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 잘못 만나 인생 말아먹었네..” 송창식 믿었던 아내에게 전재산 뺏긴것도 모자라 처형자식 두명 입양, 결국 목소리까지 잃은 최근 충격근황

송창식은 전성기 시절 엄청난 퀄리티의 시대를 앞서간 곡들을 뽑아냈는데 매우 많은 그의 노래들의 대부분이 송창식 본인의 작사 작곡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창 잘 나가던 때에는 돈을 꽤 많이 벌었다고 소문이 자자했는데요.

하지만 금전 관리가 철저했고 사업 수완이 있었던 윤형주는 많은 재산을 축적해 재산가가 된 반면에 사람이 너무 좋아서 보증도 서주고 돈도 꿔달라는대로 꿔 주던 송창식은 많은 재산을 잃었다고 합니다. 물론 송창식이 돈을 잘 벌던 시절에 알랑대며 돈을 꿔 간 사람들 중 제대로 갚은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하는데요.

그리고 훗날 그의 재산을 가장 많이 이용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당시 그는 독신주의자를 자신의 타고난 운명이라 생각해 결혼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이론적으로 무장하고 다닐 정도였는데 한 여자를 만나는 순간 자신이 독신주의자라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고 하는데요.

이후 그는 ‘과연 내가 결혼 생활을 잘 할 수 있을까’ 겁이 났지만 그래도 서로 좋아하니까 결국 결혼을 했는데 딱 일주일만에 ‘이 결혼은 잘못됐구나’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하는데요. 자신도 남편 될 준비가 채 안 된 사람이긴 했지만 아내 역시 평범한 아내이자 주부로 살 사람이 아니라는 걸 그제서야 깨달았다고 합니다.

송창식은 슬하에 1남 2녀를 두고 있는데 맏아들 외 두 딸은 모두 입양한 자식들이라고 하는데 언론을 통해 공개한 가족사에 의하면 두 딸 모두 처형과 관계가 있다고 합니다. 결국 아내의 쌍둥이 언니 때문에 송창식 부부는 아이가 두 명이 생긴 것입니다.

그는 뛰어난 작곡가인 만큼 저작권 수입이 1년에 1억원쯤 되는데 저작권 협회에서 25%를 떼면 7500만원쯤 된다고 합니다. 그마저 25년째 별거하고 있는 부인이 사업한다고 써버리고 자신은 공연 수입으로 먹고 산다고 밝혔습니다.

그런 그와 그 아내는 보통의 남편과 보통의 아내로 살기엔 특별한 구석이 많았다고 합니다. 아내는 사회적 위치가 높은 상류층 여성이었고 가정에서 남편의 아내 노릇을 할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송창식도 가수로서 존재 가치가 꽤 컸지만 그것조차 아내에겐 별로 눈에 들어오지가 않았다고 합니다.

살수록 더 많은 불편함이 노출되자 둘은 합리적인 결정을 하기에 이르뤘다고 하는데요. 서로의 생활을 존중하고 보장하기 위해 집을 따로 얻어 살기로 한 것인데 별거한지 벌써 25년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앞서 말한 두 딸도 손창식의 친자가 아닌 처형과 관련이 있었는데요.

첫째 딸의 경우는 난임인 처형이 아기를 갖고 싶어 한국에서 아이 입양을 추진했다가 관련 법규가 바뀌면서 무산되게 되었는데 이 아이를 거둬 기른 것이라고 합니다. 둘째 딸의 경우는 이후 처형이 인공수정을 통해 임신 및 출산에 성공했으나 당시 처형이 직접 양육할 사정이 못 되어 조카를 입양한 것이라고 하는데요.

결국 아내의 쌍둥이 언니 때문에 송창식은 아이가 두 명이 생긴 겁니다. 그렇게 처형의 아이까지 모자라 그가 번 저작권의 수입을 25년째 별거하는 부인이 사업한다고 쓰고 자신은 공연 수입으로 먹고 산다고 밝혀 안타까움을 자아냈습니다.

7,80 년대 한국가요사에서 단 한 명의 천재를 꼽는다면 작사 작곡은 송창식이라고 말할 사람들도 상당히 많은데 은근히 서로 자존심이 쎈 세시봉 멤버들조차 송창식의 천재성은 입을 모아 칭송할 정도였습니다. 그는 윤형주와 함께 듀엣 트윈폴리오로 데뷔했다가 윤형주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면서 1970년에 솔로로 전향했습니다.

그가 처음부터 돈이 많은 건 아니었는데요. 예전에 세시봉 멤버들이 나와서 토크할 때 송창식의 가난하던 시절을 회상하는 부분에서는 찢어지게 가난한 것을 넘어서 달랑 기타 하나를 들고 노숙하면서 지내고 노래 불러주면서 밥을 얻어먹고 이 집에서 며칠, 저 집에서 며칠 이런식으로 생활했을 정도로 매우 가난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피나는 연습을 통해 자신의 실력을 더욱 갈고 닦아 클래식 창법으로 대중가요계에 등장한 조영남을 만나면서 가수로 데뷔하고 많은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한편 음악 천재라고 불리던 그는 1976년에 성대 결절 수술을 받은 뒤 목소리가 조금 갈라졌다고 밝혔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저작권 수익이 있었기에 수입은 끊이질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그의 수입이 모두 아내에게 돌아갔다니 정말 안타까운데요. 이제 70이 훌쩍 넘은 송창식은 아직도 자신의 이름을 딴 라이브 카페에서 노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한, 아내와는 25년째 별거중이라니 놀라운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는 그가 노래하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는 날은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을 것 같지 않은데요. 지금까지 노래를 향한 그의 진심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의 남은 여생이 행복하길 바라겠습니다.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