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당시 연예인들의 세금 납부액이 중요 뉴스로 보도되던 그 시대에 가수 남진이 낸 세금은 46만 4000원으로 연예인 중 세금 납부 1위를 차지했고 당시 물가를 생각하면 46만원이라는 금액은 말 그대로 어마어마한 돈을 세금으로 낸 셈이었습니다.
그렇게 세금을 가장 많이 내며 인기가 절정이던 1968년 그 해 남진은 해병대 군대에 자원 입대했고 그렇게 슈퍼스타 남진이 군대를 가자 소녀 팬들이 배웅하기 위해 부산까지 쫓아와 그를 걱정하며 울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가수로서 최고의 인기를 얻었던 그는 원래 처음엔 가수가 아니라 영화배우가 되고 싶었다고 하는데요. 그렇게 그는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하면서 서울로 상경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대학교 시절 우연한 기회로 친구들과 놀러가 산장에서 노래를 부른 적이 있다고 하는데요. 그 때 산장 주인이 갑자기 남진의 무리에 찾아와 자신이 아는 작곡가를 소개시켜준다고 했고 그는 별 기대감 없이 장난삼아 번호를 건냈지만 그러나 얼마 후 진짜 전화가 와서 약속을 잡고 카페에 앉아 있는데, 당시 최고의 가수 남일해가 부른 첫사랑 마도로스를 작곡한 한동훈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심지어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남일해가 카페에 들어와 한동훈과 30분쯤 신곡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의 이야기가 끝나고 남일해가 가고 나니 한동훈이 남진이 있는 자리로 왔고 그때 산장 주인이 “이 친구 목소리가 참 괜찮다”며 남진을 열심히 소개했고 이후 카페를 나와 근처에 있던 한동훈의 음악학원으로 가 남진은 팝송 한 소절를 부르게 되었습니다.
재밌는 것은 그때 당시 남진은 가수할 생각은 없었지만 학원에서 자신의 이상형을 만나 그대로 음악학원에 등록했다고 하는데요. 그렇게 영화배우의 길을 꿈꿨던 그였지만 그러나 그는 가수연습생 겸 연애를 시작했습니다. 놀랍게도 불과 몇 개월 후인 1965년 그가 대학교 2학년 때 한동훈 음악학원에서 첫 음반을 레코딩하며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반대가 심했고 안타깝게도 당시 지병을 앓고 있던 아버지가 그러고 몇 개월 안 있다가 1966년 그가 가수로 성공하기 전에 세상을 등지고 말았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22살에 첫 음반을 제작해 가수로 데뷔한 그는 어린 생각에 앨범만 내면 자신의 노래가 방송에 나와 인기가수가 될 거라 생각했지만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인기는 커녕 그의 노래는 방송조차 나오질 못했습니다. 당시에는 방송에 나오려면 PD와 연이 있거나 돈봉투를 건네야 했다고 하는데요.
그러나 그런건 전혀 몰랐던 그는 결국 철저하게 실패한 후 너무나도 큰 좌절감과 실망감으로 남진은 고향으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고향으로 내려가 1년 동안 계속 술만 마시며 좌절하고 있던 그에게 운명처럼 다시 기회가 찾아오게 되는데요. 바로 당대 최고의 제작사였던 ‘오아시스레코드’사에서 그에게 전속 가수 제안이 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두 번째 앨범 ‘연애 0번지’를 발표하며 이번에는 첫 번째 앨범과 달리 방송도 제법 타고 히트 바로 직전까지 갔지만 그러나 어느 날 음악 담당 PD가 남진에게 대뜸 “너 노래 방송 금지 당했어“라고 통보했다고 하는데요. 갑작스러운 금지 통보에 놀란 남진은 ”제 노래가 왜 금지입니까?“ 라고 물었는데요.
당시 ‘연애 0번지’라는 곡의 ‘0’이라는 숫자가 ‘무한’ 또는 ‘아픔’ 같은 심오한 뜻으로 신체 특정 부위를 형상화했다며 무조건 금지라고 했습니다. 남진은 ‘0’이라는 숫자 하나 때문에 노래가 금지가 되어 다시 고향인 목포에 낙향했고 당시 그는 ‘숫자 0이란 무엇인가’ ‘이 곡이 왜 금지가 됐는가‘ 그런 생각을 수도 없이 하며 ’1번지 2번지는 재미가 없으니 0번지를 한 것인데‘ 억울했다고 합니다.
물론 그 이후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트로트가수가 되었지만 노래 제목때문에 방송 정지가 당하다니 정말 억울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의 타고난 목소리 덕분인지 많은 히트곡을 냈고 남진의 노래를 듣고 트로트가수의 꿈을 꾸는 사람들도 생겼는데요. 그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