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세 이민아 갑상선암과 위암 투병 끝에 결국” 김한길 전부인 이민아가 세상을 떠나기 전 맞이한 안타까운 불행의 연속 아버지 이어령의 후회와 눈물

참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가 간 여인이 있습니다. 바로 전 문화부 장관 이어령 교수의 딸 이민아인데요. 김한길의 전 부인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녀는 세 번의 결혼과 두 차례의 이혼을 했고 김한길과의 사이에서 낳은 큰아들은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이어 둘째 아들은 자폐 판정을 받았는데요.

이 정도만 해도 보통 사람들은 극복하기 힘들었을 텐데 이민아 본인은 실명 위기까지 겪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후 갑상선암과 위암까지 얻어 투병 끝에 향년 5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웃는 날보다 우는 날이 더 많았던 인생이었지만 마지막까지도 “모든 시련과 고난이 내게는 축복이었다”며 웃음을 잃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녀의 아버지인 이어령 교수는 지난 2월 26일 향년 88세의 나이로 별세했는데요.

이여령 교수는 마지막까지도 딸 이민아를 생각하며 “민아를 만날 생각 네가 간 길을 내가 간다”고 유언을 남겼는데요. 이어령 교수에게 깨물어 가장 아픈 손가락이었던 인물은 아마도 고인 이민아 목사일 것입니다.

고인은 딸이 세상을 떠난 10주기를 보름가량 앞두고 별세해 안타깝게 했는데요. 생전에 냉정하게 대한 딸한테 하늘나라에서나마 아버지의 정을 전해주려고 때를 맞춰 타계한 것이란 탄식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민아는 이화여자 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3년 만에 조기 졸업할 정도로 수제인 학생이었습니다. 그녀는 아버지의 말을 잘 듣는 착한 딸이었습니다. 하지만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난생 처음 아버지를 거역하는데요.

죽을 만큼 사랑하는 한 남자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는 바로 김한길입니다. 김한길은 국회의원과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낸 정치인이자 소설가 및 방송인입니다.

이민아와 만났을 당시에는 소설가로 등단을 했을 무렵이었습니다. 이어령 교수는 두 사람의 결혼을 강력하게 반대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민아는 훗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의지대로 했던 일이라고 회상하기도 했는데요.

이민아는 아버지의 뜻을 거른 채 김한길과 결혼을 한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 당시 22살의 나이였는데요. 너무나도 사랑했던 사람이기에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한창 꿈을 꾸던 22살의 나이에 타지의 고된 생활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미국으로 간 두 사람은 방 하나짜리 월세집에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미국에서 아이를 낳아 기르고 공부하고 돈도 벌어야 하니 두 사람의 관계는 점점 더 소원해졌습니다. 결국 결혼 5년 만에 이혼하게 되었는데요.

두 사람은 각자의 일에만 몰두하다 정작 중요한 것은 놓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들의 아이였는데요. 두 사람은 각자 재혼을 하면서 이민아는 재혼 후 2남 1녀를 낳았습니다.



하지만 김한길과의 사이에서 낳았던 아들 유진이 세상을 갑작스럽게 떠나게 되면서 그녀의 불행이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이에 이민아는 너무나도 큰 충격을 받았고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힘들어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이민아는 자식으로 인해 또 한 번의 시련을 겪게 되는데요. 그녀의 둘째 아들이 자폐 판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또한 다음에는 그녀에게 병마가 찾아오면서 불행을 연속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그녀는 세 번의 갑상선암 수술로 생사의 기로를 넘나들었고 실명의 위기에 처하기도 하면서 갑상선암과 싸우다 어느정도 회복이 되나 싶었더니 결국 위암 말기 판정까지 받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결국 다시 일어날 수 없었는데요. 하지만 늘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말하며 죽는 순간까지 행복하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참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간 이민아는 도대체 삶을 어떻게 견뎠을까 싶을 정도로 힘겨워 보이는데요.

하지만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봉사를 하며 살아온 그녀가 그곳에서는 평안하게 쉴 수 있었으면 좋겠으며, 이제는 아버지 이어령과의 회포도 풀 수 있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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