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치현, 아시는 분들 많이 계시죠? 이치현은 감미로운 목소리와 아름다운 멜로디로 1980년대를 주름잡았던 가수인데요. 어느 날 갑자기 브라운관에서 사라졌던 이유와 그가 받았던 세간의 오해, 그리고 최근 근황에 대해 알려드릴게요. 한 사람의 소설 같은 인생을 보면서 배울 거리도 있는 좋은 시간이 될 거라 믿습니다. 꼭 끝까지 함께해 주세요.
이치현은 5남 1녀의 막내로 태어났는데요. 미술을 전공한 큰형의 영향을 받아서 미술학도를 꿈꾸며 중학교 때까지 미술을 했고, 그에 맞춰 서울예술고등학교를 지망했는데 낙방하고 서라벌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렇게 운명적으로 미술과 작별하고 서라벌고 재학 시절 밴드부가 멋있게 보여서 들어가서 거기서 익힌 플루트로 중앙대학교 기악과에 입학했습니다.
이치현과 한 몸이라고 할 수 있는 기타는 초등학교 4학년 때 큰형이 조그마한 기타를 선물해 주었는데, 어린 이치현이 곧잘 하니까 그 당시 기타를 잘 치던 형이 숙제를 내주고 때려가면서 스파르타 훈련을 시켜서 맞기 싫어서 기타를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어렸을 때는 기타를 싫어했다고 해요.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별명이 ‘꽁치’였다고 하는데요. 아니, 우리 가요계의 로맨티스트에게 꽁치라니 너무 어울리지 않는데… 중학생 때 너무 말라서 꽁치였는데, 고등학생이 되어 친구랑 어디를 가는 길이었는데 중학교 동창이 멀리서 자기를 알아보고 “꽁치야!” 하고 크게 부르면서 다가오자 모른 척하고 가려는데 가까이 다가와서 유치하게 등짝을 치면서 “너 꽁치 맞잖아!” 하는 바람에 중학교 때 별명이 그대로 고등학교 때도 가게 되었다고요.
가수 이치현이 전국노래자랑 출신이라는 것 혹시 아시나요?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는데요. 고3 때, 1975년 남산을 오르다가 그 당시에는 KBS 본사 사옥이 남산 근처에 있었는데요. KBS 광장에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모여있어 뭐 하냐고 물어보니까 KBS 전국노래자랑 예심이 열린다고 했대요. 그 당시 이치현은 친구랑 심심해서 기타 치고 노래를 부르며 놀았는데 그 예심 현장을 보고 즉흥적으로 친구와 둘이 재미 삼아 출연, 송창식과 윤형주의 포크 그룹 트윈폴리오의 ‘웨딩케이크’를 불러 1등을 했습니다. 당시 우승 상품은 14인치 흑백 TV 한 대였다고.
음악을 할 수밖에 없었던 직접적인 계기가 있었는데요. 고3 때 집이 사기를 당했는데 어느 날 집에 가보니 집 압류 통지서라고 쓰여진 누런 봉투가 있었대요. 어머니가 이치현에게 스스로 벌지 않으면 대학 등록금을 줄 수 없다고 털어놓아 학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로 밤에 나이트클럽 밤무대에 나가 노래를 불렀습니다. 음악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가수를 할 생각까지는 없었는데, 기타리스트나 할 생각이었대요. 그런데 생계 때문에 노래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1978년 TBC 제1회 해변가요제, 또 재미 삼아 참가! 이 가요제는 왕영은, 송골매, 구창모 등 스타들을 배출한 가요제인데, 여기서 듀엣으로 ‘벗님들’이란 이름을 처음 쓰면서 참가해서 인기상을 받았어요. 그 후 정식으로 가요계에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이 이름은 큰 수난을 당하게 됩니다. 이 얘기는 잠시 뒤에 해드릴게요.
1979년 3인조 밴드 ‘벗님들’로 정식 데뷔 앨범을 발표했는데요. 1집 앨범의 대부분의 곡을 이치현이 직접 작사, 작곡했습니다. 그런데 당시는 가수들이 유명 작곡가의 곡을 받아 노래를 부르는 것이 유행이었는데, 작사, 작곡자 명을 모두 이치현으로 쓰면 자기네들은 돈이 없어 곡을 받지 못하는 가난한 밴드라는 느낌을 줄까 봐 그게 싫어서 본명 ‘이용균’과 예명 ‘이치현’을 번갈아서 작사, 작곡자의 이름에 넣어 자기네들도 작곡가에게 곡을 받은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데뷔했을 때보다 지금이 오히려 더 멋있는데요. 이게 무슨 조화인지… 그때는 54킬로 정도로 깡마르고 얼굴도 까맣다고. 1집 발매 후 빛을 보지 못하고 지방 나이트클럽 무대에 서야 했어요. 그러다가 그다음 해 1980년 ‘당신만이’를 타이틀곡으로 2집을 발표! 그러나 소속사가 망하고 벗님들은 나와야 하고… 그런 불안정한 상황에서 홍보 활동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이 명곡이 순위에 오른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소극장 공연을 하게 되면서 결국 뜨게 되었습니다. 본인이 너무 애정하는 노래인데 뜨지 않자 3집에 다시 넣을 정도로 사랑했는데 3집도 성적이 저조해서 사라질 뻔한 노래였는데요. 대학가에서 이 노래가 유행! 그러나 가수가 누구인지 사람들이 잘 몰랐다고 해요.
이 노래에는 사연이 있는데요. 이치현이 경제적으로 가장 힘들 때였는데 그 당시 사귀던 아내(지금의 아내) 생일을 맞아 이 노래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주머니에 단돈 5천 원밖에 없어서 그 돈에 맞춰 인도화의 노래 가사를 넣어서 선물했다고 해요.
그 후 1984년 5인조로 재편한 벗님들로 3집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벗님들은 갑자기 TV 브라운관에서 잘 보이지 않게 되었는데,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지금은 덜하지만 그때 방송국 PD는 막강한 권한을 휘두르던 때였는데 정말 치욕적인 일까지 당했다고 합니다.
5인조 그룹으로 활동하는데 방송 관계자들이 조명 세팅을 다 해 놓았다는 이유로 노래를 부르는 이치현만 무려 5미터 정도 더 앞으로 나오게 하고 드럼 등 다른 연주자들은 뒤에 있는 상태에서 노래를 시켰습니다. 이치현은 다른 멤버들과 같이 나란히 서서 연주하기를 부탁했는데 거절당했고요. 서로 연주 소리도 노랫소리도 들리지 않는 상태에서 녹화를 해야만 했습니다.
드럼 소리도 들리지 않는 상태에서 노래를 부르니 박자를 맞추기도 힘들었고 소리도 박자도 안 맞는 상황. 그러다가 박자 문제로 방송 관계자, 즉 PD와 옥신각신하다 이치현이 결국 자기도 모르게 이성을 잃고 질러 버립니다. 상대방 면전에 대놓고 “나 방송 안 해!” 이치현은 여간해서는 화를 안 내는 성격이라고 하는데 음악에 상처를 주는 작태를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질러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PD에게 손 들고 저기 서 있으라는 말까지 들은 적도 있다고 해요. 더 큰 싸움이 안 난 게 다행이네요. 주먹이 오갈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그러나 방송 중단이라는 큰 위기는 곧 어마어마한 기회가 되었습니다. 인생에서 위기가 곧 기회라고 하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이치현은 어떻게 돌파구를 마련했을까요?
더 이상 TV 방송을 할 수 없게 된 이치현은 공연을 하기 위해 관객을 찾아 대학로 소극장으로 갑니다. 결과적으로 그는 결국 소극장 공연 문화를 이끈 장본인이 된 거죠. 어림잡아서 소극장 공연을 무려 2천 회 정도 했는데 4년 동안 거의 매일 했다고. 1985년 4집 노래들은 소극장 공연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는데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모아서 녹음할 수 없는 그런 열악한 곳에서 어거지로 녹음을 해서 만든 앨범이 4집. 그러나 여기에 수록된 ‘다 가기 전에’와 ‘추억의 밤’이 큰 반응을 얻었고 히트 예감을 보이기 시작. “이게 바로 음악이구나!” 하는 감을 잡게 되었다고. 그전에는 음악을 이렇게 해도 되나 하는 긴가민가하는 마음으로 음악을 했었다고 해요.
예전에는 버스 정류장 근처에 레코드 가게가 많았고 가게 앞에 스피커를 두고 행인들을 향해 노래를 빵빵하게 틀어 주었는데 이치현의 노래가 거리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치현은 ‘다 가기 전에’라는 곡이 애착이 간다고 하는데요. 그는 10년을 연애하다가 33살 경 결혼을 했는데 생계가 불안정했기에 언제 헤어질지도 모르는 불안불안한 상황이어서 물질적인 선물을 해줄 수가 없었는데 연인의 마음을 붙잡기 위해서 이 노래를 만들었고 이 노래로 구애를 한 거나 다름이 없다고. 가요계의 로맨티스트죠! 그런데 지금의 아내를 만나기 전까지는 여자들한테 많이 차여서 노래들이 다 슬픈 사랑 노래들밖에 없다고 해요.
너무 깡말라서 많이 차임을 당했다고. 어쨌든 이 노래는 소극장 공연의 흥행까지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때까지 그는 힘든 생활을 하면서 10년 가까운 무명의 세월을 견디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가장 괴로웠던 게 어중간하게 사람들한테 알려져 있는데, 돈은 하나도 안 들어오는 거야. 얼굴만 알려졌지 되게 배고픈 가수들이 된 거야. 나는 왜 이런 직업을 가져서 이렇게 힘들게 사나 이런 생각도 있고 음악을 하고 싶지 않아. 가수로 안 돌아오고 싶어.” 그러다가 마침내 1986년 5집에서 ‘사랑의 슬픔’을 냈는데요. 이 노래로 초대박이 나서 이제는 이치현과 벗님들을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사랑의 슬픔’으로 인기가 절정에 올랐지만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집니다. 멤버 간 이견이 생기고 끝내 봉합되지 못한 갈등으로 팀이 해체되면서 2팀으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벗님들’이란 이름을 서로 포기하진 못해서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는데요. ‘그냥 벗님들’과 ‘이치현과 벗님들’ 이렇게 둘로 나뉘게 된 것입니다. 그 후 새로운 멤버를 구성해서 ‘이치현과 벗님들’로 대중 앞에 새롭게 내놓은 곡이 바로 1988년 6집 타이틀곡 ‘집시 여인’. 이치현 하면 ‘집시 여인’이 떠오를 정도로 대표곡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거의 모든 인생이 오르락내리락, 잘될 때가 있고 안 될 때가 있는데, 이치현에게 상상하지도 못할 상황이 다가옵니다.
이제 막 성공 궤도에 올라서 앞으로 탄탄대로가 펼쳐질 거라 기대하면서 1991년 솔로로 데뷔했는데 그 무렵 서태지가 나오면서 인기 판도, 유행 판도가 바뀌며 급격히 인기 하락. 생계를 위해 친한 동료 가수인 ‘눈물로 쓴 편지’, ‘나비 소녀’를 부른 김세화와 함께 90년대 중반 미사리에 라이브 카페 ‘산타나’를 열고 7080 바람을 일으키다가 망해서 IMF 이후 98년 중단. 그러나 그는 음악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2016년 14집을 발표하는 등 꾸준히 음악 활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최근 불교방송 ‘김흥국의 108가요’에 이치현이 초대되었는데요. 두 사람이 서라벌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라고 해요. 그런데 누가 선배일까요? “우리 학교 대선배님이고 존경하는 뮤지션 이치현과 벗님들의 이치현 씨를 초대했습니다.”
놀랍게도 이치현 씨가 선배! 그것도 무려 4년이나. 가수 김흥국은 1959년생으로 2021년 기준 우리나라 나이로 63살. 그리고 가수 이치현은 1955년생으로 4살 형이니까 67살이 되는데요. 엄청 젊어 보여서 거의 동안을 넘어선 냉동 인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얼굴만 젊은 게 아니라 스타일이나 자세도 그렇고 심지어는 목소리도 아직까지 예전 그대로 변함이 없어서 기절할 정도! 이치현의 팬클럽인 ‘늘벗’ 또한 여전히 그를 오빠라고 부르며 열렬히 응원하고 있습니다. 이치현의 기절초풍할 정도의 동안의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는 유전자 영향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동안의 비결은 여기에 있는 거 같아요.
그는 20대부터 나이트클럽에서 노래를 불러서 그곳의 사람들이 술을 많이 권했으나, 주량이 무려 소주 반 잔이라고! 1잔도 못 마신다고 해요. 사실은 술 1잔도 몸에 좋지 않다는 얘기까지 있는데요. 그가 그렇게 술을 많이 마시지 않아서 이렇게 동안을 유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네요. 사실 그동안 그는 오해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치현은 ‘집시 여인’을 불렀을 때 당시 너무 깡마른 비주얼 때문에 약을 하냐는 오해를 받기도 했고 늘 선글라스를 껴서 더 좋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한다는데요. 한 20여 년 정도가 되었는데 무대 위 강한 조명으로 눈에 이상이 생겨 약시가 있어서 선글라스를 쓰고 있다고 합니다.
한편 이치현은 2017년 9월 23일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 추석 특집에 출연해 벗님들의 히트곡 ‘집시 여인’과 ‘사랑의 슬픔’을 열창했습니다. 특히 이날 방송에서 이치현은 ‘사랑의 슬픔’을 부르기 전 곡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는 “이 노래는 제가 작곡한 곡인데, 당시 제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후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며 “그 슬픔을 담아 만든 곡이 ‘사랑의 슬픔’이다”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이 곡을 부를 때마다 그때의 감정이 떠올라 눈물이 난다”고 덧붙이며 곡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드러냈습니다.
이치현은 긴 무명 시절과 갑작스러운 성공, 그리고 팀 해체와 솔로 활동 등 다사다난한 음악 인생을 겪어왔습니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이 음악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며 지금까지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의 음악은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감동을 선사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치현의 음악이 더욱 빛나길 기대하며 그의 앞날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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