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록은 1954년에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잘 알려진 대로 그는 과거 대배우였던 황해와 인기 가수 백설희의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황해는 상당히 가부장적이었고 어머니 백설희는 무섭고 강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던 바람에 어릴 적 집안 분위기가 상당히 엄해서 사람들이 전영록을 보고 “주워 왔냐”고 물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집에 들어오기 500M 전부터 소리를 지르셨고, 어린 전영록은 아버지 소리가 들리면 현관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다려야 했습니다. 또 집에서는 아버지가 대본을 읽으셔야 하니까 항상 조용하게 있어야 했습니다. 전영록이 이불을 뒤집어쓰고 기타 연습을 하자 어머니는 머리를 때리면서 “자빠져 자라”고 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전영록은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 때문에 친구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많이 받기도 했습니다.
황해가 작품에서 군인, 악역, 또 형사로 나오곤 했는데 그래서 주변 아이들은 아들 전영록에게 “니네 아버지가 어제 사람을 죽였다”며 뭘 던지기도 했고, 그래서 전영록은 초등학생 때 늘 싸우기만 했다고 합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도 돌팔매질을 당하며 누구의 아들이라고 하는 게 너무나 싫었던 전영록은 중학교 때는 생활기록부에 아버지와 성이 다르니까 아버지 이름 대신 삼촌의 이름을 올리는 방법으로 고3 때까지 황해의 아들임을 숨겼다고 합니다. 이후 성인이 되어 중앙대학교에 들어간 그는 드래곤스라는 밴드의 도우미로 들어가 악기를 들어주는 역할 등을 하며 노래를 배우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통기타를 들고 광교, 무교동에 나가서 가수들 펑크 나면 대신 노래하는 걸로 처음 사람들 앞에서 무대에 오르기 시작합니다.
처음 광교의 ‘태평양’이란 곳에서 시작하다가 그 옆에 이종환이 했던 ‘쉘부르’로 옮겨갔었고, 그러다가 결국 70년대 가수들이라면 누구나 서고 싶던 무대인 명동에 드디어 들어간 전영록은 그곳에서 처음엔 ‘가는 세월’의 가수 서유석의 펑크를 메우며 오프닝을 했다고 합니다. 전영록은 처음에는 임시로 펑크를 때우는 사람으로 시작했지만, 차츰 정식으로 자기 순서를 맞는 가수로 자리 잡았고 당시 양희은의 다음 순서였기 때문에 양희은의 동생 양희경과 친구도 되었다는데요. 후에 전영록이 말하길 당시 양희경은 노래를 아주 잘했을 뿐 아니라 잘록한 허리에다가 기타를 무사처럼 어깨에 메고 다녔는데 진짜 섹시했었다고 회상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전영록의 활동을 부모님은 응원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이놈이 누구 아들입네, 학원 나갔다가 부모 망신시키면 어쩌나” 하는 우려가 더 커서 그랬다고 합니다.
전영록은 대학에 들어가자 당시 캠퍼스 분위기상 선배가 후배에게 술을 권하면 절대 거절할 수가 없어서 그렇게 맨날 술에 취해서 학교 분수대 옆에서 자고 다녔는데, 그러자 당시 그를 지도하던 양 모 교수가 황해에게 전화를 걸어서 “당신 아들 문제 많으니 데리고 가라”라고 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당시 황해는 크게 실망을 하고 이후 아들에게 학교를 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황해는 배우로서 강한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자존심에 아들은 흠집을 냈고 아버지 가슴에 대못을 박은 것이었습니다. 이후 중앙대가 위치한 흑석동에는 근처에도 못 가게 하신 바람에 전영록은 결국 다니던 대학을 졸업하지 못하고 중도에 중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그가 초등학생 때만 해도 어머니 백설희는 어린 전영록을 가수로 키워볼 생각도 했었는데, 본래는 연예계 데뷔 생각이 없었던 전영록은 초등학생 때 한 번은 방송국의 어머니를 따라갔더니, 어머니가 자신을 PD 앞으로 확 밀면서 “내 아들인데 노래 좀 시켜 봐요”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때 전영록이 어머니께 “엄마, 왜 그래”라고 물어보면 “이 할머니도 나한테 그랬어”라고 하셨다는데요.
하지만 이후 부모님은 아들의 연예계 진출을 반대했고, 전영록이 다운타운에서 노래를 불렀던 것도 처음에는 부모님 몰래 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한 지인이 전영록의 그런 활동을 발견하고 그의 부모에게 그 사실을 고자질하면서 결국 전영록은 걸리게 되어 집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때 아버지는 전영록이 가수를 한다니까 골치가 아팠지만 결국 “잘해봐라”라는 한마디를 남기셨고, 그때부터 전영록은 본격적으로 열심히 노래를 부르게 됩니다. 사실 전영록의 집안은 부모만 연예인이었던 게 아니라 고모 쪽도 가수 나애심에 그 딸까지도 나중에 가수가 된 김혜림이었기 때문에 전영록의 몸속에 흐르는 연예인의 피는 속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전영록 하면 대중들은 댄스 가수로 기억하지만 사실 그의 가수 인생은 통기타를 치는 포크 가수로 시작을 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활동하던 전영록은 과거 MBC가 서울 정동에 있던 시절 그 앞 다방에서 어느 날 아버지와 함께 배우 송재호를 만났는데, 송재호는 당시 MBC에서 ‘제3교실’이라는 드라마가 준비되었으니 “너 드라마나 가라”며 전영록에게 드라마 출연을 권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황해는 “이놈 지금 가수 한다는 것도 머리 아파 죽겠는데 배우는 절대로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그들의 옆에는 우연히 주간경향의 기자였던 이상벽이 앉아 있었고, 이상벽은 그 모습을 보고 “영화배우 황해의 아들 전영록, 탤런트 데뷔”라는 기사를 쓰면서 전영록은 얼레벌레 ‘제3교실’에 출연하게 되며 배우로 데뷔하게 됩니다. 그 드라마는 후에 ‘대장금’을 만든 이병훈 PD의 작품으로 당시 손창호와 이계인이 전영록과 함께 데뷔했던 작품이었습니다.
이후에도 그는 75년도에 화천공사라는 영화회사의 영화음악을 해보려고 찾아갔는데 거기 있던 감독이 전영록을 보더니, “너 참 어리버리하게 생겼다”며 ‘내 마음의 풍차’라는 영화의 주인공 박혜가 역으로 또 캐스팅을 해 버리는 바람에 원래는 배우를 할 생각이 없었던 전영록은 이후 몇 편의 영화에 추가로 출연까지 하게 됩니다. 그렇게 점점 인지도가 올라가던 전영록, 그러다 연예계의 대마초 사건이 터지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황해는 전영록이 동료들에게 대마초를 배울까 봐 걱정되는 마음에 아들에게 어서 군대나 가라고 했지만, 전영록은 가지 않겠다며 입영 신청을 미루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이후 한 극장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던 전영록에게 공연장 밖에 지프차 1대가 오더니, 전영록을 태워서 강제로 끌고 가게 됩니다. 바로 아버지가 빽을 써서 전영록을 강제로 입영시킨 것이었습니다.
당시 가수로서, 배우로서, DJ로 막 인기를 얻기 시작한 전영록에게 갑작스러운 입대는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습니다. 전영록이 논산 훈련소에 도착해보니 이용식, 유인촌 등 많은 연예인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동기생들과 부대끼며 춥고 배고픈 훈련소 생활을 자존심과 오기로 죽기 살기로 견디고 드디어 퇴소하자, 아버지는 또 빽을 써서 전영록을 강원도 화천 전방에 위치한 승리 부대로 보내게 됩니다. 아들을 전방 오지로 보내서 대마초 범들을 아예 만나지도 못하게 하고자 했던 아버지 때문에 전영록은 그 부대에서 더군다나 특기와는 아무 상관없는 통신병으로 자대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때가 12월이었는데, 전방 지역의 추위는 실로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보초를 서던 전영록은 평생 잊지 못할 최고의 생일 선물을 받게 됩니다.
자대에 와서 며칠 지나지 않은 터라 누구한테 생일이라고 먼저 말도 못하고 묵묵히 근무했지만, 한편으로 서글픈 마음을 감출 수 없었는데 금방 눈물이라도 흘릴 것 같은 그의 얼굴을 우연히 본 주변 간부는 고충이 있으면 다 털어놓으라고 따뜻이 말해주었습니다. 그제서야 생일이라고 밝힌 전영록에게 제일 먹고 싶은 것을 얘기하라기에 그는 짜장면이라고 대답했는데요. 그리고 얼마 후 보초 근무를 마치고 부대로 돌아와 보니 그에게는 한 덩어리로 차디차게 굳은 짜장면 1그릇이 배달돼 있었습니다. 지금도 짜장면을 좋아하지만 그때 먹은 짜장면 맛은 결코 잊을 수가 없다는 전영록. 짜장면 1그릇을 공수하기 위해 온갖 역경을 무릅썼을 것을 생각하니 전영록에게는 감동이 밀려오게 되는데요. 입영 시절에는 수시로 노래 일발 장전을 외치는 선임병 장교들 때문에 적잖이 괴로움을 겪었고 괜한 자존심을 내세워 안 하겠다고 버티다가 기합을 받기도 했지만,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지금 가수가 아니다.
병사다. 함께 생활하는 부대원들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해 노래를 부르는 것은 당연하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며 전영록은 3년간의 군 생활을 통해 솔선수범하는 자세를 배우게 됩니다.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가 모든 부대원으로부터 주목을 받았기 때문에 그는 모든 일에 최선봉에 섰고 궂은일까지 도맡아 했는데요. 부대 인근의 산불로 인명 피해가 발생했을 때는 현장에 투입돼 시신을 수습한 적도 있고 페인트 통을 메고 혼자 산꼭대기에 올라가 ‘초탄 박살’이라는 글귀를 새기기도 했습니다. 유격 훈련 참가 횟수도 동기들보다 배는 많았습니다. 전영록은 계급도 올라가고 부대 생활에 차츰 적응이 돼 가면서 인근 산천에 널려 있는 뱀도 맨손으로 수십 마리나 잡았는데요. 당시 뱀탕을 많이 먹어서인지 그는 지금까지 겨울에 내복 한 번 입어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후에 병장이 되고 제대할 때가 가까워 오자 부대에서도 전영록에게 특혜를 베풀어 주며 휴양소로 배치가 되게 되는데요.
그는 군에서 접하기 힘든 최신 음악, 영화 필름들을 구해다 음악 감상회, 영화 상영회를 열어 큰 인기를 얻었고 이렇게 파란만장한 3년간의 군 생활은 문선대와 함께 각급 부대를 도는 위문 공연을 모두 마치고 한 달이나 늦게 제대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제대 후 전영록은 이미영과 하이틴 영화에 출연하며 인기를 얻더니, 80년대에 들어서며 조용필과 대적하는 인기 가수로 확고히 자리를 잡게 되는데요.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 ‘불티’,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 봐’ 등을 연이어 히트시키며 전성기를 맞이한 전영록은 당시 이용, 김수철, 김범룡 등의 경쟁 가수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모두 짧은 전성기를 누렸던 반면, 전영록은 80년대 내내 롱런하며 수많은 여학생 팬들을 거느리며 국내 최초로 팬클럽이라는 것까지 생겨나게 됩니다. 또한 당시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는 사실 원래 전영록이 아닌 주현미의 노래였다고 하는데요.
노래를 듣고 반한 전영록이 작곡가를 찾아가 노래를 달라고 했고 ‘거칠게 불러보겠다’라고 이야기해 결국 그가 그 노래를 차지하며 히트를 치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 후 86년과 87년에는 2년 연속 KBS 가요대상까지 수상하며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그는 가수 생활을 열심히 하다 보니 배우인 아버지가 ‘연기는 언제 하니’ 하셔서 ‘돌아이’라는 영화에 출연하며 또 히트를 치게 되는데요. 그랬더니, 어머니는 또 ‘가수가 노래를 해야지’ 하시며 전영록을 진퇴양난에 빠뜨리게 되는데 그래서 그는 이후 스스로 곡을 쓰기 시작했고, 신인 가수였던 이지연에게 ‘바람아 멈추어다오’를 주며 5주 연속 1위라는 쾌거를 달성하게 됩니다.
또 전영록은 양수경을 발굴하고 ‘사랑은 창밖의 빗물 같아요’를 선물하며 또 1위를 만들었고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를 보답하기 위해 주현미에게 주려고 ‘얄미운 사람’이라는 노래를 만들었지만 후에 그 곡은 김지애에게 가게 되면서 당시 ‘물레야’로 겨우 조금 이름을 알린 김지애에게 또 가요 톱 텐 1위의 기쁨을 선사하게 되는데요. 게다가 학교 후배였던 배우 김희애에게는 ‘나를 잊지 말아요’를 선물하며 또 대박을 쳤고 이은하에게는 ‘돌이키지 마’를 선물하는 등 천재 뮤지션으로 가수와 배우, 작곡까지 그는 하기만 하면 뭐든 성공시키는 최고의 만능 엔터테이너로 질주하게 됩니다. 사실 그가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끊임없는 노력이었는데. 유명 연예인의 아들이라는 후광이 항상 자신을 옥죄어 왔고 그래서 그는 뭐든 하면 탑을 하려고 가진 애를 쓰며 노력한 끝에 그렇게 정상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이었는데요.
이렇게 모든 분야에서 성공하게 된 전영록은 논란도 없었고 연예계 생활도 잘 해내 갔지만 딱 한 번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이미영과의 결혼과 이혼이었습니다. 4년여의 열애 끝에 약혼을 발표하고 이듬해 거행한 둘의 결혼에는 당시 최고 인기 스타답게 많은 이들의 관심이 쏟아졌는데요. 결혼 후 ‘TV 손자병법’에 함께 출연을 하며 두 딸과의 행복한 결혼 생활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행복했던 이들에게도 어느 날 위기가 찾아오게 됩니다. 영화광이었던 전영록은 집에 영화 비디오테이프를 3만 개나 수집하더니, 결혼 후 비디오 대여점 사업까지 펼치게 되는데요. 시작은 좋았지만 비디오의 시대가 점점 저무는 바람에 그만 6년 만에 사업은 적자로 정리를 하게 되는데 이를 계기로 전영록은 수십억의 빚을 떠안으며 가계에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주게 되었고 결국 경제적인 문제가 지속되어 결혼 12년 만에 이혼까지 하게 됩니다.
믿기지 않는 게 계속해서 안방에 계실 것 같아요’라고 밝혀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는데요. 또한 그의 딸 전보람도 그룹 티아라의 멤버로 활동 도중 할머니의 임종 소식을 듣고 급히 빈소를 찾았습니다. ‘돌아가시는 걸 보지 못했고 많이 아프셔서 많이 속상해요.’라며 손녀 역시 갑작스러운 비보에 슬픔을 감추지 못하고 끝내 눈물을 보이고 말았는데요. 할머니의 임종을 보지 못한 자신의 딸을 보며 아버지 전영록도 얼마나 마음속으로 눈물이 쏟아져 나왔을까요? 게다가 전영록의 딸들은 성인이 된 현재는 전영록의 품을 떠나 홀로 지내던 어머니 이미영에게로 갔고, 아버지는 아무래도 따로 가정을 꾸리셨기 때문에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낸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전해졌는데요.
어린 시절 엄한 집안에서 자라 유명인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삿대질 당하는 고통을 겪었고, 부모님의 도움 없이 자신의 노력만으로 최고의 위치까지 올랐지만 사업에 실패하고 수십억의 빚더미에 오르더니, 끝내 이혼까지 해야 했던 전영록.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야 했고 건강이 악화된 부모님과도 차례로 이별해야만 했던 전영록. 부모님과 이별하고 딸들과도 이별하게 된 그에게 앞으로는 즐겁고 행복한 일들만 가득하기를 바라며 너무나 안타까운 상황에 처한 가수 전영록에게 여러분의 따뜻한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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