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 역사의 산증인, 대한민국 최고의 대배우 이순재 씨를 보면 어떤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발음 대사 전달력 암기력 발성 등등 배우로써 갖춰야 하는 자질들을 너무나 완벽하게 갖추고 있는 훌륭한 배우입니다.
오죽했으면 한국어의 장단음까지 구분할 정도로 엄청난 노력을 했을까요? 또한 그는 영화, 연극, 브라운관을 오가며 60년 넘게 엄청난 커리어를 쌓아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순재 씨의 다소 놀라운 근황이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일부에서는 그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이들까지 생기고 있었습니다.
이순재 씨는 함경북도 회령군에서 장남으로 출생하여 서울에서 성장했습니다. 그후 그는 재수를 통해 서울대 철학과에 입학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대학에 들어와서 영화에 빠지게 되어, 진로를 연극으로 바꾸게 되는데요. 엄격한 교육을 받아왔던 그. 부모님과 주변의 만류도 많았을 상황. 이 모든 것들도 연기를 향한 그의 열정을 꺾을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보장된 출세의 길을 뒤로 하고 본인이 진심으로 원하던 연기 인생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연기에 진심인 면모는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이화여자대학교 한국 무용을 전공한 6살 연하의 최희정 씨를 아내로 맞이한 이순재 씨는 결혼 초기에 생활고를 겪었습니다.
그는 ‘데뷔 초 3~4개월 공백기가 있었다. 그래서 생활이 어려워 아이 돌반지를 밑천으로 아내가 만두 가게를 열었다. 아내 혼자 힘으로 열었던 만두가게가 장사는 무척 잘 됐다.’ 세계 일주를 2번이나 하면서 공연을 하고 신인상을 수상할 정도로 무용만 하던 최희정 씨가 얼마나 형편이 어려웠으면 만두 가게를 차렸을까요?
다행히 만두가게는 대박이 났고 훗날 빌딩을 살 정도로 번창하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순재 씨는 이 잘되는 만두 가게를 갑자기 포기하게 됩니다. 그는 ‘사업이 저와는 맞지 않더군요. 그래서 결국 마누라한테 ‘이봐, 나는 평생 연기할 사람인데 장사에 모든 정신을 뺏기면 난 못해. 굶어서 아무것도 못해도 좋으니까 당장 때려치워.’ 라고 심한 소리를 하고 그만두게 했습니다.
이런 이순재 씨의 연기에 대한 진심 때문일까요? 이후 다소 늦은 나이에 배우로서 성공가도를 달렸고 정치에까지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1956년 연극 <지평선 너머>로 데뷔를 한 이순재 씨는 1957년 대한민국 최초의 텔레비전 방송국인 대한방송의 드라마에 출연하며 정식 데뷔를 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그의 연기 인생은 대한민국 텔레비전 드라마 역사와 처음부터 궤를 같이한 셈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새삼 이순재 씨의 60여 년의 연기 경력이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는 20대, 30대, 40대, 50대 초반까지도 대중들에게 좀처럼 주목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연기를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본인에게 주어진 작품에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오히려 하루에도 발음, 발성 연습을 1~2시간씩 하면서 연기력을 키우는 데 열중하였습니다.
그리고 결국 늦은 나이에 아버지, 스승 역할을 하며 대중들의 큰 사랑을 받게 됩니다. 대발이 아빠로 열연을 펼친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 는 1990년대 이래 역대 한국 tv 드라마 평균 시청률 1위 59.6%를 기록하기도 했으며, 스승인 유의태 역할을 맡은 드라마 <허준> 은 당시 최고 시청률 65%를 달성하는 대단한 업적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이런 여파로 이순재 씨는 뒤늦게 최고 전성기를 누리며 큰 인기를 얻게 됩니다. 그 후 여세를 몰아 정치에까지 입문하여 대한민국 제 14대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었죠.
그러다 갑자기 정계에서 은퇴한 그는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코믹한 모습까지 선보이며 젊은층 사이에서도 큰 지지를 얻게 됩니다.
그럼 먼저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실 것 같은 그의 최근 놀라운 근황을 먼저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최근 이순재 씨는 kbs 예능프로그램 <갓파더> 에 출연해 정호근 씨에게 점을 보는 장면이 전파를 탔습니다.
정호근 씨는 ‘평생 바쁘게 살고 버는 사람, 가져가는 사람 따로 라고 말씀하신다. 굉장히 고독한 사주다. 어렸을때도, 일할 때도, 부모가 계셔도 부모 밑에서 못 커서 정을 못 느끼는 것이다.’ 라고 점괘를 전하였습니다.
이를 들은 이순재 씨는 놀라며 ‘4살 때 부모님과 떨어져 서울로 와 조부모 손에서 자랐다. 또 한 가지, 벌어도 내가 쓰는 돈이 아니다. 전부 미국에서 공부하는 외손주들 뒷바라지를 한다. 아직은 애들 뒷바라지를 하는 입장이라 뒤에 편하게 있을 수 있는 나이인데 그런 부분이 신경 쓰인다.’ 라고 고백했는데요. 이 사실을 듣고 많은 이들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1934년생의 이순재 씨 올해 나이는 무려 88살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미국에서 공부하는 손주들을 무려 셋이나 뒷바라지하기 위해서 돈을 버는 그의 모습이 한편으로는 안타까워 보였기 때문인데요.
그러나 한 가지 오해가 있는 듯합니다. 손주를 뒷바라지 하는 것은 주변의 부탁이 아닌 순전히 그의 의지 때문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품에서 자라지 못한 손주를 보듬어주고 지켜주고 싶었던 그의 마음 때문이었는데요.
그도 4살 때 부모님과 떨어져 살았으니 아마 더더욱 어린 손주들을 이해하고 애틋하게 바라보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자신의 인생을 즐겨도 될 나이인 지금에도 손주를 위해 노력하고 고민하는 그의 모습에서 손주에 대한 사랑과 따뜻함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이순재 씨의 연기를 앞으로도 오래도록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