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철은 한때 트로트 가수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며 승승장구할 때 부부가 이혼을 했다는 루머가 돌기 시작했고 그래서 방송에도 몇번 출연했지만 사람들은 아내얼굴이 틀리다고까지 했다고 하는데요. 일화를 밝히면서 아내에게 미안함 마음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훗날 밝혀진 바로는 사람들이 와이프 얼굴이 다르다는 소문은 놀랍게도 사실이었고 당시 전처와 결혼을 유지하며 동시에 상간녀를 만났다고 했습니다. 트로트 황태자로 불리며 산골 소년에서 노숙자를 거쳐 대형 가수로 급부상하며 무조건 앞만 보고 달리다 결국 두 집 살림 차리게 된 박상철 그에 대해 말해 보고자 합니다.
박상철 그는 1969년 강원도 삼척시에서 태어났으며 산과 냇가를 벗삼으며 가수로의 감수성을 키워나갔다고 했습니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가수가 되고 싶다는 마음에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으며 서울에 도착해 그가 제일 먼저 달려간 곳은 작곡가 사무실이었다고 했습니다.
그곳에서 오디션을 본 후 당장 음반을 내도 되겠다는 말을 하면서 1000만원이 있으면 음반을 만들 수 있다고 해서 그는 수개월 만에 공사현장에서 아픈날에서 쉬지 않고 일을 해서 악착같이 벌어서 작곡가에게 전달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앨범을 내줄 생각이 없었고 결국은 사기를 당기였는데요. 어렵게 모은 돈을 사기 당하고만 박상철은 거지꼴이 되아 당시 경비가 허술한 건물이나 서울역, 구로역 같은 지하철 역들에서 노숙을 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박상철 그는 노숙 생활을 끝내고 일단 고향 삼척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요. 그는 생계를 위해 미용실을 차려 생활을 이어가던 그는 마침 1993년 삼척에 전국 노래자랑이 녹화를 왔다고 했습니다. 그는 기회이다싶어 철저히 준비해 참가했으며 유열이 부른 ‘화려한 날은 가고‘를 불러 일등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는 전국 노래자랑에서 1등을 하자 담당 피디를 찾아가 무작정 가수를 시켜달라고 졸랐다고 하는데요. 그렇게 전국 노래자랑 PD 덕분에 그는 이튿날 삼척에서 서울로 가수 ’신도불이‘ 작곡가 박현진을 만났다고 합니다.
초반에는 곡을 알리는 것조차 쉽지 않았는데요. 결국엔 박상철 그의 피나는 노력으로 라디오의 그의 노래가 울려퍼지며 ’자옥아‘가 어느 정도 알려졌지만 가수의 얼굴까지는 알려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라디오와 다르게 TV는 혼자 힘으로 출연을 뚫을 방법이 없었고 여전히 그는 무명 가수에 가까웠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대중들에게 자신의 얼굴을 알릴 수 있을까? 고민하다 그의 역발상 도전이 빛을 발하게 됩니다. 연기자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재연 프로그램에 뛰어들어 얼굴을 알렸으며 시간이 갈수록 재연 배우 출신 가수로 알려지면서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섰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그가 MBC ‘가요 큰잔치’에 출연하면서 당시 주부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이끌며 담당 피디는 가수 박상철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힘들게 얻은 인기가 상간녀 문제로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방송에선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