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제일 잘나갔는데…” 올해 69세라는 전영록이 한때 잘나갔지만 현재 보기 힘들다는 충격적인 근황

장나라, 최강희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최강 동안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는 건데요. 저는 이 두 분을 뛰어넘는 동안 스타를 찾았습니다. 바로 가수 전영록입니다. 이분은 가끔 방송에 출연해서 무대에 서는 모습을 보면 어쩜 저리 안 늙을까?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인다는 생각이 듭니다. 1980년대 청춘 스타이면서 만능 엔터테이너로 유명한 가수 전영록은 상당한 인기를 누리던 시절 가수 활동을 중단했는데요. 오늘은 그의 암 투병 소식과 안타까운 근황을 알아보겠습니다. 가수 전영록의 나이는 놀랍게도 1954년 3월 26일생으로 올해 나이 70세인데 그렇게 안 보이죠. 50대 초반으로 보일 정도인데 리즈 시절 외모를 보면 지금이랑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놀랍게도 코미디언 이홍렬과 동갑이자 중학교 동창으로 친한 사이라고 합니다.

전영록은 스스로를 스타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하는데 부모님이 워낙 대스타라서 자신은 절대 그 벽을 넘을 수 없기에 스스로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하죠. 그래서 그냥 동네 시장도 다니고 택시도 타고 대중목욕탕도 거리낌 없이 다닌다고 합니다. 80년대엔 저녁 무렵이면 다 유행이 되었던 시절이 있었죠. ‘종이학’을 발표하자 전국의 수많은 여학생들은 종이학 접기 광풍에 휩싸였고, 그가 잠자리 뿔테 안경을 착용하고 등장하자 모든 남학생들은 안경점으로 달려갔으며 가죽 재킷과 꽉 끼는 청바지 브랜드도 아마 매출이 꽤나 늘었을 겁니다. 그런데 연예인으로서의 전영록은 1992년부터 갑자기 대중들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리는데요. 탤런트 이미영과의 이혼과 함께 찾아온 슬럼프는 이후 제대로 된 재기 한 번 없이, 그가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진정한 종합 예능인 전영록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전영록 하면 80년대 가왕 조용필의 대항마이자 영원한 젊은 오빠였는데요. 우리네 인생사에서 흔히 팔방미인이란 말을 자주 쓰고 살아가는데 재주꾼들만이 모여드는 연예계에서도 80년대를 가장 풍미했던 팔방미인은 바로 전영록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원래 집안 자체가 영화배우인 부친 황해와 모친인 가수 백설희 사이에서 태어났으니 당연할 수도 있겠지만, 전영록은 타고난 끼를 숨길 수 없어 고등학생 시절 전국노래자랑 대회에 출전하여 입상하였고 처음에는 연예인 부모의 반대로 노래하는 것을 숨겼지만 나중에는 적극적으로 그의 연예계 활동을 지원하는 응원군이 되었다고 합니다. 경험자로서 힘든 연예계 생활이 걱정돼서 그런 것이 아니라 돌아다니면서 누구네 아들입네 하면서 쉽게 성공하는 게 보기 싫어서 그런 것이었다고 하는데요. 후일 전영록이 탤런트 이미영과 결혼함으로써 완전한 연예인 패밀리가 되기도 했죠.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진학한 전영록은 학교생활이 성실한 편은 아니어서 수업을 자주 빼먹고 청룡 연못에서 낮잠을 자곤 했다고 하는데 그러던 어느 날 지도교수에게 걸렸고, 주는 아버지인 황해에게 전화를 해서 전영록의 불성실한 대학 생활에 대해 이야기해주었으며 황해는 불같이 화를 내면서 그럴 작정이면 학교를 그만두라고 해서 전영록은 진짜로 그만두었죠. 그래서 그의 학력은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중퇴가 된 것인데요. 그가 학교생활에 불성실할 수밖에 없었던 큰 이유 중 하나가 70년대 인기를 끌었던 그룹 사운드 드래곤스의 헬퍼를 맡았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는데, 약 5년간 악기 운반이나 기타 잡일 등을 도우면서 연습실에서 노래를 배웠으며 그 인연으로 드래곤스의 리더 김갑춘은 전영록의 가요계 데뷔에 많은 도움을 주었죠.

1972년부터 5년간 드래곤스에서 헬퍼를 하면서 틈틈이 통기타를 들고 광교와 무교동을 돌아다니면서 가수가 펑크를 내면 대타로 노래를 하면서 무명 가수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데뷔곡 ‘애심’으로 본격적인 가요계 데뷔를 한 전영록은 1975년과 76년 사이에 짧은 활동으로도 3장의 LP를 발표하고 7편의 영화에 출연합니다. 한창 주가를 올려가던 때 그는 과감하게 현역으로 복무하기로 결정하고 군에 갔으며 최근 일부 연예인들이 병역을 기피하는 부끄러운 실정에서 볼 때 귀감이 되는 건전한 연예인이죠. 1979년 군 제대 후 컴백한 그는 가수, 배우, 탤런트, MC, DJ, 작곡가 등으로 맹활약을 하면서 80년대를 지배했던 가왕 조용필에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대항마로 한 시대를 달렸는데요.

그리고 지금의 세대들은 잘 이해를 못 하겠지만, 80년대 가요계가 거의 조용필 독주 무대였음을 감안하면 유일한 대항마로서의 지위에 올랐던 전영록의 가요사적 가치는 엄청났습니다. 전영록은 또한 싱어송라이터로서 자신의 노래뿐 아니라 다른 가수들의 노래를 작사, 작곡해 히트곡을 만들어내며 정상에 서기도 했는데요. 전영록이 작곡한 히트곡으로는 김지애 ‘얄미운 사람’, 이지연 ‘바람아 멈추어다오’, 양수경 ‘사랑은 창밖의 빗물 같아요’, 과거 배우 김희애가 불렀던 ‘나를 잊지 말아요’ 등이 있습니다. 전영록은 1990년대에 들어선 후 서태지와 아이돌의 등장과 함께 가요계 대격변의 흐름과 세월을 이기지 못해 가수로서 예전의 인기나 작사, 작곡자로서도 흥행을 누리지 못하였는데요.

또한 전영록은 엄청난 영화 마니아로 한때 3만 개가 넘는 영화 비디오테이프를 수집했다고 하며 1990년대 중반 비디오 대여 프랜차이즈를 시작하였는데 그때는 이미 인터넷이 많이 보급된 상황이었죠. 비디오 대여 사업의 실패로 수십억 원의 빚을 지고 한동안 칩거 생활을 하며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전영록은 2000년대에 들어서서 라디오 진행자로 활동을 시작했으며 꾸준히 방송 출연과 콘서트, 뮤지컬 등을 통해 수십억 원의 빚을 청산하였다고 하는데요. 전영록의 히트곡은 정말 많은데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 ‘불티’,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 봐’ 등등 젊은 층에서도 한두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노래죠.

전영록의 히트곡은 정말 많은데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 불티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봐 등등 젊은 층에서도 1~2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노래죠 가수로 최정상을 달리던 전영록은 텔런트 이미영과 1985년 결혼합니다. 이미영은 당시 미스 해태 선발 대회에서 대상을 받고 MBC 사랑의 계절에서 보이시한 불량소녀 역을 맡아 떠오르고 있던 스타였는데요. 당시 역대급 스타 커플의 첫 만남은 개그맨 이창훈을 통해서였습니다.

전영록은 당시 중앙대 연극영화과 재학중 대학 동기인 개그맨 이창호를 알게 되었고 그의 여동생 이미영을 만나게 됩니다. 이후 전영록 이미영 커플은 2년간 연애를 하고 1985년 결혼했는데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가수와 텔런트의 결혼은 대중에 큰 관심을 받았죠 전영록 이미용 커플은 첫째, 딸 전보람 둘째, 딸 전우람을 낳고 행복하게 지낸 것으로 알려졌으나 1997년 이혼했다고 미디어에 보도가 되는데요. 전영록이 이미영과 이혼 후 바로 재혼에 힘들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은데 사실 전영록은 두 딸의 양육권을 가졌기에 아이들을 데리고 고생을 많이 했죠. 당시 이혼할 때 아이들이 사춘기여서 더더욱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하는데요. 전영록은 두 딸을 키우기 위해 부산에 가서 라이브 카페를 돌며 노래를 불렀는데 당시 여론이 전영록에 좋지 않아서 노래를 부르면 사람들이 음식을 던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이혼 후 음식을 던지는 사람들을 보며 화가 난 전영록은 무대 아래로 내려가 자신은 자식을 버리지 않았다고 소리를 쳤다고 하죠. 처자식 다 버리고 젊은 여자와 살려고 부산으로 내려왔다는 루머까지 돌던 상황이었고 이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재혼을 했으니 그 당시 얼마나 많은 루머가 돌았을지 눈에 보이네요. 전영록은 열여섯 살 아래인 임주연 씨와 재혼했는데 임주연씨는 전영록의 팬이었다고 합니다. 전영록은 이혼 후에 두 사람이 가까워졌고 연인으로 발전해 재혼했다고 하는데요. 전영록과 가정을 꾸린 임주현 씨는 결혼 3년 만에 집을 장만하고 지금까지 두 사람은 행복 행복한 가정을 꾸려 잘 살고 있습니다. 이미영은 2딸의 양육권을 포기하고 가장 힘들었다고 하는데 양육권을 포기한 이유는 이미영 어머니의 결단 때문이었죠. 아마도 딸이 새 출발을 하길 바랬던 마음에서였던 것 같은데요.

이미영은 이혼 후 1년 동안 매일 술로 살았고 그러다 두 번째 남편을 만났지만 사실 외로움을 달래고 싶은 마음이 컸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이미영의 재혼은 이혼으로 끝 맺게 됩니다. 이혼을 선택한 이유는 이미영은 딸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19년 만에 엄마의 품으로 돌아온 딸들을 꼭 지키고 싶어 이혼을 선택했고 이혼을 하고 딸들과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었다고 하죠. 그래서일까? 이미영은 참 활발하게 일했던 것 같습니다. 늘 많은 작품에서 연기를 꾸준히 해왔고 그만큼 아이들과의 삶을 꿈꿨고 또 유지해야 했으니까 열심히 살았던 것 같은데요. 이미영은 티비에 출연해서 전영록은 나에게 따뜻하게 대하고 내 얘기를 모두 들어주려고 노력하고 나에게는 정말 재미있고 완벽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혼을 할 때 사람들은 도박을 했다느니 바람을 피웠다느니 사업에 실패했다느니 돈 문제였다느니 여러 가지 문제로 이혼을 하지만 이런 거는 나는 다 받아들일 수 있고 용서하겠다고 했는데요.

아마도 모든 게 용서된다고 전부인 이미영 씨가 말하는 거 보니 전영록 씨의 잘못으로 이혼한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어차피 이혼한 지 36년이 넘어가는데 용서 안 하고 서로 미워해봤자 뭐하겠습니까? 전영록 얼굴이 많이 이상하게 변했다고 아내 이미영이 말해서 조금 짠하게 보였습니다. 결론은 전영록과 이미영의 이혼 이유는 사랑이 깨져서라고 결론을 내렸죠 정확하게 구체적으로 얘기를 하지는 않는데 하기사 남의 부부 일을 알아서 뭐하겠습니까? 하지만 역시 늙어가고 나이를 먹으니 모든 게 용서가 되나 봅니다. 전영록은 2010년에 대장암과 직장암을 동시에 발견하면서 방송 활동을 쉬고 치료에 전념했는데 지금은 다행히 수술을 했는데 잘 되어서 완치가 되었다고 전했습니다. 방송에 출연해 이홍렬 덕분에 암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죠.

📢 아래 지원금, 환급금들도 꼭 찾아가세요!

👉 정부에서 25만원을 지원합니다 25만원 민생지원금 신청 바로가기

👉정부에서 도시가스비를 돌려드립니다! 꼭 신청하세요 도시가스 환급신청 바로가기

👉아직 신청안하셨으면 꼭 신청하세요! 2024 근로장려금 신청자격, 신청방법 총정리

👉 올해 건강검진 꼭 받으세요! 2024 건강검진 간편 조회 및 기간, 싸게받는 방법 총정리

👉 2024년 연말정산 환급금 꼭 받으세요! 간편 연말정산 환급금 조회 바로가기

👉 무주택자 분들은 꼭 신청하세요! 무주택자 월세환급제도 신청방법

👉 신차, 중고차 구입한지 5년 이상이라면 무조건 환급 받으세요 자동차 채권 환급금 조회

👉️ 2024년 쉬는 날은 얼마나 있을까? 2024년 공휴일, 대체공휴일 총정리

👉️ 2024년 재물운이 왕창 들어오는 대박나는 띠와 조심해야 하는 삼재 띠 총정리

👉 보험 하나라도 가입했으면 꼭 찾아가세요 숨은 보험금 찾기

👉 정부에서 당뇨, 고혈압 환자에게 지원금을 드립니다. 건강생활실처지원금제 신청방법

👉 인터넷, 휴대폰 쓰고 있다면 꼭 확인해보세요 통신비 미환급금 조회방법

👉 신용카드 포인트를 현금으로! 신용카드 포인트 통합조회 신청방법

👉 운전자라면 무조건 신청하세요 착한운전 마일리지제도 신청방법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