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덕화 씨인데요. 그는 주변인들의 말에 의하면 예능에 출연에서도 낚시와 관련된 내용 하나만으로 자중을 초토화시킬 수 있는 엄청난 내공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2017년 들어서는 이경규 씨와 함께 나만 믿고 따라와 도시 어부라는 낚시 전문 예능 프로그램을 하기에 이릅니다. 드라마 수상한 파트너에서 함께한 배우 지창욱 씨의 말에 따르면 조카 씨가 촬영장에서 낚시를 씨 얘기를 많이 한다고 합니다. 종류에 상관없이 낚시랑 낚시는 다 좋아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낚시광 배우 이덕화 씨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그는 1952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으며 선대 영화배우 위에 자녀로 일 남 일 녀를 뒀으며 배우 이지현 씨가 딸입니다. 당대 터프가이의 대명은 이덕화 씨의 전성기는 반항적이고 거칠지만 여성에겐 목숨 걸고 사랑할 줄 아는 남성이었습니다. 청춘 스타로서 혹은 주연급 남자 배우로서 주로 활약했습니다.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 3학년 시절 비교적 어린 나이로 동양 방송 13 기 공채 합격해 연기계에 입문했으며 야성적인 이미지로 큰 인기를 모은 하이틴 스타였습니다. 진짜 잊지 마 등 진짜 시리즈에서 임예진 씨와 콤비로 찍은 작품은 장안의 화제였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나이 지긋한 아버지 역이나 사장님 회장님 혹은 조선시대 왕 역사 유명 인물 등으로 많이 출연해서 이 분야에서 타이 추종을 불러워하는 카리스마 연기를 보여주며 거물 배우로 자리매김합니다.
현재는 과거와 달리 웃기면서 카리스마 있는 인물이라든가 마냥 웃긴 인물을 맡기도 해서 희극적인 방향으로 연기를 변신을 꾀하고 있습니다. 물론 천추태후의 강감찬이나 근초고왕의 주목력처럼 고전적인 칼이 크리스마 역할도 여전합니다.
당대의 탑 연기자로 청춘 스타부터 액션 멜로 등 다양한 연기를 했지만, 악영 연기가 독보적입니다. 특히 사랑의 종말에 남현필 회장이 인간이 어디까지 만나는 것이다.
나갈 수 있는지를 똑똑히 알려준 배역입니다. 이덕화 씨는 여기서 전무후무한 최강의 악역을 실현했습니다. 악역 전문 배우 지망생들에게는 사랑의 종말이 최고의 추천작입니다. 그리고 제 오공학도 흑화된 육군 장성의 모습을 제대로 표현했습니다. 준수한 외모로 패션모델 광고 모델로도 활발하게 활동했습니다. MC계에서도 대활약했으며 MBC의 쇼 토요일은 즐거워해서 거의 10년 동안 MC를 본 경력이 있습니다.
연기에 집중하느라 예능계 한동안 볼 기회가 없었지만 2008년부터 다시 예능 프로그램의 게스트로 출연 녹슬지 않은 활약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덕화 씨가 예능 프로그램에 게스트 출연하면 시청률이 오 에서 7프로 정도 오른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에 고비가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젊은 나이에 찾아온 탈모와 오토바이로 인한 교통사고였습니다.
이렇게 청춘 스타로 잘나가다가 그만 1977년 4월 7일 오토바이를 몰고 가던 중 현재의 한남동 타오호텔라 고가 차도 부근에서 시내 버스와 충돌하여 수십 미터를 끌려가는 큰 사고를 당했습니다. 이때 정말 크게 다쳐서 동아일보 경향신문 등 각 일간지 사회면에 기사가 실릴 정도였으며 당대에도 제기하지 못할 것이란 얘기가 많았습니다.
3년 넘게 투병해야 했는데 이덕화 씨 본인 말로는 처음 열고 10달 정돈 중환자실에 있었는데, 아침에 비명으로 깨서 저녁에 비명에 잠든다고 표현했을 정도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10개월 동안 이덕화 씨는 툭하면 생명이 위독해져서 의사와 간호사들이 이덕화 씨 때문에 긴급 호출되는 일이 빈번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생명이 위독할 때마다 이덕화 씨는 이제 난 죽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찌어찌해서 버텨냈고 살아남아서 일반 병실로 옮겨져 이 년 정도 당시 영화 상태였어요.
도덕으로 자주 호흡을 맞추었던 임예진 씨가 문병을 갔는데 사고를 당한 몰골이 너무 처참하여 너무 무서워서 가까이 못 가고 먼 발치에서 바라만 봤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덕커 씨는 엉덩이 살이 아예 없어져서 다른 다른 부위에 살을 이어붙여 엉덩이를 새로 만들어야 했으며 1500 바늘이나 꿰매는 초대형 수술을 받았습니다. 이 당시 이덕화 씨의 아버지인 원로 배우 이해춘 씨는 투병 중이었는데. 아들의 사고 소식을 듣고 그만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어 세상을 떠났습니다.
또한 최불암 씨 등 MBCC 소속 탤런트들이 이덕화 씨가 교통사고로 입원했을 때 이덕화 씨에게 성금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본인은 훗날 방송에서 여러 번 아버지를 언급하였는데 위독해진 아버지를 자신과 어머니 등 주변 사람들이 병원의 다른 층으로 침대를 밀며 이동시키는 중에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덕화 씨 본인의 손을 잡고 운명하였다고 합니다. 자신이 사고를 당한 충격 때문에 아버지가 사망한 것에 부채감을 느낀다고도 언급하였습니다.
후에 이덕화 씨는 방송에 이 당시에 여자친구였던 지금의 아내 김보옥 씨가 3년간 힘들게 자신을 돌봤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자기 만나지 말고 다른 사람 만나라고 하는 그를 정말 헌신적으로 돌본 모습에 감동받아 결혼 아내가 아들이 임신했을 때는 자신도 병원 간이 침대에서 잠을 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 몸이 욱신거린다는 느낌을 들었었지만 아내가 자신이 입원했을 때 3년을 이러고 살았었다는 걸 회고하면서 4만했었다고 합니다. 때문에 현재 그의 머리는 가발입니다.
사고 후유증 때문에 머리가 타버려서 그랬다는 루머도 있으나 그의 탈모는 사고 이전부터 있었습니다. 탈모가 시작되고도 한참을 가발을 쓰지 않아서 다들 대머리라는 걸 알고 있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본인이 이 콤플렉스가 있어서 쉬쉬하지 전부 알고 있는 그런 공공연한 비밀이었습니다. 하지만 본인이 가발해서 모델이 되어 크게 기사회생에 성공한 이유로 대놓고 대머리와 가발을 개그 소재로 쓰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탈모가 와도 가발을 쓰지 않고 않았기에 고뇌하는 장면에서 남들은 고개를 앞으로 숙이는데 이덕화 씨는 하늘을 쳐다보는 등 탈모를 숨기려 노력했습니다. 가발을 처음 착용한 때가 1987년 드라마 사랑과 야망인데 KBS 상상 플러스 2008년 8월 5일 방송분에서 본인 증언하길 김수현 작가가 머리로 어떻게 주인공을 하느냐며 가발을 쓰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 촬영 중에 땅바닥에서 구르는 장면에 가발이 180도로 돌아가서 같은 장면을 서너 번 찍었다고 그 후 2005년 드라마 제 오 공화국에서는 주인공 역으로 출연하게 되는데 이덕화가 가발을 벗고 티비에 나온다는 사실만으로도 방영 전부터 화제가 되었습니다. 사실은 여기서도 부분 가발을 썼습니다. 연기는 대단했는데다 이땐 오히려 대머리라는 점이 장점이 되어 악역으로서의 굉장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서 이덕화 씨의 전두환 연기는 그야말로 전설로 남았습니다. 또한 이덕화 씨에게는 가발에 대한 슬픈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코미디언 이주일 씨와는 살아생전에 나이를 초월해서 거의 절친에 가깝게 지내던 사이였는데 말년에 그만 이주일 씨가 폐암 진단을 받고 병세가 너무 심각한 수준이라서 그달을 넘기지 못하고 사망할 것이라는 통보를 듣게 됩니다. 이 사실을 이주일 씨 본인에게는 알릴 수 없었으나 가까운 주변인이 이덕화씨는 알고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이주일 씨는 가발 모델로 활동하던 이덕화 씨에게 맞춤 가발을 부탁했고 이덕화 씨는 이주일 씨가 원하는 대로 가발을 맞춰줬습니다. 이주일 씨는 이덕화 씨가 맞춰온 가발을 써보더니, 매우 흐뭇해하면서 내가 완치되면 이 가발을 쓰고 미국을 다녀온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때 이덕화 씨는 눈물이 핑 돌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이주일 씨가 월드컵을 산소 튜브 끼고 관람했던 게 바로 이 시기이며 그로부터 이 주일 뒤 이주일 씨는 사망했습니다. 또 한 일화로 최진실 씨의 자서전에 의하면 이덕화 씨는 그녀의 생명의 응인이라고 합니다.
단마극 베스트셀러라는 작품에 출연할 때 자신이 불에 타서 죽는 장면을 찍을 때 이야기입니다. 물 속에 있는 신을 찍은 후 적당한 신호 함께 밖으로 탈출했어야 하는데 그날따라 날씨가 건조하고 바람이 많이 불어 조명이 터져서 탈출을 못하고 죽을 뻔했을 때 그녀를 구해 준 것이 상대 역이었던 이덕화 씨였다고 합니다.
소화기를 뿌려대면서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와 최진 실시를 업고 탈출했다고 합니다. 과정에서 이덕화 씨가 입고 있던 고급 점퍼와 비싼 가발이 타버렸는데 이덕화 씨는 이후로도 최진 실시를 만나기만 하면 농담 삼아 가발값 점퍼 값 물어내라고 했다고 합니다. 물론 최진실 씨 입장에선 그 은혜를 어찌 점퍼값으로 갚을 수 있겠냐고 자서전에서 회고하였습니다.
이덕화 씨는 한 방송에 출연했을 때 밝혀진 것이 특유의 굵직한 보이스는 다름 아닌 이순재 씨의 보이스톤을 따라 하다가 생긴 거라고 이순재 씨가 키는 작지만 웅장해 보이는 이미지인 이유를 나름대로 생각해 보다가 답이 나온 것이 특유의 보이스 때문이라는 결론 끝에 보이스 톤을 따라 하다 보니 자신의 보이스로 잡혀버렸다고 물론 그때 이순재 씨의 보이스톤을 따라 한다고 해서 이순재 씨에게 혼도 많이 났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후 이순재 씨가 제일 많이 찾고 사적으로도 자주 만나는 후배가 이덕화 씨가 되었다고 합니다. 예능이나 토크쇼 등의 방송을 보면 나이나 선후배 문화에 대해 굉장히 개방적인 마인드를 가졌습니다.
띠동갑을 넘버 아들 딸이나 손자뻘 연예인들한테도 형이나 오빠라고 부르라며 자연스럽게 상대 연예인 말을 놓게 유도하는데 자신보다 10년 이상의 나이 차가 나는 연예인들에게 그냥 형님이라고 부르라며 격식 없이 토크를 펼치는 것을 보면 나이 차가 아무리 나도 기분을 예의만 지키면 격식 같은 것을 안 챙기는 편인 듯합니다. 드라마 촬영 시 같이 찍었던 배우 중에 군입대를 하는 남자 배우가 있으면 직접 면회도 다녀왔다고 합니다. 중간에 역경도 있었지만 여전히 활발한 활동 똥과 후배들에게 귀감을 보여주는 이덕화 씨 앞으로도 영원한 덕화 형님 덕화 오빠로 불리며 꾸준한 모습 보여주시길 기대하며 이상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