만기가 바통을 이어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김영철 배우의 하차 소식은 다소 당황스럽고 그 결정의 시점도 애매하죠. 만약 하차를 결정했다면, 큰 기념이 될 수 있는 200회를 마치고 해도 될 일이었습니다. 178회를 진행한 상황에서 하차가 급히 진행되었다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는데요. 당장 시청자 게시판 등에서 그의 하차와 관련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의 이름을 빼고 시즌2로 ‘동네 한 바퀴’로 프로그램을 이어간다고 했지만, 일이 너무 인사불성으로 진행되는 모습입니다.
‘동네 한 바퀴’는 어르신들만 만나는 프로그램이 아니고, 그 동네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입니다. 그 동네에서 평생을 살다시피 한 구순의 노인도 있고, 그 동네에 이제 막 창업한 20살 청년도 있고, 이 모두와 소통하는 프로그램인데, 이만기가 어르신이 아닌 신선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창업한 청년 사업가나, 가게 한편 오래된 스피커, LP가 잔뜩 쌓인 클래식 애호가나 카페 사장님 같은 사람들과도 얘기가 잘 통할지 의문입니다.
이만기 씨를 보면 하고 싶은 얘기가 있습니다. 제발 정치판에는 기웃거리지 마세요. 제발 정치는 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김해에서 정치판에 두어 번 기웃거린 적이 있었던 걸로 아는데요. 그때는 참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좋은 이미지 정치판에서 잃고 누더기 될까 봐 이만기 씨를 아끼는 마음에서 하는 얘기이니 오해는 마시길 바랍니다. 설마 TV 출연해서 돈 많이 벌고 인기 많이 얻어서 또 출마하시려고 하지는 않겠죠.
또 다른 문제는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의 시청자 소감에는 이만기를 환영하지 않는 글이 대부분입니다. 한 시청자는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이만기 씨가 이 프로그램에 어울립니까? 국회의원에 출마해서 떨어지고 이제 2년 후에 출마하시려고 슬슬 이미지 메이킹 하려고 하십니까? 1회부터 쭉 봐온 애청자입니다. 글 쓰려고 KBS 회원가입까지 했네요. 정치권에 얼씬거리는 사람을 왜 이 프로그램에 투입합니까? 그렇게 사람이 없습니까? 제발 다른 분으로 바꿔주세요. 너무나 좋아하는 프로그램인데 잃고 싶지 않네요.”
이유는 전에 이만기가 욕설 글을 SNS에 공유한 사실 때문인데요. 이만기는 2016년 4월 13일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했다가 낙선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이재정 경기교육감을 겨냥해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세력을 ‘빨갱이’라고 과격하게 표현한 페이스북 글을 공유해 논란이 있었죠. 당시 대한민국 정부 감시단 소속인 하 모 씨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피켓을 들고 있는 이재정 교육감의 사진과 “빨갱이는 보이는 즉시 사살하라. 법은 빨갱이들에게 인권 타령 마라. 보이는 대로 때려죽이는 것이 최선책. 몽땅 죽여 없애야 한다”며 이 교육감을 욕설과 함께 거칠게 비난했던 글이었습니다. 문제는 이만기가 해당 글을 그대로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유했기 때문인데요.
누리꾼들의 실망스럽다는 반응과 비난이 거세지자 이만기의 페이스북에서 해당 글은 얼마 후 삭제되었습니다. 이만기는 후보자 유세 중 상대방 김경수 후보를 겨냥하며 색깔론 공세를 펼쳐 논란도 있었죠. SNS상에서 자신의 신념이나 동의하는 내용은 나누고 공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빨갱이 때려죽이는 것’ 등 거친 욕설을 공유하는 것이 대학교수이자 국회의원 후보였던 사람이 할 행동이었냐는 것이죠. 그래서 이번에 KBS 1TV 대표적인 교양 프로그램인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시즌2의 진행자가 될 자질이 있냐는 것입니다. 잠시건 한 번이건 간에 논란이 있는 이만기의 진행을 반대하는 ‘동네 한 바퀴’ 시청자들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이 소리를 KBS가 외면한다면, 수신료 징수의 당위성이 사라지고 시청자들의 시청 거부에 김영철 없는 ‘동네 한 바퀴’는 얼마 못 가 폐지될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KBS의 주인은 반강제로 수신료를 꼬박꼬박 내는 시청자들이니까요. 김영철 배우는 ‘동네 한 바퀴’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오랜 세월 이 프로그램과 함께하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고 강한 애착을 보였습니다.
과거 드라마 출연을 하면서 프로그램을 병행한 경험도 있고, 스케줄 문제는 조절이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고 했죠. 그의 나이를 고려하면 지방 촬영이 이어지는 일정이 부담이 될 수 있지만, 더 많은 나이에 최불암 배우가 진행하는 ‘한국인의 밥상’은 무리 없이 프로그램을 이어가고 있고, 김영철 배우는 최불암 배우와 같은 길을 가고 싶다고 하기도 했었는데요.
그만큼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에서 김영철 배우의 하차는 시청자들에게는 큰 충격입니다. 그가 없는 ‘동네 한 바퀴’가 이전과 같이 잔잔하면서 억지스럽지 않은 감동을 계속 시청자들에게 안겨줄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도 생깁니다. 과연 새로운 진행자가 김영철 배우만큼 공감을 불러오고 출연하는 이들의 속 깊은 이야기를 이끌어 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프로그램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에서 김영철 배우의 위치는 절대적이었습니다. 그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웠고, 프로그램은 그의 시선을 따라 진행되었죠. 김영철 배우는 기행하는 장소를, 사람들을 직접 만나고 중간중간 들리는 내레이션도 그의 몫이었습니다.
그런 김영철 배우가 방송에서 하차하는 건 상상하기 힘든 일이고, 이를 두고 이런저런 말들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시청자들이 김영철에 조용히 빠져든 이유는 친숙한 동네 아저씨가 되어 마을 길을 걷다 주민과 구수한 입담을 섞고, 불쑥 들어간 곳에서 음식을 먹고 차를 마시며 주인의 인생사를 듣고 맞장구를 치고 손을 잡아주기 때문입니다. 카리스마 있는 왕, 두목 등 선이 굵직한 연기자답지 않게 종종 붉어진 눈시울을 감추지 않고, 하굣길에 마주친 어린 학생들과도 스스럼없이 농을 주고받는 ‘국민 아저씨’로 다가오기 때문인데요. 방송 프로그램으로는 드물게 안티도 안 보이고 시청자 소감의 댓글들은 마치 동네 사랑방 분위기가 납니다. 올해로 41주년이 된 KBS의 ‘전국노래자랑’에 고 송해 님처럼 주말마다 전국 구석구석 사람 냄새를 찾아 걷다 보면 40년 이상 가는 장수 프로그램이 될 것 같았죠.
김영철 배우는 오랜 경력의 배우지만 다양한 연기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습니다. 증오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왕 역할도 했고, 액션 배우도 했었고, 평범한 아버지와 같은 생활 연기와 코믹 연기, 개성 넘치는 악역도 그의 필모그래피에 속하는데요. 특히 ‘태조 왕건’에서는 궁예 역할을 맡아 광기와 카리스마의 완벽한 조합이 이루어진 연기로 극을 압도적으로 이끌며 주연인 왕건을 제치고 연기대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주로 카리스마 있는 역할로 유명하지만 평범하고 선한 서민 역할 또한 뛰어나게 소화해내는 넓은 연기 폭을 가진 배우라는 평가를 받고 있죠. 2010년대에 들어 과거 연기한 ‘달콤한 인생’의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장면, ‘태조 왕건’의 “누가 기침소리를 내었는가” 장면, ‘야인시대’의 “사딸라” 장면 등이 인터넷을 통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유행하면서 세대를 초월하여 폭넓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데요. 원래는 연기 전공이 아니라 체육 전공이었다고 합니다.
본인의 말에 의하면 학창 시절에는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고 권투, 유도, 축구를 했었다고 하는데요. 친구와 함께 명동에 놀러 갔다가 우연히 선배 연기자인 이정길이 하는 연극을 보고 연기에 눈을 뜨게 되었다고 하죠. 2000년대에 들어서 맞이한 김영철의 제2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역할은 ‘태조 왕건’의 궁예와 ‘야인시대’의 중년 김두환인데요. 이 두 역할은 현재까지도 김영철의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KBS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의 궁예 역은 그가 1980년대 보여주었던 카리스마를 집대성한 명연기를 보여주었고, 종영 이후에도 회자되는 김영철의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궁예는 애초에 주인공도 아니었고 총 200부작 드라마 중 80부까지만 나오는 것으로 계약된 배역이었는데, 예상을 초월하여 궁예 역할이 시청자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게 되는 바람에 2번 연장되어 120부까지 출연하게 되었죠.
드라마의 절반 넘게 궁예가 주인공 왕건보다 더 주인공 같다는 평가를 받으며 주목받았고, 결국 김영철이 타이틀 롤이 아님에도 연기대상까지 차지합니다. 대상 수상자가 주인공 역할이 아니라는 사실이 당시 관례에서 보면 꽤나 파격적이긴 했지만, 당시 김영철의 궁예 연기가 2000년 한 해 내내 이슈였을 정도로 너무나 뛰어났기에 주인공이 아닌 역의 대상 수상에도 논란이 전혀 없었죠. 본인은 주인공도 아닌 자신이 스포트라이트를 독식해서 왕건 역의 최수종과 라이벌 견훤 역의 서인석에게 미안했다고 했을 정도였습니다. 드라마 후반부로 갈수록 궁예가 광적인 감정 표현을 하거나 조폭의 모습을 보이거나 하는 등 비정상적인 모습을 자주 보이는데, 이런 장면들에서 김영철은 특히나 신들린 연기력과 발성을 선보였기에 시청자들 뇌리에 깊이 남을 수밖에 없었는데요.
가령 술 취한 궁예가 사람을 쳐 죽이는 장면에선 취중에 혀가 꼬이는 것에서부터 술 취한 사람이 비틀거리며 움직이는 것까지 진짜 술 취한 것처럼 재현하였죠. 김영철은 실제로 삭발을 하고 연기에 임했고, 장기간 한쪽 눈으로 연기한 탓에 시력에 이상이 와서 드라마가 끝나고 고생했다고 합니다. 물론 영원한 건 없고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는 게 삶의 이치인데요. 김영철 배우와의 이별도 언젠가는 찾아올 일이었고, 그 이별이 조금 일찍 찾아온 것이라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 허전함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시청자들은 김영철 배우가 사연을 접하고 눈물짓던 장면,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어르신들을 보고 걱정 어린 시선을 보내던 장면, 청년들의 꿈과 희망을 아버지처럼 응원하는 장면을 잊을 수 없는데요.이별과 관련해 여전히 논란이 있지만, 시청자들은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를 통해 보통 사람들의 위대함, 그런 보통의 역사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우리는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 삶의 또 다른 면을 볼 수 있도록 도와준 김영철 배우의 노고에 감사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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