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대체 뭐하는 짓이야….” 부채도사 장두석의 장례식에 찾아온 이경규와 강호동이 보인 충격적인 행동

과거 ‘부채도사’, ‘시커먼스’ 등으로 활약했던 코미디언 장두석이 안타깝게도 향년 67세로 별세했습니다. 현재 그의 빈소가 서울 여의도 성모 장례식장 8호실에 마련된 가운데, 유족들은 이날 오후부터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발걸음한 조문객을 맞이하고 있고 많은 후배 동료 연예인들이 눈물을 쏟고 있습니다. 최양락과 이봉원은 빈소를 3일간 지키며 안타깝게 먼저 간 장두석을 추모했지만, 소식을 듣고 이경규와 강호동이 장례식장을 찾아왔을 때 최양락은 이들을 보자마자 “왜 왔어, 얼른 가”라고 돌려보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40년간 연예계에서 롱런하고 있는 이경규는 개그계의 대부로 불리고 있는데, 최양락은 왜 빈소까지 찾아온 이경규와 강호동을 그냥 가라며 돌려보냈는지 안타까운 사연을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생전 ‘부채도사’, 이봉원과 함께 ‘시커먼스’로 유명세를 탄 개그맨 장두석은 지병인 신장 질환을 앓고 있어 평소에도 건강에 대한 걱정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당뇨로 오랫동안 힘들어했고 길을 가다 쓰러진 적도 있는데, 일어나는 게 힘에 부칠 정도였다고 합니다. 사실 장두석은 전성기 시절에도 결혼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것만을 꿈꾸며 살아왔습니다. 국민들에게 웃음과 사랑을 주는 데에만 한평생을 바친 그는 힘든 순간마저도 웃음으로 바꾸며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지만, 정작 본인은 결혼하지 않아 아내나 자식이 없고 부모님마저 모두 돌아가셔서 그가 떠날 때 그의 옆에는 친형 한 분만 남아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국민에게 힘들 때 웃음을 전했던 그의 말년이 더욱 쓸쓸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힘든 순간마저도 웃음으로 바꾸며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던 그는 언제부턴가 동료 후배 코미디언들과도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언뜻 전해 듣기로는 채식에 가까운 식습관에 심취하면서 동료들과 점차 식사 자리를 함께 하기 힘들어졌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소원해지고, 연락이 끊긴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습니다. 1957년 제주도에서 태어난 장두석은 한성고등학교와 경희대학교 지리학과를 졸업한 후 TBC 제2회 개그콘테스트를 통해 데뷔했습니다. 이후 KBS로 옮겨 ‘유머 1번지’, ‘쇼 비디오 자키’ 등에 출연해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주요 작품으로는 김형곤과 콤비를 이뤄 “왜 이래? 아~ 왜 이러는 거야?”라는 유행어를 히트시켰고, 김정식과 함께한 ‘아르바이트 백과’, 이봉원과 함께한 ‘시커먼스’ 등이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대표작으로는 ‘부채도사’라는 코너로 인기를 끌면서 지금의 ‘무릎팍도사’의 모티브가 되었습니다.

장두석은 지난 1992년 KBS ‘유머 1번지’의 ‘부채도사’ 코너로 최고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그의 유행어인 “실례, 실례합니다. 실례, 실례하세요.”는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혜리와 김성균이 선보이며 다시금 인기를 얻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장두석은 ‘부채도사’ 코너를 마지막으로, 한동안 방송계를 떠났는데 갑자기 명상가로 변신해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다시 세상에 모습을 나타낸 장두석은 ‘오쇼 명상센터 쿠쉬딜 리더 장두석’이라는 내용이 적혀있는 명함으로 확인할 수 있었는데, 사실 장두석은 내내 불안감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개그맨으로 바쁜 생활을 하면서도 전유성과 ‘힘기획’이라는 기획 사무실을 만들어 뮤지컬과 전영록 콘서트, 주병진의 심장병 어린이 돕기 마라톤 같은 행사를 제작하기도 했고 심지어 본인이 가수로 데뷔해 ‘사랑한다 해도’ 음반을 발표했고 91년도에는 녹음실과 카페를 운영했습니다.

하지만 불안감에 소주 3병에 양주 두어 병을 한 자리에서 혼자 마실 수 있을 정도로 술에 중독되어 살다가 어떤 책을 보고는 명상에 빠져들게 되었고 94년과 95년에는 아예 인도에 있는 명상 공동체에서 제자로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이후에는 담배도 끊고 식사도 채식으로만 하고 술은 입에도 대지 않았으며 방송 활동도 일절 하지 않았기에 동료들과 연락이 전부 끊어졌던 것입니다. 그러다 이수근이 ‘개그콘서트’에서 ‘시커먼스’를 패러디한 ‘키컸으면’으로 근황이 다시 알려졌는데, 이수근이 이봉원에게는 리메이크에 대해 전화로 상의하며 허락을 받았지만 장두석의 연락처를 몰라 연락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장두석은 연락을 받지 못했음에도 마음 넓게 후배들을 이해하며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도우겠다고 했다는데, 그가 얼마나 배려 넘치는 성격이었는지 여기서 드러납니다. 그러던 2007년 무려 17년 만에 가수로 컴백하는데, 방송에는 15년 만에 출연하게 되어 ‘부채도사’의 탄생 배경을 고백하게 됩니다.

당시 데뷔 앨범을 준비 중이었는데, 장두석에게 곡을 준 작곡가도 신인이었기에 앨범이 잘 될지 궁금해 이대 앞에 위치한 한 허름한 점집에 점을 보러 갔다고 합니다. 손님이 1명도 없는 점집이었는데, 웬 아주머니가 동자승이 그려진 까만 부채를 흔들며 “부채 신이시여, 웃기는 게 좋겠습니까? 가수를 하는 게 좋겠습니까?”라고 점을 보는 모습이 너무 재미있어서 응용하게 된 것입니다. ‘부채도사’가 대박이 난 뒤에 다시 그 점집을 찾아갔지만 문을 닫아서 거하게 보답하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그 찰나의 순간에 재미있었던 포인트를 꽁트화해서 코미디로 승화한 게 코미디언만이 할 수 있는 재능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1990년대 들어 인기가 사그라들자 가수로 전환하여 ‘사랑한다 해도’를 발표했습니다.

‘해돋이’라는 곡이 제법 히트했지만, 그 외에 음반의 인기는 신통치 않았고 오쇼 라즈니쉬의 제자로 입문하여 1990년대 중순경 설립한 명상센터가 경영난에 빠지며 경제적인 압박을 받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개그콘서트 코미디 40년 특집으로 ‘시커먼스’ 코너의 이봉원과 함께 나왔는데,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고 서로 묻자 이봉원은 사업을, 장두석은 가수를 했었다고 했습니다. 둘 다 망해서 상호 간에 그동안 뭘 하며 지냈는지도 몰랐다고 하는데, 정확히 말해서는 이봉원이 먼저 “당신 가수인 거 몰랐다”고 공격하자 장두석이 사업 얘기로 반격한 거지만 결국 둘 다 상처만 깊어졌습니다. 그 후 그의 2집 앨범은 그를 기다리는 팬들을 위해서 냈다고 하는데, 팬들로부터 “왜 요즘 방송에 안 나오느냐, 좀 나왔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어서 아직 남아있는 팬들에게 사랑을 보답하고자 꾸준히 앨범을 내려고 노력했습니다.

당시 추억의 코미디언이었던 심형래가 인기를 끌며 장두석 역시 나오지 않겠냐는 여론이 있었는데, 장두석은 “유머 1번지 스타일의 꽁트 프로그램이 다시 생긴다면 재차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지만 과거의 답습이 아닌 새로운 코너를 선보이고 싶고 내 나이에 맞는 웃음으로 다가가고 싶다”며 아직까지 코미디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았음을 드러냈습니다. “과거 꽁트는 시청자들에게 웃음이 전달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인정을 받게 되면 그만큼 더 오래 사랑을 받았는데, 최근 개그 프로그램들은 현장에서 웃겨야 하기에 감각적인 면이 중요할 것 같다”고 분석까지 하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사람들을 웃기고 싶었던 것인지 그의 마음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말을 지키기라도 하듯 장두석은 후배 코미디언과 같이 코미디 무대를 꾸미기도 했습니다. 웃찾사의 ‘띠리띠리’ 코너에는 대한민국 최초 우주인의 우주탐사를 기념하기 위해 후배 개그맨 유남석, 김민수 외 선배 개그맨인 이봉원, 최양락이 함께 출연했습니다.

그야말로 80년대 최고의 인기 스타였던 세 사람이 오랜만에 방송에서 만나 추억의 개그를 선보이며 폭소를 자아냈는데, 세월은 지났지만 이들의 개그는 녹슬지 않았고 오랜만에 방송에 얼굴을 비친 이들의 개그도 개그지만, 세 친구의 조화가 어우러지며 시청률도 아주 잘 나왔다고 합니다. 사실 장두석은 마지막까지 사람들을 웃기고 즐거움을 전하는 코미디 무대를 평생 그리워했다고 하는데, 엄영수는 지난해 말 장두석과의 마지막 통화에서 “다시 코미디 해야지”라고 묻자 장두석이 “이제 뭐 나이도 먹었는데 나가봐야 뭐가 되냐. 너무 하고 싶지만 마음처럼 몸이 따라주지 않고 당뇨가 심해서 다시 할 수 없어서 애석하다”고 했다고 하죠.

개그맨 엄영수는 “개그계에 붐을 일으키는 데 큰 공을 세운 사람인데 일찍 돌아가신 것은 개그맨으로서 비극이고 안타깝다”라며 “대단한 실력자인데 방송을 그만뒀고 만약 방송에서 활동하셨으면 더 스타로 빛이 나고 코미디도 더 발전하지 않았을까”라며 아쉬운 마음을 숨기지 못했고, “장두석 씨가 개그에 끼친 공적이 크다”며 “장두석과 같은 사람이 ‘유머 1번지’ 등을 통해 ‘개그란 것은 이렇게 하는 것이다’라고 후배들에게 알려주는 길잡이가 되었다”며 너무 이른 나이에 떠나간 고인을 그리워했습니다. 그의 사망 소식에 최양락은 “당뇨 등 지병으로 인해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게 되어 무척 슬프다”고 말했습니다. 동시대 같이 활동을 하였던 최양락의 부인, 잘 알려진 팽현숙은 “당시 ‘유머 1번지’와 ‘쇼 비디오 자키’에서 방송계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선배였고 후배들도 살갑게 챙겨주기도 하고 노래도 참 잘하는 좋은 선배였지만 이렇게 생을 마감하게 되어 허탈하다”고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최양락은 고 장두석에 대해 “개그계의 재주꾼으로 방송 활동이 어느 순간부터 뜸해지면서 가슴이 아팠다”고 회상하면서 아직까지 방송에서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경규와 강호동이 바쁜 방송 스케줄로 장례식장에 늦게 나타나자 “왜 왔어, 얼른 가서 쉬다 와라”며 돌려보내려 했다고 합니다. 모래판을 휘저으며 천하장사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강호동이 어느 날 안방극장을 웃기는 개그맨이 된 것은 이경규의 공이 크죠. MBC 특채 개그맨으로 데뷔한 그를 이끈 건 이경규라는 거목이었습니다. 당시 ‘규라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경규의 입지는 꽤 컸고 “이경규가 ‘당신이 방송을 실패하면 나도 같이 옷을 벗겠다’는 말에 감동을 받아 망설이던 방송을 하게 되었다”는 것은 강호동의 레퍼토리 중 하나가 되었을 정도인데요. 결혼식 주례까지 부탁할 만큼 이경규는 강호동의 정신적 지주임에 틀림없습니다.

장두석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것만을 꿈꾸며 살아왔고 국민들에게 웃음과 사랑을 주는 데에만 한평생을 바친 그는 힘든 순간마저도 웃음으로 바꾸며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지만, 1992년 마지막 코너를 마무리하고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국민이 힘들 때 웃음을 전했던 그의 말년이 더욱 쓸쓸해 보이기까지 하는데, 지금이라도 이 영상을 보는 여러분이 그가 가는 길이 외롭지 않도록 따뜻한 응원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그곳에선 항상 꽃길만 걸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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