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어떻게 이런 복잡한 가정사가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슬픔니다. 항상 문제를 일으키는 어머니만으로도 충분한데 가정사가 비밀에 쌓여 있었던 안정환은 49년 만에 밝혀진 출생의 진실로 인하여 다시 한번 평온하지 못한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외모만 보면 고생 한 번 해보지 않은 듯한 선수로 보이는 안정환도 사실은 많은 시련을 겪은 선수였으며 그의 어려웠던 유년 시절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어머니의 빚투 사건은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한데 안정환의 어머니 안금향은 그동안 연예인 못지않게 많은 주목을 받으며 사회 및 연예면에서 화제가 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안정환의 친구와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동생의 존재가 처음으로 드러나면서 대중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 사실이 밝혀질 당시 안정환은 자신의 가족사를 다룬 언론 보도로 인해 한국에 들어오고 싶지 않았다고 밝힐 정도로 크게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제 안정환의 안타까운 가정사에 대해 간략히 요약해 보겠습니다. 어린 시절 안정환은 아버지를 일찍 여인 후 미혼모인 어머니 손에 자라면서 살던 집을 잃고 초등학교 시절부터 다른 집에 기거하며 생활했다고 합니다.
그의 가정 환경이 처음부터 빈곤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외가가 원래 경제적으로 윤택했으며 안정환도 어렸을 때는 부유한 가정의 아이처럼 자랐습니다. 하지만 6살 때 외가가 사업 실패로 어려워지고 외할아버지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시며 어머니가 아버지의 유산으로 시작한 커피숍도 망하면서 돈암동 흑석동 심길동 부천 수원 등을 전전하며 가난한 삶을 이어갔습니다.
결과 안정환은 제대로 된 식사를 해본 경험이 없고 타인의 사랑도 경험해 보지 못했으며 현재는 멋진 스타일을 자랑하지만 어릴 때는 옷 한 벌로 1주일 동안을 버텨야 했습니다. 친구들이 그의 옷차림을 놀렸을 때 그는 나는 이 옷이 다섯 벌이야라고 응수했다고 합니다. 늘 배고픔에 시달렸던 그는 슈퍼마켓 주인이 되어 원하는 음식을 마음껏 먹는 것이 꿈이었고 축구를 시작한 것도 배고픔을 견디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이모 집에서 살던 그는 축구부에 가입하면 빵과 우유를 제공받을 수 있다는 말에 축구부를 찾아갔다고 하네요. 주로 다른 아이들보다 빨리 달릴 수 있다는 점이 축구 동아리에 가입한 계기가 됐어요. 안정환은 어린 시절 노량진의 한 초등학교에 다니며 운동을 마친 후 바로 한강의 둔치로 가곤 했어요.
당시 한강 둔치는 지금과 달리 음침한 분위기였고 무당들이 자주 한강 근처에서 죽은 이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굿을 열었다고 해요. 굿이 끝난 후 무당들이 남긴 떡과 과일로 안정환은 배고픔을 달랬죠 그에게 한강 둔치에서 발견한 떡과 과일은 가장 소중한 식사였어요. 가끔은 그런 것도 없을 때는 밭에서 무와 배추를 훔쳐 먹기도 했는데 이 때문에 그의 외할머니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항상 어려운 상황에서 자란 손자가 마음에 걸렸어요.
어린 시절부터 집 없는 삶을 겪던 안정환은 언제나 조심스럽게 살아야 했어요. 집을 전전하며 축구를 시작한 시절 이모와 이모부 사이의 싸움이 잦았고 힘든 훈련을 마친 후 늦은 밤 이모네 집으로 돌아올 때면 문을 조심스레 열고 집안의 상황을 살피는 것이 먼저였어요.
그리고 만약 부부 싸움이 이런 일어나면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밤 열한 시든 12시든 골목에 앉아 이모와 이모부의 싸움이 끝나길 기다렸다고 합니다. 어려운 트레이닝을 겪은 어린 안정환에게는 먹을거리나 갈 곳이 전혀 없었습니다. 수원에서 살 때는 학교까지 버스를 두 번 갈아타며 무려 두 시간을 가야 했으며 아침 운동을 위해서는 새벽 5시 반에 일어나야만 학교에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죠.
하지만 4학년 초등학생에게 이는 너무나 힘든 일이었습니다. 새벽부터 학교에 간다는 것이 주변 시선 때문에 부담스러웠고 두 시간 넘게 만원 버스를 타는 것 차비를 달라고 하는 것이 어린 그에게는 큰 부담이었죠. 그래서 안정환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그의 아이디어는 학교체육창고였습니다.
몰래 학교의 창고에 숨어 밤을 보내며 11살의 나이에 학교창고 학교에서 잠을 자는 외로운 소년이었습니다. 이렇게 축구부만이 유일한 희망이었지만 자금을 지원하던 선배가 졸업하면서 지원이 끊기고 결국 축구부는 폐지되어 안정환에게 깊은 상실감을 안겨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를 주목한 다른 학교에서의 기적 같은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고 다행히도 축구부 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지만 선배들에게 구타를 당하고 힘든 트레이닝이 계속되는 등 여전히 힘든 기숙사 생활을 벗어나지 못해 어린 나이부터 좌절감을 경험했습니다.
항상 어려움 속에서 생활하며 여러 번 합숙소를 떠났던 그의 이야기가 있는데요. 축구부에서 여러 차례 탈출했다가 다시 끌려가며 축구에 대해 복잡한 감정을 가졌던 그는 축구를 즐기기보다는 생존을 위해 훈련에만 몰두했었죠.
그런 그에게 운명은 더욱 시련을 안겼고 싸움을 잘하는 성향 때문에 조직 생활의 유혹도 겪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길을 거부하고 공사판에서 돈을 벌며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그의 노력이 결실을 맺기 시작하며 여러 감독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고 대학교에 진학하여 프로 선수로서의 꿈을 키워나갔습니다.
그는 대학 선배들을 보며 축구를 통한 성공을 다짐하고 훈련에 더욱 매진했습니다. 그가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것은 1997년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였는데 경기 후반에 투입되어 혼자 두 골과 한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1대 이로 뒤지던 상황을 5대 이로 역전시키는 놀라운 활약을 했습니다. 물론 대우 그룹에서 주목받아 부산대우팀의 일원이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죠.
이후 연봉 1억을 받으며 국가대표의 꿈을 실현했음에도 불구하고, 안정환은 어머니가 지은 도박 빚을 갚기 위해 어려운 삶을 지속했습니다. 그의 고통은 한 사업가가 안정환의 어머니가 아들의 훈련비 명목으로 수십억을 빼돌렸다고 폭로하면서 시작되었죠. 하지만 실제로는 어머니가 안정환에게 돈 한 푼 주지 않고 도박의 모든 돈을 탕진해 결국 사기 혐의로 구속되며 안정환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남겼습니다.
안정환은 오랫동안 어머니의 문제에 시달렸고 2019년 그의 출생의 비밀이 공개되며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출생에 대한 루머가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안정환과 그의 주변인들은 이러한 소문에 대해 항상 언급을 피해왔으며 그가 공개한 가족 사항은 어머니와 외할머니에 관한 것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의 외삼촌이 안정환의 출생 비밀을 밝히며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
외삼촌은 한 인터뷰에서 지난 27년 동안 가슴에 묻어둔 출생의 비밀과 가족관계를 솔직하게 고백했습니다. 인터뷰 중 기자가 안정환의 동생 존재와 아버지의 정체에 대해 물었을 때 외삼촌은 실은 정한 씨는 안가문의 혈통이 아니에요. 정환 씨는 장씨 가문의 피를 이어받았으나 아버지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 안씨 성을 취할 수밖에 없었어요라고 밝혔습니다.
이어서 외삼촌은 서울의 한중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던 선생님이셨어요. 아이의 어머니가 고등학교 3학년을 마칠 무렵 장 씨와 운명적으로 만났죠라며 과거를 회상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사랑에 빠져 정한 씨의 어머니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안정환을 임신했는데 양가에서 결혼을 반대하여 결혼식도 치르지 못한 채 안정환을 낳게 되었다고 합니다.
운명의 장난 같았지만 안정환 씨가 태어나기 전에 아버지는 폐병으로 돌아가셨어요.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아버지가 결혼식도 올리지 못해 혼인신고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안정환 씨가 안씨 성을 갖게 된 것은 첫 돌 이후였다라고 외삼촌은 설명했습니다. 당시 법은 어머니의 성을 자녀가 따를 수 없었기 때문에 외삼촌이 안정환을 양자로 받아들여 안시 성을 갖게 되었다고 덧붙였습니다.
또한 기자가 안정환에게 동생의 존재에 대해 질문하자 외삼촌은 정환이의 동생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에요라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안정환의 동생은 친동생이 아니라 이복동생이에요. 안정환의 어머니는 남편 장씨와 사별한 뒤 다른 남성과의 관계에서 남성이 고 씨였어요. 그리고 사이에서 안정환의 이복동생이 태어났죠.
계속해서 기자가 질문을 이어가면서 고 씨와 그의 이복동생은 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있나요라고 물었을 때 외삼촌은 네라고 답하면서 고 씨가 실제로는 안정환의 친부가 아니라고 명확히 했어요. 후 외삼촌은 안정환의 의부사거지와 이복동생의 존재를 안정환 본인이 1998년에 국내 프로팀에 입단했을 때 처음 알게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그 시점에 의부사거지 고 씨가 여러 차례 연락을 취해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고 해요. 외삼촌에 따르면 안정환은 의부사거지의 사실을 알게 된 이후 많이 힘들어했습니다. 그리고 안정환의 어머니가 90년대 후반에 미국을 자주 방문한 이유는 미국에 있는 이복동생을 보러 갔기 때문이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또한 안정환은 어렸을 때부터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하고 힘든 환경에 자랐지만 이를 원망하지 않고 강인하게 성장했다고 덧붙였어요. 정한이의 태생과 성장기는 가족 외에는 아무도 몰랐던 비밀이었지만 이제 모두가 진실을 알 수 있게 되어 숨길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또한 근거 없는 소문이 퍼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모든 것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는데요. 이에 대해 안정안을 걱정하는 마음과 함께 그의 조카로서 느끼는 자부심을 드러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