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정말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배우 이미숙이 아들의 교통사고에도 외면하고 한번도 찾아가지 않은 충격적인 이유

1960년에 충북 단양에서 태어나 중학교 시절부터 잡지 모델 등을 하며 배우의 꿈을 키워오던 이미숙, 그녀는 1978년 고교 3학년 재학 중 ‘제3회 미스롯데 선발대회’에 참가하게 됩니다.

당시 그녀는 중학교 때부터 활동한 전적이 있기 때문에 좋은 성적을 거둘 것이라 생각했지만 결과는 원미경이 1등, 이미숙은 5등인 인기상을 얻게 되는데요.

대회가 끝난 후 원미경은 곧바로 드라마 주연으로 발탁되어 이덕화의 상대역으로 승승장구했고 그런 모습을 본 이미숙은 비록 출발은 늦었지만 누구보다 더 오래 연기할 것이라고 굳게 다짐을 하게 됩니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미숙은 79년에 당시 최고의 인기 아이돌이었던 전영록과 영화 <모모는 철부지>에서 남녀 주연으로 출연하여 꽤나 준수한 흥행 성적을 남깁니다.

이후 80년대로 들어오면서 영화 및 드라마에서 원미경이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꾸준히 받고 있었고 이미숙은 원미경보다는 인기에서 떨어지는 배우로 인식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그녀는 꾸준히 다양한 드라마에 출연하며 차츰 인지도를 쌓았고 대박을 터뜨리지는 못해도 쪽박을 차지는 않았던 2인자의 자리를 달리고 있었는데요.

그러던 중 어느날 원미경에게 스캔들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고 그 바람에 이미숙은 드라마 <황진이>에서 주연을 따게 되며 결국 2인자의 자리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러면서 83년에는 유지인, 정윤희의 뒤를 이어 여배우 수입순위 3위를 차지하기도 하며 ‘이미숙 전성시대’를 열게 되는데요.

다음 해인 84년에는 출연했던 <고래사냥>이 그 해 관객 수에서 1위를 차지하며 영화 배우로도 크게 성공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당시 <고래사냥>은 영화의 인기가 너무 많아서 극장마다 표를 사려는 관객들로 매표소마다 줄을 길게 서는 광경을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뒤이어 1970년대 트로이카로 유명한 유지인과 함께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에 출연하며 이미숙은 유지인보다도 더 부각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86년에는 강석우와 <겨울나그네>에서 청순한 연기를 펼치더니 영화 <뽕>에서는 이대근과 화끈한 노출 연기까지 펼쳤습니다.

당시 이대근의 목소리가 너무 크고 거칠어서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그녀는 80년대만 해도 감독들이 미리 대본에는 나와 있지도 않은 신체 노출을 현장 촬영 때 즉석으로 여배우들에게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대본에 노출 신이 있으면 여배우들이 거부할까봐 사전에 고지하지 않았다가 현장 촬영이 진행되어서야 감독들이 노출을 요구를 하곤 했다고 하는데요.

그녀는 <겨울나그네>에서는 청순미, <뽕>에서는 토속적인 애로미, <내시>에서는 당시 장미희 주연의 영화와 동시에 상영되며 맞대결을 했지만 <내시>의 흥행으로 장미희를 이기기도 하게 됩니다.

이렇게 출연하는 작품마다 흥행에 성공하며 전성기를 누리던 이미숙, 하지만 그녀도 어느덧 나이가 들어가고 28살이 되면서 성형외과 의사인 홍씨와 전격 결혼을 발표하게 됩니다.

고려대 의대 출신으로 이미숙보다 13살 연상의 이혼남이었던 홍성호와 결혼을 하게 된 이미숙은 당시만 해도 일찍 결혼하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최고 전성기 때 결혼을 하게 된 것에 대해 아쉬움은 없었다고 하는데요.

이후 단란한 가정을 꾸린 그녀는 활동을 중단하며 가정 주부의 삶을 살게 됩니다. 결혼 후 4년간 활동을 중단하며 미국 하와이로 건너가 살게 된 그녀, 하지만 이내 심적 갈등을 겪게 되는데요.

가만 보니 ‘자신이 결혼을 왜 한 걸까’ ‘연기를 안 하려고 결혼한 건가’ 등등 복잡한 생각이 들게 되었고 생각을 떨치고자 골프 연습도 매일 했고 ‘골프 선수를 해볼까’라며 생각도 해봤지만 ‘신체 조건이 부족해 마음을 접기도 했다’고 하는데요.

결훈 후 잠시 연기자로 활동을 멈췄지만 자신이 언젠가 다시 하고자 하는 일은 연기이고, 매일 해변에서 태평양을 바라보며 현재는 더 크게 도약하기 위해 한발 물러서 있다고 생각하며 ‘다시 도약하리라고 다짐했다’고 하는데요.

이렇게 의지를 불태우던 이미숙은 결혼 4년 만인 91년 결국 컴백했고 이후 sbs에서 ‘연기 대상’까지 수상하는 등 제2의 전성기를 열며 남편과도 각자의 일을 존중하며 지내게 됩니다.

그러던 중 그녀는 2001년 초등학생이었던 아이들을 미국 la로 유학을 보내게 되는데요. 1년에 한편 정도 작품 활동을 했던 이미숙은 촬영 기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을 미국에서 보내게 됩니다.

그녀가 드라마를 촬영하느라 아이들 곁을 비울 때는 남편이 병원 문을 닫고 미국으로 건너가 아이들을 뒷바라지 하게 되면서 부부가 1년에 두세 번 정도밖에 얼굴 보지 못할 정도로 바쁘게 지내게 됩니다.

그러다 유학 중인 남매를 6년여 동안 살갑게 돌봐주던 시어머니가 어느날 대장암 3기 판정을 받아 귀국을 하게 되고 남편은 어머니를, 이미숙은 아이들을 뒷바라지를 하느라 각자 바쁜 생활을 하게 됩니다.

부부가 서로 떨어져 살면서 각자의 일에 빠져 가정에 소홀하게 되자 결국 예전의 애틋한 감정은 식어가게 되었고 그렇게 별거가 길어진 이미숙은 결혼 20년만에 이혼까지 하게 되는데요.

이미숙은 이혼 당시 ‘그동안은 두 사람이 서로의 의를 존중하면서 쿨하게 살았지만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사는 결과가 길어지면서 밋밋한 결혼 생활을 계속하기보다 이혼을 선택한 것 같다’고 밝혔는데요.

이혼으로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지금의 자신에게 주어진 이 시간은 ‘더 많은 일을 하라고 주어진 시간 같다’

‘자신의 이기적인 생각때문에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희생했는데 자신의 형제들과 가족들이 자신에겐 ‘배우가 손 두꺼워진다’고 집안일도 안시키고, 아이들이 그런 엄마를 이해해주고 반항 한번 안했다’며 고마움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특히 이미숙은 ‘아들이 5학년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유학을 가는 바람에 옆에서 대화나 고민 상담도 많이 못해주는 바람에 섭섭해 했다’며 미안함을 드러냈는데요.

그러던 그녀의 아들로부터 이미숙은 어느날 갑자기 하늘이 무너지는것 같은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녀의 아들이 미국에서 운전을 하다 그만 차가 몇바퀴나 구르는 교통사고가 나면서 부상을 당했고 병원에 입원까지 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스케줄이 바빴던 이미숙은 아들의 사고에도 이곳까지 달려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 바람에 아들은 혼자서 외로이 병실에 누워 투병하게 되는데요.

사고가 나기 전에도 그녀는 ‘아들이 사춘기가 늦게 오는 바람에 그 시기에 옆에 누가 있어줘야 하는데, 18살 진로 고민으로 힘들었던 시기에 엄마 생각이 가장 절실할 때인데 같이 있어주지 못해 너무 미안했다’고 합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해 연기자로 성공한 이미숙, 이혼이라는 아픔과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해 혼자 투병을 해야했던 상황속에 당장 갈 수 없어 발만 동동 굴러야했던 그녀에게 더이상 가슴아픈일이 생기지 않고 행복한 일만 가득하기를 응원하겠습니다.

1960년에 충북 단양에서 태어나 중학교 시절부터 잡지 모델 등을 하며 배우의 꿈을 키워오던 이미숙, 그녀는 1978년 고교 3학년 재학 중 ‘제3회 미스롯데 선발대회’에 참가하게 됩니다.

당시 그녀는 중학교 때부터 활동한 전적이 있기 때문에 좋은 성적을 거둘 것이라 생각했지만 결과는 원미경이 1등, 이미숙은 5등인 인기상을 얻게 되는데요.

대회가 끝난 후 원미경은 곧바로 드라마 주연으로 발탁되어 이덕화의 상대역으로 승승장구했고 그런 모습을 본 이미숙은 비록 출발은 늦었지만 누구보다 더 오래 연기할 것이라고 굳게 다짐을 하게 됩니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미숙은 79년에 당시 최고의 인기 아이돌이었던 전영록과 영화 <모모는 철부지>에서 남녀 주연으로 출연하여 꽤나 준수한 흥행 성적을 남깁니다.

이후 80년대로 들어오면서 영화 및 드라마에서 원미경이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꾸준히 받고 있었고 이미숙은 원미경보다는 인기에서 떨어지는 배우로 인식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그녀는 꾸준히 다양한 드라마에 출연하며 차츰 인지도를 쌓았고 대박을 터뜨리지는 못해도 쪽박을 차지는 않았던 2인자의 자리를 달리고 있었는데요.

그러던 중 어느날 원미경에게 스캔들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고 그 바람에 이미숙은 드라마 <황진이>에서 주연을 따게 되며 결국 2인자의 자리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러면서 83년에는 유지인, 정윤희의 뒤를 이어 여배우 수입순위 3위를 차지하기도 하며 ‘이미숙 전성시대’를 열게 되는데요.

다음 해인 84년에는 출연했던 <고래사냥>이 그 해 관객 수에서 1위를 차지하며 영화 배우로도 크게 성공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당시 <고래사냥>은 영화의 인기가 너무 많아서 극장마다 표를 사려는 관객들로 매표소마다 줄을 길게 서는 광경을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뒤이어 1970년대 트로이카로 유명한 유지인과 함께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에 출연하며 이미숙은 유지인보다도 더 부각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86년에는 강석우와 <겨울나그네>에서 청순한 연기를 펼치더니 영화 <뽕>에서는 이대근과 화끈한 노출 연기까지 펼치는데요.

당시 이대근의 목소리가 너무 크고 거칠어서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그녀는 80년대만 해도 감독들이 미리 대본에는 나와 있지도 않은 신체 노출을 현장 촬영 때 즉석으로 여배우들에게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대본에 노출 신이 있으면 여배우들이 거부할까봐 사전에 고지하지 않았다가 현장 촬영이 진행되어서야 감독들이 노출을 요구를 하곤 했다고 하는데요.

그녀는 <겨울나그네>에서는 청순미, <뽕>에서는 토속적인 애로미, <내시>에서는 당시 장미희 주연의 영화와 동시에 상영되며 맞대결을 했지만 <내시>의 흥행으로 장미희를 이기기도 하게 됩니다.

이렇게 출연하는 작품마다 흥행에 성공하며 전성기를 누리던 이미숙, 하지만 그녀도 어느덧 나이가 들어가고 28살이 되면서 성형외과 의사인 홍씨와 전격 결혼을 발표하게 됩니다.

고려대 의대 출신으로 이미숙보다 13살 연상의 이혼남이었던 홍성호와 결혼을 하게 된 이미숙은 당시만 해도 일찍 결혼하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최고 전성기 때 결혼을 하게 된 것에 대해 아쉬움은 없었다고 하는데요.

이후 단란한 가정을 꾸린 그녀는 활동을 중단하며 가정 주부의 삶을 살게 됩니다. 결혼 후 4년간 활동을 중단하며 미국 하와이로 건너가 살게 된 그녀, 하지만 이내 심적 갈등을 겪게 되는데요.

가만 보니 ‘자신이 결혼을 왜 한 걸까’ ‘연기를 안 하려고 결혼한 건가’ 등등 복잡한 생각이 들게 되었고 생각을 떨치고자 골프 연습도 매일 했고 ‘골프 선수를 해볼까’라며 생각도 해봤지만 ‘신체 조건이 부족해 마음을 접기도 했다’고 합니다.

결훈 후 잠시 연기자로 활동을 멈췄지만 자신이 언젠가 다시 하고자 하는 일은 연기이고, 매일 해변에서 태평양을 바라보며 현재는 더 크게 도약하기 위해 한발 물러서 있다고 생각하며 ‘다시 도약하리라고 다짐했다’고 하는데요.

이렇게 의지를 불태우던 이미숙은 결혼 4년 만인 91년 결국 컴백했고 이후 sbs에서 ‘연기 대상’까지 수상하는 등 제2의 전성기를 열며 남편과도 각자의 일을 존중하며 지내게 됩니다.

그러던 중 그녀는 2001년 초등학생이었던 아이들을 미국 la로 유학을 보내게 되는데요. 1년에 한편 정도 작품 활동을 했던 이미숙은 촬영 기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을 미국에서 보내게 됩니다.

그녀가 드라마를 촬영하느라 아이들 곁을 비울 때는 남편이 병원 문을 닫고 미국으로 건너가 아이들을 뒷바라지 하게 되면서 부부가 1년에 두세 번 정도밖에 얼굴 보지 못할 정도로 바쁘게 지내게 됩니다.

그러다 유학 중인 남매를 6년여 동안 살갑게 돌봐주던 시어머니가 어느날 대장암 3기 판정을 받아 귀국을 하게 되고 남편은 어머니를, 이미숙은 아이들을 뒷바라지를 하느라 각자 바쁜 생활을 하게 됩니다.

부부가 서로 떨어져 살면서 각자의 일에 빠져 가정에 소홀하게 되자 결국 예전의 애틋한 감정은 식어가게 되었고 그렇게 별거가 길어진 이미숙은 결혼 20년만에 이혼까지 하게 되는데요.

이미숙은 이혼 당시 ‘그동안은 두 사람이 서로의 의를 존중하면서 쿨하게 살았지만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사는 결과가 길어지면서 밋밋한 결혼 생활을 계속하기보다 이혼을 선택한 것 같다’고 밝혔는데요.

이혼으로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지금의 자신에게 주어진 이 시간은 ‘더 많은 일을 하라고 주어진 시간 같다’

‘자신의 이기적인 생각때문에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희생했는데 자신의 형제들과 가족들이 자신에겐 ‘배우가 손 두꺼워진다’고 집안일도 안시키고, 아이들이 그런 엄마를 이해해주고 반항 한번 안했다’며 고마움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특히 이미숙은 ‘아들이 5학년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유학을 가는 바람에 옆에서 대화나 고민 상담도 많이 못해주는 바람에 섭섭해 했다’며 미안함을 드러냈습니다.

그러던 그녀의 아들로부터 이미숙은 어느날 갑자기 하늘이 무너지는것 같은 소식을 듣게 되는데요.

그녀의 아들이 미국에서 운전을 하다 그만 차가 몇바퀴나 구르는 교통사고가 나면서 부상을 당했고 병원에 입원까지 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스케줄이 바빴던 이미숙은 아들의 사고에도 이곳까지 달려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 바람에 아들은 혼자서 외로이 병실에 누워 투병하게 되는데요.

사고가 나기 전에도 그녀는 ‘아들이 사춘기가 늦게 오는 바람에 그 시기에 옆에 누가 있어줘야 하는데, 18살 진로 고민으로 힘들었던 시기에 엄마 생각이 가장 절실할 때인데 같이 있어주지 못해 너무 미안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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